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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울의 고별(告別) 설교(說敎), (행20:17-38절)
대산지기
2007. 2. 8. 10:41
바울의 고별(告別) 설교(說敎)
행20:17-38절, 210.355.513장.
하나님께서 쓰신 바울은 전도자요 선교사요 대설교가이자 목회자였습니다. 이 본문은 바울이 온 마음을 다하여 3년 가까이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과 성도들을 불러 모으고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바울은 한 목회자로서 심정을 솔직히 표현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에는 교회가 무엇이며 목회가 무엇이며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승리할 뿐 아니라 교회를 잘 받들어 섬기고 진리를 파수해서 이단을 막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누가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이 설교의 중심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며 복음이 중심으로 되었습니다. 또한 이 설교를 통해서 양떼들 곧 성도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 가운데는 교회의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 가운데 세가지가 특별히 부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고백적인 설교를 통해서 목회의 원리를 깨달을 뿐 아니라, 목회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통적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첫째로 목회자로서 바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래 그리스도의 믿음의 대적자였으나 그가 하나님의 은총의 포로가 된 다음에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으며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더불어 살아났으며, 그가 가진 모든 기득권을 걸레처럼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생 동안에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된, 그것을 붙들려고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놓았습니다.
19절에 보면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8절에 있는대로 에베소 교회(敎會) 장로(長老)들과 성도들이 다 아는 사실(事實)임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은총의 포로가 된 후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그는 율법학자로서 정통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자부심과 교만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요 목회자로서의 바울은 겸손의 모델이었습니다.
그 겸손은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세우는 일이며 날마다 죽어지는 삶이었고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선교사와 전도자와 목회자로서 들어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겸손한 자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사도 바울이 목회자로서 겸손의 삶이 그 자신의 의지 때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는 바울 자신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평생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교역자가 겸손하면 성도들도 더불어 겸손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출 때 큰 은혜(恩惠)와 위로(慰勞)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 다음은 사도 바울의 눈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사랑함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눈물의 사도였습니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가장 순수한 것은 눈물입니다. 눈물이 메마르면 은혜가 메마르다는 증거입니다. 눈물이 메마르면 사랑이 메마르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도들을 향한 눈물이 부족한 것을 회개합니다.
그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보고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눈물을 되돌려 달라고 말입니다. 눈물은 슬퍼도 나오지만 기뻐서도 나옵니다. 그리고 감사해서도 눈물이 나옵니다.
죄를 회개하고 애통히 여길 때 눈물이 나오고 사죄의 은총을 받을 때 감사해서 눈물이 나옵니다. 눈물이 많은 교회가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교역자나 성도들이 모두 함께 눈물을 되돌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눈물이 있을리 만무하고, 헌신이 뒤 따르지 않으면 눈물이 있을리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고자 해도 남편과 자녀를 위한 눈물이 없으니 안됩니다. 이웃을 전도하자고 해 놓고도 이웃의 영혼을 위한 눈물이 없기 때문에 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은 메마른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눈물입니다. 타락한 어거스틴을 위대한 신학자와 설교자 성어거스틴을 만든 것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그 다음은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인내입니다.
성경(聖經)대로는"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라고 했습니다. 이방인(異邦人)의 사도인 바울은 자기 동족으로부터 배신자로 취급받고 가는 곳곳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실상 바울은 유대인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눈물뿌려 기도했지만, 유대인들의 간악한 흉계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끝까지 참고 인내(忍耐)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목회란 곧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牧會者)는 어떤 경우라도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심한 스트레스와 간장이 녹아 나는 고통(苦痛)을 당합니다. 목회는 목사(牧師) 혼자서 한다기 보다는 온 성도들이 더불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같이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신앙의 승리를 원한다면 참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의 목회(牧會)는 주를 섬기는 삶이었음을 자신(自身)있게 말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절)고 했습니다. 바울의 섬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 없이 바울 없고, 섬김이 없이는 참된 신앙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토록 인내와 사랑과 섬김의 삶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으나, 그들은 섬기기는 커녕 언제나 서로 높아지려 하고 섬김을 받기만을 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아무리 귀한 진리를 듣고 배운다고 할지라도 주를 위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구체적 헌신과 뜻을 받들 수 있겠습니까? 섬김을 받으려면 교만해 질 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섬기면 겸손을 배우게 되고 심령의 평화와 감사가 생깁니다.
