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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1-8절),

대산지기 2008. 2. 28. 15:16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6:1-8절, 98.325.404장.*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두 가지 흐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거기 도취되어 결혼함으로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노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 시대를 정죄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보다 자세히 살피면서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이 본문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누구인가를 놓고 어떤이는 천사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전후 좌우를 놓고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바로 셋의 후예들인 하나님이 특별히 뽑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인 천인공노할 살인사건은 인류의 최초의 가정에서 빚어졌습니다. 그것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종교의 방법,

곧 예배의 방법 때문에 가인의 예배는 거부되고 아벨의 예배는 열납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혈육인 동생을 미워하다가 살인까지 하는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해서 다시 셋을 선택하시고 경건한 가정으로 살도록 택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나고 셋의 계통으로부터 많은 후손들이 퍼져 나갔습니다. 비록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으나 세속주의의 도전 앞에서는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흔들렸을 뿐 아니라 셋의 후손들은 아예 세속주의를 용납하고 거기에 빠졌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이 가졌던 택한 백성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철저히 세상의 향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결국 택한 자들과 불택자들의 구별이 없어졌습니다. 신자와 불신자간에 구별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불신 여인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혼사를 맺었습니다.

셋의 후손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도 이 세상의 향락과 유혹에 속수무책으로 녹아났습니다. 그들은 매력적인 타락한 문화에 아무 저항도 없이 그 타락(墮落)한 세속문화(世俗文化)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지경이 되니 하나님께서 셋의 계통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그 웅장한 계획은 한낱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표현대로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한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빈정대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인데 어떻게 후회할 수 있는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표현 그대로 인간이 철저한 타락과 죄성을 가졌기에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탄식이지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의심하는 구절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로 만들지 아니하시고 인격적인 실존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기쁨으로 순종하도록 하신 것이지, 기계적이거나 노예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자유의지를 가지고 죄짓는 일에만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도 노아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도 하나님께서는 위대하고 웅장한 구속운동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일을 이루십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이 본문의 줄거리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다시 한 번 묵상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기독교 신앙은 세속주의를 뛰어넘고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속주의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달콤합니다. 사탄의 무기는 언제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사탄은 멧돼지처럼 앞 이빨이 나와서 무섭게 생기거나 뿔이 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변장술의 천재입니다. 사탄은 매력적인 것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대개 성도들이 넘어질 때는 이런 과정을 밟게 됩니다. 환난과 핍박을 이겼는데 도리어 세속주의의 매력과 유혹에 넘어가서 그 신앙인격이 파산되고 완전히 넘어진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살펴보십시오! 차라리 핍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욕을 먹을 때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다가, 편안하고 행복하고 일이 잘 될 때는 세속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서, 믿음을 저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음식은 얼음이 얼 때는 썩지 않고 따뜻할 때 썩는 것처럼

너무 편하고 너무 문명의 이기가 많고, 너무 편리하고, 너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가고 무덤덤하고 차지도 덥지도 않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모습은 방만하고 무절제하고 엄벙덤벙 대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갔고,

자신을 회개하는 기도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오늘날 사탄이 사용하고 있는 연막작전은 세속주의입니다. 이 세속주의는 쾌락주의와 유물주의와 인본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잘 믿는 성도중에도 이단과 투쟁하고 비진리와 투쟁하여 이겼지만 세속주의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입니다. “다 그렇게 사는데 너라고 뭐 특별하냐?”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 “인간은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모든것을 할 수 있는거야” “인간은 기회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꼭 주일날 교회가서 말씀을 들어야 되는거냐 양심만 바로 가지면 되는거야”

“몸을 돌봐라 오늘은 어째 몸이 찌뿌둥하구나 음악이나 듣고 쉬려무나” “별나게 믿을 것 없다. 기회봐서 적절히 교회에 나가라”. 이런 사탄의 속삭임에 대부분 다 넘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성적, 도덕적 타락을 미화하는 세상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확산되고 있는 윤리적 타락은 가히 그 절정에 다 달았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경제논리 때문에 윤리적, 도덕적 결함은 문제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미국의 세속화의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돈만 된다면 부정도 비윤리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살필 것은 세속주의가 교회안에 깊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냐 비진리이냐를 묻지 않고 재미있느냐 없느냐? 내게 유익한가 유익하지 않는가를 먼저 따집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이 곧 선이요 진리인줄로 아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안맞으면 뒤에서 수근거리고 비난하고 거부합니다. 그것은 세속주의가 깊이 교회안에 들어온 증상입니다. 병이 들면 맥박과 호흡이 달라지고 열이 나는 것처럼 세속주의의 병세는 곳곳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면 교회 성장 콤플렉스를 가진,

목회자들이 교회의 성장만 된다면 무슨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흔히 말하는 열린 예배의 스타일로 기존의 예배의 틀을 부정하고 즐기는 예배로 변했습니다. 신명나게 록음악 같은 곡조에 맞추어 즐겁게 이른바 찬양을 드리다가 5분 정도의 간증 비슷한 것을 하고 마칩니다.

현대인에게 부담을 안주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禮拜)의 세속화입니다. 그 예배의 순서 하나하나에도 진리가 있고 신학이 있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늘날 이른바 세들백의 교회운동을 너나 할 것 없이 수용하고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세속적

경영기법을 교회에 도입하고 있음을 조금만 진리에 눈이 열린 사람은 구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예루살렘성전이 세속주의자들로 더럽혀진 것을 아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을 내어쫓았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바로 세속주의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세속주의의 유혹에서 이기고 승리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세속주의를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때 가능한 줄 믿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대로, 셋의 계통이 모두 세속화되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죄와 세속주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세속주의를 거부한다고 이 세상밖에 나가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世上)의 유혹(誘惑)과 시험(試驗)에서 이겨야 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은혜중에 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본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 주의 성령께서 내 심령에 계시도록 자신을 비우고 성결하게 해야 합니다. 밥그릇을 깨끗이 해야 밥을 담습니다.

금그릇이라고 해도 더러우면 음식을 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라야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은혜받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이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닫은 상태에서는 은혜받을 수 없습니다.

컵을 엎어놓고 물을 받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교만하면 반드시 낮추어 버립니다. 셋째는 기도로 준비할 때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자신이 은혜가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로 자신을 준비하고 자기 자신을 개방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목사의 설교에 은혜가 있으려면 목사자신의 준비도 필요하지만 말씀을 받는 쪽에서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설교를 비판적으로 듣는 사람치고 은혜받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넷째는 은혜를 받으려면 진리를 사모하고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인내하면서 욕설도 비난도 이겨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노아에게 자신(自身)을 계시(啓示)하였습니다. 세속주의를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면 세상의 포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이기고 정복하며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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