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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 (행2:1-13절),

대산지기 2007. 2. 8. 11:13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
행2:1-13절, 177.178.179장&

사도행전을 가리켜서 성령행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어떻게 초대 교회와 사도들을 통해서 일하셨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 본문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어떻게 강림하셨는가를 자세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 대한 해석을 놓고 오순절 교회와 우리 개혁 교회의 입장은 다릅니다. 오순절 교회는 초대 교회에 임했던 오순절 성령 강림 운동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성령충만한 생활을 해야 하며, 오순절에 일어났던 현상 중의 하나였던 방언의 은사를 계속 받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은혜 받는 증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교회의 성도들은 오순절날 임했던 성령강림과 똑 같은 현상이 반복되도록 기도해야 하며, 그 당시와 같은 은사를 체험해야 함으로 믿는 것이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 열심이 지나친 나머지 인위적으로 엑스타시에 들어 갈려고 하는 분도 많이 있고,

또 방언의 은사와 체험을 얻지 못한 것 때문에 낙심하거나 실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깊이 생각하면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매우 특별한 것이며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때,

오순절 신앙을 가지신 분이나 또는 방언의 은사와 체험을 가진 분들은 반론을 제기할 것입니다. 또 말하기를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강림의 현상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확실히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초자연적인 권능이 가능한 줄 믿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은 매우 특별하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단순히 현상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더구나 문자적인 몇 곳을 택해서 어떤 교훈을 받는 것으로만 생각하거나, 또는 성경 몇구절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것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늘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전제되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크고도 웅장한 구속의 계획에 따라서 움직이는 구속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것을 아는 일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을 단순히 점(點)으로 볼 것이 아니고 선(線)으로 볼 줄 아는 시야가 열려질 때 성경의 바른 진리를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길게 하는고 하니 오순절 성령강림은 제자들의 기도의 열정 때문에 되어진 사건이 아니고 주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기도의 불필요나 기도의 중요성을 낮추어 보려는 뜻이 아니고,

사도들의 열정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섭리가 우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간섭으로 된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으로 계시던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이제는 주님의 피값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가기 위하여는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하겠고, 그것은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초자연의 사건이 있어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구속운동의 가장 중요한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부르심, 출애굽,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과 마찬가지로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구속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데는 저들 자신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해둘 것은 성령은 그 전에 없었다가 오순절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천지창조에 함께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성령을 마치 심부름꾼 부리듯이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가 있을 때 우리는 늘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전에 계셨고 창조 사역과 구속사역에 성부 성자와 더불어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주님의 성령이 교회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충만해야 이 크나큰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큰 시각으로 성령을 봐야하고 단어의 의미에 대한 단순한 해석과,

적용만 한다면 전체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큰 윤곽을 그리면서 본문의 뜻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ꡒ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2:1절)라고, 오순절이란 절기에 무게를 실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l:5)고 예언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성령의 세례 곧 성령충만이 임하는 날을 오순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몇날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을 계셨으나 이 말씀을 예언한 후 열흘만에 성령세례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순절이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간섭 그리고 구속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월절 다음가는 절기입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 절기를 지킴으로써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첫 수확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순절은 새로운 삶의 출발을 의미한 날이었던 것처럼 오순절날 성령강림의 사건은 교회시대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되었음은 누가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큰 의미를 부가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유월절에 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유월절의 어린양의 희생으로 상징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복음의 세계화와 선교를 위해서 때를 맞추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께서 한국의 명절 가운데 구정과 추석절을 생각해 보시면 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명절에는 민족의 대이동 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와 비슷하게 오순절에 예루살렘은 절기를 지키려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성대한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흩어져 다른 문화권과 다른 나라에 살던 유대인들이 모인 곳에서 성령강림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 때문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 세계 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특별히 오순절의 사건은 구약에서의 시내산 사건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 강림의 장면은 율법이 시내산에서 공포되는 모습과 아주 비슷합니다.

우선 사도행전 2장의 본문에서는 성령강림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졌다고 했습니다(2-3절). 한편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하는 사건에는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로 온 산천이 진동하고 연기가 자욱했고,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강림했습니다.(출19:16-l0).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받았다면 오순절 날에는 성령충만과 방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행위로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의 탄생에 버금가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저자가 오순절날에 성령강림이 있었음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본문을 살피면서 깊이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운동은 어찌 그리 섬세하고 완전 한가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는 구속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철저히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교회의 기초를 놓으시고 세계 선교를, 준비하신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웅장한 계획과 섭리를 아멘으로 받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크시고 놀라운 구속행위를 믿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내가 결정한 때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대한 일을 준비하시고,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예비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보면 저희가 다 한 곳에 모였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강림과 성령충만을 주시기 위해서 120명의 제자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시고, 기도로 준비시켰습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덤비면 안됩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과 성의를 다해서, 그리고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없이 또는 기다릴 줄 모르고 가볍게 결정하고 덤비는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당장 무슨 결과가 없다고 속단해 버리거나 원망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구절에는 성령강림의 현상이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그리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강림에 일어난 초자연적 사건입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구속사에 있어서 단 한번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때의 현상을 체험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말씀과 성령이 더불어 역사하면서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방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며 순종(順從)케 하시며 믿음으로 살도록 해 주십니다.

일만 마디의 방언(放言)보다도 깨달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重要)합니다. 우리 시대에도 방언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목적도 없는 방언일 뿐 아니라, 또 알아 들을 수 없는, 자신도 모르는 소리를 내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을 뿐더러 도리어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순절의 성령강림 때 일어난 방언 문제를 좀더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들로서 본국어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갈릴리 사람으로 취급 받았지만 일반의 인식은 갈릴리 사람은 무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자들의 입을 열어서 당시로서 전세계 흩어져 있는 15여개국의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방언으로 말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소동하고, 놀라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ꡓ라고 한 분도 있었지만, 다른 반응은 ”저희가 새술에 취하였도다ꡓ(13절)라고 비꼬았습니다. 이런 반응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비상수단을 사용했는가 함입니다.

그것은 오순절이란 이토록 좋은 기회에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말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 말을 갑자기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제자들의 입을 열어 각국 방언으로 말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쌓았던 바벨탑이 무너질 때 민족과 민족들이 분화되어 언어불통의 비극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언어불통의 문화적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사람과 사람의 벽을 허물고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서 출생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힘있게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 곧 구속의 사건을 증거하는 공동체가 곧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 성령충만이 교회를 탄생케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충만의 목적인 복음증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순절에 끊어졌던 대화의 장벽이 무너졌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언어가 소통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는 자에게 풍성한 성령, 충만한 성령의 은사를 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이 죄와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자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속에 기록된 것을 지켜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므로 하늘나라 확장에 귀하게 쓰임 받아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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