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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꿈, (창37:5-11절),

대산지기 2008. 2. 28. 15:14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꿈,
창37:5-11절, 221.233.259장.&

꿈을 가진 사람은 꿈을 가지지 못한 사람보다 앞서고, 필경은 성공자가 됩니다. "라이트" 형제가 공중에 독수리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이 공중을 날을 수 없을까" 하는 꿈을 꾸다가 비행기를 발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상을 가진 사람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은 어릴 때부터 무진장한 매력과 꿈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꿈은 하나의 환상이요 비전입니다. 그러므로 환상과 꿈이 없는 곳에서는 발전이 없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의도 없이 무사 안일하게 살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꿈을 잃은 시대는 흑암의 시대요 절망의 시대입니다.

요셉의 주변 환경은 저주와 죽음과 같은 환경이었지만 한 가닥 빛나는 꿈이 있었기에 그를 성공적인 인생의 길로 인도해 내었습니다. 꿈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서 가장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꿈 때문에 인류는 전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인간 고뇌 해결의 끝이라고 했으나, 우리 기독교는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공하려는 자는 현실에 쉽게 만족하거나 동화하지 말고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진실된 꿈이 있는 자는 쉽게 자포자기하지 않습니다.

진실된 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난관이나 고난 가운데서도 포기할 수 없는 꿈을 가진 자는 기어이 성공할 것입니다. 위대한 꿈, 원대한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요셉처럼 원대한 꿈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요셉은 어릴 때부터 큰 이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꿈이 없는 소년은 소년이 아닙니 다. 적어도 소년 시절에는 거대한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노년은 과거에 살지만 젊은이는 이상에서 삽니다. 장래가 구만리 같은 인간의 젊은 청춘을 높은 이상이나 큰 꿈 없이 보내는 사람은,

인생 최대의 낭비자요, 인간 패배자요, 낙오자입니다. 아니 큰 죄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의 가까운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레'는 말하기를 "너는 크게 성공하여라 비록 네게 부여된 시간은 적으나 그것을 응대하게 하여라,

실패는 죄가 아니니라 이상이 낮은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큰 이상을 가진 자가 그 이상을 다 펴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아니 미완성으로 마쳐도 귀중한 것이며, 후진들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 주는 개척자와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이상을 가진 젊은이가 됩시다. 사람은 큰 꿈을 꾸어야 합니다. 범을 그리려고 노력하면 고양이라도 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서부터 커다란 이상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요셉에게 나타난 꿈은 다음과 같습니다.

1)요셉이 첫 번째 꾼 꿈은 추수기에 그 형제들이 함께 곡식단을 묶던 중에 요셉의 곡식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곡식단은 요셉의 단 앞에 엎드려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밝히신 미래의 섭리는 요셉을 통하여 그들을 먹이실 것에 대한 예시입니다.

왜냐하면 식생활은 인간 삶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 식생활의 곡물 공급이 요셉을 통하여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은 그후 요셉을 통하여 실제로 이루어진 사실에서 확증할 수 있습니다. 2)요셉이 두 번째 꾼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라는 꿈이었습니다.

목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어둠이 깃들어 밤하늘에 별이 빛날 때 양떼들을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지키는 일입니다. 유목 생활을 하던 목자 요셉이 한밤을 배경으로 꾼 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한 세대를 지키시리라는 예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중동 전역을 휩쓴 7년의 기근을 통하여 요셉의 보호 아래 그들이 평안히 지낼 수 있었던 사실에서, 더욱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요셉은 꿈을 꾼 것입니다. 한데 차후에 이 같은 요셉의 꿈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2.축복의 꿈을 꾸는 자입니다. 1)신적 예언의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고안하거나, 막연한 주관적 공상에서 가진 허상의 꿈이 아니었습니다. 이 꿈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신적인 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별들의 축복을 실현하기 위한 신적 계시 전달의 한 방편이었습니다.(창15:5절).

