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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승천하신 예수님. (행1:1-11절)

대산지기 2007. 2. 8. 11:12
승천하신 예수님.
행1:1-11절, 157.162.498장.&

본문을 살피기 전에 사도행전을 저술한 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책을 읽던지 저자의 인격과 삶을 잘 안다면 그 책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聖經) 저자(著者)의 인격과 삶을 모두 사용하시면서 그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입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과 일생동안 복음의 동역자로 일하던 사람이고 본래는 의사였습니다. 그는 교육을 잘 받은 문화인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가 이기도 했습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주치의요, 환난과 역경을 함께 하고 옥에도 함께 갇혔고 사도 바울의 임종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가 친히 듣고, 보고, 배우고, 체험한 내용을 한 편의 완전한 논문처럼 잘 다듬어서 초대교회의 신앙이 무엇이었으며,

복음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세계로 확장되었는가를 순서 대로 자세히 논했습니다. 물론 누가는 사도행전을 쓰기 전에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말하자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그의 저술 제1권이라고 한다면,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오순절 성령강림과,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떻게 성장했으며, 복음이 온 천하에 증거되어 갔는지를 기술한 두번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 가운데는 흔히 누가 행전이라고 해서 두 책을 같은 맥에서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두 책은 모두가 누가의 저작으로서 의학 용어가 많고 똑같이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로서 겸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전과정을 확실히 믿었을 뿐 아니라 사도들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 모든 증거의 활동이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철저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시각에서 이 성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저자 누가는 행1:1-2절에서 다음과 같은 서문을 썼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ꡓ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누가복음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많은 명백한 증거로 드러내었음을 전제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을 기초하여 사도행전을 기술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앞서 기록한 예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 그 바탕 위에서 이 글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의 서론적인 메시지에서 벌써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을 쓸 수 있게 된 동기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저 자기 중심적인 소원사항이나 이기주의적 종교적 요구가 아니고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의 사건 위에 기초한다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본문에 기록된 깊은 진리를 좀더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부활과 예언의 말씀이 있었습니다.ꡒ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고 했습니다.

앞으로 좀더 이 본문을 설명하겠지만 우선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육신으로 계시던 예수님이 승천하여 영으로 돌아가면 제자들이 어떤 형편과 처지가 될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세례를 받을 터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힘들고, 외롭고, 낙담이 된다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일단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120문도의 기도의 결과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옳게 깨달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들의 관심은ꡒ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1:6)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關心)은 아직도 민족(民族)이 독립이 되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을 행사하시는데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심히 조급했습니다. 속히 그들은 승리의 한 때를 만끽하면서 살고 싶었고,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영광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물음에 초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ꡒ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몸으로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감이 있는데 그것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님의 유언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천하에 증거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요, 전도(傳導)와 선교(宣敎)가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 성경 본문을 잘 살펴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앞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실 성경은 모든 선지자들의 움직임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참고 견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진행된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야 탄생의 약속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꿈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근거도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고 우리가 전도할 수 있는 근거도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붙들린 삶을 살 때,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뜨거워질 때, 비로소 증인의 사명 곧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기도해야만 합니다. 4절 말씀에 기다리라는 말씀은 그저 앉아서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뒤에 있는 말씀을 보면 120문도가 다함께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기도 때문에 되어진 것은 아니지만, 성령강림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것은 기도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할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먼저 기도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기도할 때 은혜를 받는 준비를 하는 것이고 그래야 겸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단순히 구호나 조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個人的)으로 각 전도회나,

구역으로나 각급 주일학교에서 서서히 기도(祈禱)운동(運動)이 일어날 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성경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방법으로 일하시지만 그러나 먼저 기도로 훈련시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증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임재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의 권능없이는 전도뿐 아니고 교육도 봉사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영이 없는데,
무슨 전도를 할 수 있습니까? 성령이 우리 속에 있으면 우리의 얼굴과 우리의 걸음 걸이에 벌써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님의 냄새가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령 충만은 인위적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성령충만을 희망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한 삶이란 먼저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지는 것은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는 곧 우리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심령을 성령이 거하는 전이 되도록 개방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심령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베드로는 용감한듯 하면서도 겁이 많아서 여자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 그는 담대한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 같은 능력과

담대함이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베드로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 합니까? 왜 우리는 전도를 부끄러워 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성령 충만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 년에 수천명을 전도했다는 어떤 여집사님의 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래서 자기 주장을 할 처지도 못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의 마음 속에 복음의 열정이 불타고 성령께서 그 마음에 함께 하실 때 큰 역사를 이룬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 말아야 할 것은 전도는 특별한 은사가 아니라 성령충만 받으면 어떤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앞서 말씀드린 성령충만의 결과로서 이런 권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권능은 특별한 체질의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고,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은혜를 받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갖게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권능은 말 그대로 권세있는 능력입니다.

권세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요한복음1:12절에ꡒ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느니라ꡓ고 했습니다. 권능은 무슨 방법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다섯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문11절에 보면 천사가 말하기를ꡒ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ꡓ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再臨)을 고대할 것입니다. 이런 확신(確信)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전도(傳導)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現代) 교회(敎會)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 신앙이 형편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 재미 때문에, 물질의 풍요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것이 식어졌습니다. 전도의 열정이 식어지는 것은 바로 재림 신앙의 약화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은 예루살렘에서 시작(時作)해서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가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참된 세계화는 복음화(福音化)가 이루어 질 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福音)이 들어가는 곳마다 개인(個人)과 개인의 장벽(障壁)이 무너지고, 복음이 증거(證據)되는 곳마다 사람이 변화되고 세계관과 인생관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證人)이 되는 것은 세계(世界)를 복음으로 변화(變化)시키는 것입니다. 땅끝까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時作)합니다.

세계의 복음화를 목표로 하되 가정의 복음화, 이웃의 복음화, 민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내 증인이 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방법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님이 우리 속에 임재해 계시기에 성룡 충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 주님의 귀한 증거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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