바울의 신분으로 볼 때 그는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뒤로,그는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도 주님께 전적으로 붙들려야 섬김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둘째로 목회자로서 바울의 설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은총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것임을 소리 높혀 외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자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없는 자에게 복음의 빚진 자인 것을 알았고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롬1:14-16). 사도 바울의 메시지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이고, 둘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행 20:21). 바울의 설교는 하나님 앞에 인간은 죄인이므로 회개하여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회개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회개없이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돌이키는 것은 습관적인 죄와 우리 속에 있는 죄악에 대해서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없이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없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신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일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마5:8절)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세례 요한은"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l:15절)고 했습니다. 바울은 회개 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목회자로서의 인격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설교의 원리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설교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설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를 외칠 때 아멘으로 화답하고 겸손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십시오. 바로 이것이 우리들 신앙의 핵심입니다. 설교는 마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눈물을 요구하고 순종을 요구하며 헌신을 요구합니다. 동시에 설교는 사죄의 은총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환희와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러한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아멘하면서 응답하고 감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셋째는 목회자로서 사도 바울의 사명과 결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4절에 보면"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절)고 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자유로운 몸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바울은 이미 이러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 이 고별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던졌습니다. 바울이 생명을 건 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며, 예수 때문이며,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성이나 사도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승리보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복음! 그 위대함 앞에서 우리도 삶 전체를 드리며 생명을 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를 지켜 나가는 것도 순교자의 피를 통해서 계승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순교적 신앙도 사라지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이 교회를 속되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진리를 위해서 생명을 거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와 섬김의 삶을 통해서 교회를 참 교회되게 하는 일에 모두 앞장 서야겠습니다. 목회자의 심정을 헤아려 함께 기도합시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될 때 우리 개인도 교회도 크게 부흥될 줄 믿습니다. 우리를 든든히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행20:32절). 그러므로 말씀이 옳게 선포(宣布)되거든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폭적(全幅的)으로 믿고 따라 갑시다.
이것이 교역자(敎役者)와 성도(聖徒)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과제(課題)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입니다.
이 사명(使命) 잘 감당하여 주님 앞에섰을 때 착하고 충성(忠誠)된 종아 너가 작은 일에 충성(忠誠)하였으매 천국(天國)잔치에 참여 하라는 축복(祝福)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늠 성도(聖徒)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행20:17-38절, 210.355.513장.
하나님께서 쓰신 바울은 전도자요 선교사요 대설교가이자 목회자였습니다. 이 본문은 바울이 온 마음을 다하여 3년 가까이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과 성도들을 불러 모으고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바울은 한 목회자로서 심정을 솔직히 표현하면서 비장한 각오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에는 교회가 무엇이며 목회가 무엇이며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믿음으로 승리할 뿐 아니라 교회를 잘 받들어 섬기고 진리를 파수해서 이단을 막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누가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물론 이 설교의 중심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며 복음이 중심으로 되었습니다. 또한 이 설교를 통해서 양떼들 곧 성도들을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는 목회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 가운데는 교회의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 가운데 세가지가 특별히 부각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고백적인 설교를 통해서 목회의 원리를 깨달을 뿐 아니라, 목회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통적인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첫째로 목회자로서 바울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래 그리스도의 믿음의 대적자였으나 그가 하나님의 은총의 포로가 된 다음에 바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으며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더불어 살아났으며, 그가 가진 모든 기득권을 걸레처럼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생 동안에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된, 그것을 붙들려고 달려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놓았습니다.
19절에 보면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자기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8절에 있는대로 에베소 교회(敎會) 장로(長老)들과 성도들이 다 아는 사실(事實)임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은총의 포로가 된 후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그는 율법학자로서 정통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자로서의 자부심과 교만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요 목회자로서의 바울은 겸손의 모델이었습니다.
그 겸손은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세우는 일이며 날마다 죽어지는 삶이었고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선교사와 전도자와 목회자로서 들어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겸손한 자를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사도 바울이 목회자로서 겸손의 삶이 그 자신의 의지 때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는 바울 자신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한 평생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교역자가 겸손하면 성도들도 더불어 겸손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출 때 큰 은혜(恩惠)와 위로(慰勞)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 다음은 사도 바울의 눈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을 사랑함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눈물의 사도였습니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가장 순수한 것은 눈물입니다. 눈물이 메마르면 은혜가 메마르다는 증거입니다. 눈물이 메마르면 사랑이 메마르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도들을 향한 눈물이 부족한 것을 회개합니다.
그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보고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눈물을 되돌려 달라고 말입니다. 눈물은 슬퍼도 나오지만 기뻐서도 나옵니다. 그리고 감사해서도 눈물이 나옵니다.
