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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행1;15-26절)
대산지기
2007. 2. 8. 11:12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행1:15-26절, 355.348.506장.& 오늘날 세상(世上)의 모든 문제(問題)는 결국 인간(人間)의 마음의 문제(問題)입니다.ꡒ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ꡓ이 말씀은 제자 한 분을 보선하기 위하여 복수 추천해서 투표하기 직전에 사도들이 기도한 내용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예수를 팔아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고 로마 군병에게 체포하도록 주선했던 가룟 유다의 배신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결국 자기의 잘못을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목메어 자살했고 곤두박질해서 배가 터져서 창자가 흘러나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마귀의 꾐에 빠지면 별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속사의 섭리는 가룟 유다의 배신을 오히려 역전시켜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예언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여간 가룟 유다가 죽었기 때문에 한사람의 제자를 보선해서 열 둘을 채워야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왜 꼭 열 둘을 채우려고 했던가 하는 문제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사건이 불과 40여일 밖에 되지 않았고 경계가 풀려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또 시간적으로 봐서 오순절 성령강림이 있기전 이었는데,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길래 제자 한 사람을 보선하는 것을 그토록 서둘렀는가 함입니다. 또 이 본문의 저자인 누가는 이 부분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제자 한 사람을 서둘러서 보선한 이유는 열둘이란 숫자의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구속운동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세우신 것도 새로운 이스라엘 곧 영적 이스라엘을 일으키기 위한 일꾼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성경은 수에 대한 개념이 특별하다는 것을 어디나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둘은 증거의 수요, 삼은 거룩한 것, 그리고 12는 완전수로 이해한 듯 합니다. 그것은 현대인들의 경우도 나라 마다 수에 대한 인식이 특별한 것입니다. 예컨대 한국사람은 4란 수를 싫어하고 서양사람은 13을 싫어합니다. 하여간 당시 사도들이 11사도로서는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기에는 어쩐지 충족되지 않고 기어히 12를 채워야 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보선을 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의 24장도 어린 양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 봐서 그것도 신 구약을 합친 상징적인 숫자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성경이 맛디아 보선의 장면을 자세히 다루면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읽은 본문 15절에서 22절까지는 베드로의 설교로서 제자 보선의 역사적 배경과 당위성을 제안하고 있음도 큰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당시에 무리의 숫자는 120여명이 있음을 정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유다의 배신과 자살을 단순히 같은 신앙의 동지가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배신했다는데 두지 않고, 이 본문에서 지적하는 대로ꡒ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다"(16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것을 발견합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열었을 뿐 아니라 기록자인 누가의 마음도 열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과 성취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윗이 유다의 배신과 그 결과를 예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69:25절의 기록대로ꡒ그의 거처도 황폐케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ꡓ하는 것이 가룟 유다에게 적용되는 예언이며, 시109:8절에ꡒ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ꡓ(20절)란 말을 제자 보선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참뜻을 잘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경을 점(點)으로 보기 보다는 선(線)으로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야 하나님의 구속사의 위대한 맥을 보게 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심령에 바로 깨닫게 되고 그리할 때 확신과 순종의 마음이 넘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깊이 깨닫는 것은, 복음 운동은 무절제하고 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원칙과 질서가 있고, 조직적이어야 함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복음운동은 말씀과 성령으로 되어지는 것이지만,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직과 질서를 갖추어야 할 것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사도 보선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12사도 와는 같이 일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을, 확실히 지켜본 목격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제자들 중에는 12사도 외에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할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직분의 원칙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직분을 맡길 때 적어도 이런 확신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의 모든 초자연적 이적과 기사와 그의 교훈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마음 가운데 확실한 부활의 신앙을 갖고, 또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직분은 주님이 주신 것이므로 한다 못한다고 내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순종해야 됩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은 것은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가 표준도 아니고, 열심이나 학력을 중심한 것도 아니고 이 직분을 다해서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제 긍휼로 덧입혀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기도하면서 새로 뽑힐 제자의 일감을 설명하면서ꡒ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ꡓ(25절) 라고 했습니다. 직분자는 자기가 영광 받는 자가 아니고 봉사자, 곧 섬기는 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섬기는 자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고 말없이 순종하는 자입니다. 고요히 섬기는 자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예수의 복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섬기기 위한 부름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 본문 중에서 두 사람을 복수 추천해서 제비 뽑아 맛디아를 세운 것도 좀 특이합니다. 이 본문도 철저히 사람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투표는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을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무엇을 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오늘 마침 이 본문을 순서대로 살피면서 여러가지 문제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 중에 처음 말씀드린 대로 사도 보선을 앞두고 기도하면서ꡒ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ꡓ란 기도를 좀더 깊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이 본문의 사건의 전개는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을 그 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아시는 주님을 좀더 가까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마음에 대한 말씀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얼굴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도 하나님을 대할 때 우리의 학벌이나 재물이나 우리의 외모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다른 사람은 잘 모를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또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까? 이 본문에서 사도들이 기도하면서ꡒ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ꡓ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다는데 우리의 마음은 어떠하다는 것입니까? 성경의 표현대로 보면 마음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마음이란 사람의 존재와 이상적 인격의 중심입니다. 또 마음은 사람의 생명과 몸의 중심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란 사람의 지․정․의의 원천이며 총체입니다. 또 마음이란 우리 사람의 종교, 문화, 과학을 산출해 내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으나 마음이 불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성경 표현대로 하면 예컨대 8복 중에 6개는 마음의 상태가 복이라고 했고, 2개는 행동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6개의 항목도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상태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 화평하게 하는 자와 핍박을 받는 자입니다. 복이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의 상태냐가 갈림길입니다. 가령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부러운 것이 없다고 해도 마음이 불결해서 미워하고 증오하며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는 자람은 참으로 복된 자는 아닐 것입니다. 복의 개념을 G.N.P로 측정하거나 복의 개념을 수출의 액수로 환산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세상의 참된 축복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깨끗하고 고결한 마음을 갖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도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는 상한 마음입니다. 시38:8절에ꡒ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ꡓ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마음 곧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해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둘째는 깨끗한 마음 곧 정한 마음입니다. 시51:10절에 보면ꡒ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말씀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다윗은 정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정한 마음은 자기 스스로는 안되고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 죄로 어두어진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나아갈 때 변화된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출25:2에 보면ꡒ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는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ꡓ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할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면 피곤을 느낍니다. 넷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정직한 마음입니다. 시64:10절에ꡒ의인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라ꡓ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곧 믿는 마음입니다. 롬10: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마음으로 믿는지 안믿는지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며 한없는 자비를 주실 줄 믿습니다. 여섯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참된 마음입니다. 히10:22절에ꡒ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가 있어도 절대로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만을 하나님은 상대하여 주십니다. 일곱째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6:5절에ꡒ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性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ꡓ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야말로 삶의 전부(全部), 마음을 다드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말씀을 보는 중에ꡒ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ꡓ라고 사도들의 기도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일꾼을 선출할 때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인물을 뽑아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신앙이 있어야 주님의 교회를 섬길 수 있고 악하고 죄악된 세상을 이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마음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돌짝밭 같거나, 우리의 마음이 가시밭 같거나, 단단히 굳어있는 길바닥처럼 되어서는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옥토와 같이 복음의 씨가 잘 심겨져서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나무가 되어 30, 60, l00배 열매맺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시33:15)이 우리의 마음의 비밀(시44:21)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믿음을 갖고, 진실하고 깨끗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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