이 꿈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스라엘의 장래를 보여 주기 위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꿈은 하늘부터 온 꿈이요, 거룩한 꿈이요, 아름다운 꿈이요, 축복의 꿈이었습니다. 2)축복과 승리의 꿈이었습니다. 형들의 곡신단이, 절하는 꿈은 장래 요셉이 대 애굽 제국의 곡식창고를 주장하여 가나안의 형제들과 근동의 여러 나라들을 먹여 살려줄 꿈이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꿈도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 높은 지위에 앉아 곡물을 사러 온 자기 형들의 절을 받은 꿈이었습니다. 3)간증할 수 있는 꿈이었습니다. 창37:5절에 "요셉에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라고 했습니다. 창37:6절에는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라고 했습니다.

창37:9절에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했고습니다. 창37:10절에서는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것을 본 자, 기쁜 것을 본 자, 확실한 것을 보고들은 자는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진리(계시의 꿈)에 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요셉은 오히려 미움을 당했습니다. 좋은 것, 옳은 것, 참된 것을 말한다고 모두 다 환영을 받는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고, 아름답고, 거룩한 꿈 때문에 미움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 축복의 꿈, 승리의 꿈을 간증하고 자랑했습니다.

영감의 기록인 잠언에서는 "묵시가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꿈꾸는 힘이 없는 사람은 사는 힘을 얻지 못하는 자입니다. 꿈꾸는 재미를 보지 못한 사람은 삶의 재미나 찬란한 비전의 그래프를 그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인생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밤의 꿈이 있습니다. 낮의 꿈이 있습니다. 선지자의 꿈이 있습니다. 시인의 꿈이 있습니다. 미술가의 꿈이 있습니다. 정치가의 꿈, 경제가의 꿈이 있습니다. 인생은 이 세상에 올 때 하나님께로부터 꿈을 안고 왔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이상이다, 비전이다, 희망이다, 포부다"라고 이름합니다.

이 꿈은 항상 나의 삶과 직결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요셉에게 있었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빛의 꿈이요, 축복의 꿈입니다. 다가올 세계적 종말의 어두움 앞에 저와 우리의 모두의 꿈입니다.

3.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꿈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아 우물가에 던진 바 되었고, 그랬다가 다시 노예로 팔려 애굽에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 종으로 팔렸다가, 거기서 충성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 후 보디발의 아내로 말미암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중 죄수로 갇혔을 때 거기에서도 성실하여 전옥의 신임을 얻어, 옥중 최고의 지위를 얻어 제반 사무를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무릇 성실한 노력이 없는 곳에서는 성공이란 도저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 주변을 보면 요셉 같은 큰 꿈을 꾸는 소년은 많으나 그 꿈을 실현할 만한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많은 청소년들의 큰 과오입니다. 사람이란 물론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해야 할 것은 노력입니다.

어떤 소년이 "나는 대통령의 꿈을 꾸었다" 하면서 꿈을 꾸었으니 다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속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꿈속에 자만하지 말고, 실현되도록 힘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성공은 반드시 학교 교육에만 의존할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은 반드시 그 환경이 순조로워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쉽게 살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땀 없는 성공, 수고 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요행심(僥倖心)만을 바라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자기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30년 동안 준비하시다 구원 사역을 위해 3년 동안 일하셨습니다. 사실을 기억하고 열매 맺는 일, 즉 결과만 중시하지 말고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준비를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꿈을 대하는 요셉의 자세입니다. 요셉이 대하는 자세는 매우 진지하여, "이 꿈이나 그 해석의 모든 근거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창40:8; 41:16절) 감옥에 갇힌 관원장들과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말하였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의 비밀이 오직 하나님의 공개하심과 섭리에 따라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미루어 볼 때 요셉은 항상 하나님과 기도를 통하여 교통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르짖는 모세와 엘리야에게(출33:17-23; 왕상18장)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장 귀한 방법입니다.(막9:29; 약5:16절). 2)말씀에 대한 묵상입니다. 시편에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요 이 사람은 만사에 형통함을 얻고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정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에 대한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며 그의 오묘하신 섭리를 밝히십니다. 진정 이러한 자들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으며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당신의 믿는 하나님을 보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며,

