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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울의 자기 변증, (행22:1-30절),
대산지기
2007. 2. 8. 11:10
바울의 자기 변증
행22:1-30절, 241.209.235장.&
바울의 간증은 모든 세대의 믿는 자들에게 계속적으로 교훈을 줄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소동을 일으켰었던 성난 군중들 앞에서 간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바울의 변호입니다.(1-21절) 이것은 바울의 회심에 대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세 번의 설명 중 두 번째 설명입니다.(9, 26절). 그들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는 사실이 유대인들을 진정시키고 흥미를 가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바울의 초기의 경력입니다.(1-5절)
바울은 귀중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이었습니다. 28장에서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몸으로 태어났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초기 교육은 위대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의 가장 훌륭한 훈련을 받았습니다.(5:34-).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또 다른 모습은 빌립보서 3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젊은 바리새인으로서의 바울이 모세의 율법에 열성스러웠던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열의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까지 이르렀었습니다. 참된 기독교는 결코 박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합니다. 오히려 언제나 박해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은 그리스도 없는 종교입니다. 5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묶어오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두 쇠사슬에 묶여 그곳 예루살렘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2)바울의 놀라운 회심입니다.(6-16절) 하늘의 빛이 가장 밝을 때에(정오)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사단의 어두움은 가장 깊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죽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위대한 빛으로 바울을 "체포하셨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이 그 위에 빛을 비춰 주시기까지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고후4장). 바울은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아나니아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왕국에 대한 멧세지에서, 교회에 대한 멧세지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곳 유대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아나니아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이 바울의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세례는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빛에 비추어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전환의 시기 동안에(8-12장) 회심하여 세례를 받았는데, 이 때는 세례와 안수가 성령을 받는 데에 있어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오늘날 모든 신자들을 위한 본보기로서, 바울의 경우를 사용하는 것은 구원과 세례에 대해 하나님이 제시하신 형식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3)바울의 특별한 사명입니다.(17-21절) 바울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와서(행9:26절), 성전에서 기도하며 몽환 가운데 빠졌었습니다. 이것과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이 베드로를 이방인에게 갈 준비를 시킬 때 베드로가 겪은 몽환과 비교하는 것은 흥미진진합니다.
베드로는 육신적으로 배고픈 상태에 있었으며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마음으로 "주려"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의 그리스도와 같이 이것은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도의 변론과 논쟁은 거룩하신 명령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아마도 체포하여 돌로 쳤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의 사역은 너무 빨리 끝나게 됩니다.
또한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연관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의 왕국 프로그램이나 또는 베드로의 사역에 밀착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21절에서 이방인이란 증오스러운 단어가 언급되기까지는 바울의 설명을 열중하여 들었습니다.
2.민족의 책임입니다.(22-30절) 그리스도의 예고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 민족은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반대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비대장은 매질하여 그를 조사할 수 있는 가까운 성으로 바울을 데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많은 죄인들이 이런 식의 고문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다시 한 번 바울은 자신과 그의 사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사용합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로마 시민을 취급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었으므로 바울은 법적인 특권의 유리한 면을 이용하였습니다.
수비대장은 로마 시민권을 돈으로 사고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그가 "자유의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알렸습니다. 이 말은 그의 아버지가 인정받는 로마 시민이었음을 뜻했습니다. 수비대장은 결박을 풀고 다음 날 유대인 공회를 소집할 때까지 바울을 지키도록 했는데,
23장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을 다룹니다.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재 고찰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민족은 이미 세 번의 살인을 범했습니다,(세례 요한, 그리스도, 스데반). 로마수비대의 개입을 통하여 바울을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네 번째 살인을 범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바울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였으며(22:20절), 어떤 의미에서 이 민족의 죄악에 대해 돌을 던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제 제쳐졌고, 그들의 유예 기간이 끝났으므로 그리스도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22:18절).
사도행전의 남은 부분은 죄수로서의 바울, 유대인들 앞에서의 그의 시련, 그리고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 장들을 어떻게 읽을 수 있었겠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의 실수를 그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로마에서 죄수로 있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썼는데, 이들은 오늘날 없어서는 안될 교회의 진리들로 가득 찬 서신들입니다.
3.실천적인 교훈들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 조차 하나님의 뜻에서 우회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동기가 옳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잘못 딛은 발걸음은 또 다른 잘못으로 인도해 갑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왔으며 유대인들과 거래를 하게 되고, 체포되어 굴욕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문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에게는 닫혀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며, "새 사람"(교회,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득 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외부 사람들을 향하여 지혜롭게 행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 은혜스럽게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들을 향한 사랑과 동정심으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걸림이 되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외곡 하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율법사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구원시키고 그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이 거부함으로 우리에게 은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이방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강하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여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고 앞으로 안내하는 일에 충성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22:1-30절, 241.209.235장.&
바울의 간증은 모든 세대의 믿는 자들에게 계속적으로 교훈을 줄 것입니다. 바울은 그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소동을 일으켰었던 성난 군중들 앞에서 간증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바울의 변호입니다.(1-21절) 이것은 바울의 회심에 대하여 사도행전에 나오는 세 번의 설명 중 두 번째 설명입니다.(9, 26절). 그들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는 사실이 유대인들을 진정시키고 흥미를 가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바울의 초기의 경력입니다.(1-5절)
바울은 귀중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이었습니다. 28장에서 그는 자신이 "자유로운 몸으로 태어났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초기 교육은 위대한 랍비인 가말리엘 문하의 가장 훌륭한 훈련을 받았습니다.(5:34-).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의 또 다른 모습은 빌립보서 3장에서도 나타납니다.