죄를 회개하고 애통히 여길 때 눈물이 나오고 사죄의 은총을 받을 때 감사해서 눈물이 나옵니다. 눈물이 많은 교회가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교역자나 성도들이 모두 함께 눈물을 되돌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눈물이 있을리 만무하고, 헌신이 뒤 따르지 않으면 눈물이 있을리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고자 해도 남편과 자녀를 위한 눈물이 없으니 안됩니다. 이웃을 전도하자고 해 놓고도 이웃의 영혼을 위한 눈물이 없기 때문에 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은 메마른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눈물입니다. 타락한 어거스틴을 위대한 신학자와 설교자 성어거스틴을 만든 것은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그 다음은 목회자로서의 바울의 인내입니다.
성경(聖經)대로는"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라고 했습니다. 이방인(異邦人)의 사도인 바울은 자기 동족으로부터 배신자로 취급받고 가는 곳곳마다 핍박을 받았습니다.
실상 바울은 유대인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눈물뿌려 기도했지만, 유대인들의 간악한 흉계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끝까지 참고 인내(忍耐)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목회란 곧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牧會者)는 어떤 경우라도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심한 스트레스와 간장이 녹아 나는 고통(苦痛)을 당합니다. 목회는 목사(牧師) 혼자서 한다기 보다는 온 성도들이 더불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같이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신앙의 승리를 원한다면 참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의 목회(牧會)는 주를 섬기는 삶이었음을 자신(自身)있게 말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절)고 했습니다. 바울의 섬김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 없이 바울 없고, 섬김이 없이는 참된 신앙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토록 인내와 사랑과 섬김의 삶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으나, 그들은 섬기기는 커녕 언제나 서로 높아지려 하고 섬김을 받기만을 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아무리 귀한 진리를 듣고 배운다고 할지라도 주를 위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구체적 헌신과 뜻을 받들 수 있겠습니까? 섬김을 받으려면 교만해 질 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섬기면 겸손을 배우게 되고 심령의 평화와 감사가 생깁니다.
바울의 신분으로 볼 때 그는 섬김을 받아야 할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뒤로,그는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도 주님께 전적으로 붙들려야 섬김의 기쁨을 알게 됩니다.
둘째로 목회자로서 바울의 설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복음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은총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것임을 소리 높혀 외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자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없는 자에게 복음의 빚진 자인 것을 알았고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롬1:14-16). 사도 바울의 메시지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이고, 둘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입니다(행 20:21). 바울의 설교는 하나님 앞에 인간은 죄인이므로 회개하여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회개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회개없이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돌이키는 것은 습관적인 죄와 우리 속에 있는 죄악에 대해서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회개없이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실 수 없습니다. 귀한 손님이 오신다면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일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마5:8절)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세례 요한은"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l:15절)고 했습니다. 바울은 회개 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바울은 목회자로서의 인격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설교의 원리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의 설교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설교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를 외칠 때 아멘으로 화답하고 겸손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십시오. 바로 이것이 우리들 신앙의 핵심입니다. 설교는 마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하고 눈물을 요구하고 순종을 요구하며 헌신을 요구합니다. 동시에 설교는 사죄의 은총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환희와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러한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아멘하면서 응답하고 감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셋째는 목회자로서 사도 바울의 사명과 결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4절에 보면"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절)고 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자유로운 몸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는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바울은 이미 이러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 이 고별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던졌습니다. 바울이 생명을 건 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며, 예수 때문이며,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위대성이나 사도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승리보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복음! 그 위대함 앞에서 우리도 삶 전체를 드리며 생명을 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를 지켜 나가는 것도 순교자의 피를 통해서 계승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순교적 신앙도 사라지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이 교회를 속되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진리를 위해서 생명을 거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겸손과 눈물과 인내와 섬김의 삶을 통해서 교회를 참 교회되게 하는 일에 모두 앞장 서야겠습니다. 목회자의 심정을 헤아려 함께 기도합시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될 때 우리 개인도 교회도 크게 부흥될 줄 믿습니다. 우리를 든든히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행20:32절). 그러므로 말씀이 옳게 선포(宣布)되거든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폭적(全幅的)으로 믿고 따라 갑시다.
이것이 교역자(敎役者)와 성도(聖徒)들이 함께 걸어가야 할 과제(課題)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使命)입니다.
이 사명(使命) 잘 감당하여 주님 앞에섰을 때 착하고 충성(忠誠)된 종아 너가 작은 일에 충성(忠誠)하였으매 천국(天國)잔치에 참여 하라는 축복(祝福)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늠 성도(聖徒)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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