젊은 바리새인으로서의 바울이 모세의 율법에 열성스러웠던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열의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데까지 이르렀었습니다. 참된 기독교는 결코 박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합니다. 오히려 언제나 박해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은 그리스도 없는 종교입니다. 5절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묶어오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두 쇠사슬에 묶여 그곳 예루살렘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2)바울의 놀라운 회심입니다.(6-16절) 하늘의 빛이 가장 밝을 때에(정오)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사단의 어두움은 가장 깊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신이 찾아낼 수 있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죽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위대한 빛으로 바울을 "체포하셨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이 그 위에 빛을 비춰 주시기까지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고후4장). 바울은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의 음성을 들었으며, 그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아나니아를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라고 언급한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왕국에 대한 멧세지에서, 교회에 대한 멧세지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곳 유대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아나니아를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러한 사실이 바울의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세례는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빛에 비추어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전환의 시기 동안에(8-12장) 회심하여 세례를 받았는데, 이 때는 세례와 안수가 성령을 받는 데에 있어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오늘날 모든 신자들을 위한 본보기로서, 바울의 경우를 사용하는 것은 구원과 세례에 대해 하나님이 제시하신 형식을 모르는 소치입니다.
3)바울의 특별한 사명입니다.(17-21절) 바울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와서(행9:26절), 성전에서 기도하며 몽환 가운데 빠졌었습니다. 이것과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이 베드로를 이방인에게 갈 준비를 시킬 때 베드로가 겪은 몽환과 비교하는 것은 흥미진진합니다.
베드로는 육신적으로 배고픈 상태에 있었으며 그의 백성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는 마음으로 "주려"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의 그리스도와 같이 이것은 그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도의 변론과 논쟁은 거룩하신 명령을 변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아마도 체포하여 돌로 쳤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의 사역은 너무 빨리 끝나게 됩니다.
또한 바울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연관된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의 왕국 프로그램이나 또는 베드로의 사역에 밀착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21절에서 이방인이란 증오스러운 단어가 언급되기까지는 바울의 설명을 열중하여 들었습니다.
2.민족의 책임입니다.(22-30절) 그리스도의 예고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 민족은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반대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비대장은 매질하여 그를 조사할 수 있는 가까운 성으로 바울을 데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경험이었습니다.
많은 죄인들이 이런 식의 고문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다시 한 번 바울은 자신과 그의 사역을 보호하기 위하여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사용합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로마 시민을 취급하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 아니었으므로 바울은 법적인 특권의 유리한 면을 이용하였습니다.
수비대장은 로마 시민권을 돈으로 사고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그가 "자유의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알렸습니다. 이 말은 그의 아버지가 인정받는 로마 시민이었음을 뜻했습니다. 수비대장은 결박을 풀고 다음 날 유대인 공회를 소집할 때까지 바울을 지키도록 했는데,
23장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을 다룹니다.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을 재 고찰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민족은 이미 세 번의 살인을 범했습니다,(세례 요한, 그리스도, 스데반). 로마수비대의 개입을 통하여 바울을 구원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네 번째 살인을 범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바울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였으며(22:20절), 어떤 의미에서 이 민족의 죄악에 대해 돌을 던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제 제쳐졌고, 그들의 유예 기간이 끝났으므로 그리스도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22:18절).
사도행전의 남은 부분은 죄수로서의 바울, 유대인들 앞에서의 그의 시련, 그리고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만일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이 장들을 어떻게 읽을 수 있었겠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의 실수를 그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로마에서 죄수로 있는 동안 바울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를 썼는데, 이들은 오늘날 없어서는 안될 교회의 진리들로 가득 찬 서신들입니다.
3.실천적인 교훈들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 조차 하나님의 뜻에서 우회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동기가 옳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번 잘못 딛은 발걸음은 또 다른 잘못으로 인도해 갑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왔으며 유대인들과 거래를 하게 되고, 체포되어 굴욕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문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에게는 닫혀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하여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며, "새 사람"(교회,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님의 마음에 가득 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외부 사람들을 향하여 지혜롭게 행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 은혜스럽게 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들을 향한 사랑과 동정심으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걸림이 되었던 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외곡 하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율법사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구원시키고 그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이 거부함으로 우리에게 은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이방인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강하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여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고 앞으로 안내하는 일에 충성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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