그로 하여금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 신앙의 실상이며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길입니다. 요셉의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듯이 오늘 우리의 이러한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고 계십니다. 이제 세워진 목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꿈을 하나님의 계획에 일치시키는 영적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일치할 때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막11: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목표하는 바를 매일 기도하시고, 그 영상이 마음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수의 돌이 구멍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을 기대하는 자는 시간과 인내로 뽕나무 잎이 비단이 된다"는 중국 속담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복된 영상을 그리시며, 긍정적으로 믿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 모든 소원을 다 이루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애매하게 고난받았던 요셉입니다. 요셉은 꿈이 실현되기에 앞서 큰 불행이 닥쳤는데, 그 것은 애매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창39:9절에 "그런즉 내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남의 아내와 동침함이 큰 악인 줄 알았습니다.

그 죄는 사람 앞에서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까지 관계되는 줄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그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고(시2:11절) 살던 자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당했을 때나, 애굽으로 팔려 갔을 때나, 장관 집에 팔렸을 때 하나님을 불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죄의 유혹이 근심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그 하나님을 보디발 장관 부인에게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그의 신앙은 너무나 내용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용적이요, 절대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이 사실 앞에서 그는 죄의 유혹을 막아 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감옥에 가는 이유가 되는 것이 이 세상 현실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2.000년이 밝히 증명하고 있는 역사적인 교훈이기도 합니다. 창39:10절에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창39:12절에서는 "그 여인이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여인은 오히려 그 겉옷을 증거물로 삼아 남편에게 "요셉이 나를 강간하러 들어왔기에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이렇게 옷까지 버려 두고 도망쳐 나갔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창39:13-16절에 보면, 그후 요셉은 곧 잡히게 되고 옥에 갇혔습니다. 실로 모순과 부조리와 역설과 거짓과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완전한 공의의 심판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죄인을 가두어야 될 장소에 의인을 가두기 때문입니다.

정말 요셉이 꾼 꿈과 그의 현실은 상극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떠한 곳에서도 꿈을 상실하지 아니하고 그리며, 주님의 섭리와 도움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저의 꿈을 현실로 이루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사는 동안 애매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다 해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섭리만을 바라고, 기도로 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6.꿈을 가진 요셉은 하나님 은혜로만 살았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캄캄한 애굽의 감옥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어두운 감옥 속에서도 요셉을 밝혀 주는 반짝이는 빛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39:21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 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임마누엘의 은혜로 요셉의 감옥은 결코 어두울 수가 없었습니다. 결코 요셉의 감옥이 외롭거나 답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요셉의 감방! 그것은 차라리 빛의 궁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형통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무서운 죄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죄의 눈길을 피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유혹의 강청을 듣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유혹의 자리를 떠나도록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도록 힘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야말로 요셉을 요셉되게 한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자기 속에 싸인 요셉! 그는 과거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왔고,

지금 애매한 고난받는 애굽의 감옥살이도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할 뿐 아니라 남은 미지의 여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요셉의 살아 있는 아버지, 항상 통제하는 아버지, 위로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셉을 도와 주시는 아버지, 요셉을 기르시는 아버지였습니다.

요셉을 양떼 같이 인도하시는 목자의 아버지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17세 소년이었던 요셉에게 꿈을 주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그 요셉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그를 야곱 가족들에 앞서 애굽으로 보내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꿈과 현실! 정말 모순 천만인 것 같습니다.

꿈과 현실! 정말 대조적인 상극 같습니다. 꿈과 현실! 정말 하늘과 땅 같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꿈은 현실 때문에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비극 충만의 현실이 끝나는 날에는 바로 찬란한 그 꿈이 현실로 나를 찾아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꿈과 현실의 모순 속에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의인은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의인은 꿈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의인은 꿈을 꾸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꿈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하심을 기억하며 낙망하지 말고 꿈이 현실화 될 때까지 인내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7.요셉이 꿈을 이룬 후에도 계속 복을 누린 비결입니다. 1)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계속 겸 손, 조심하였습니다. (2)사람에게는 사랑과 관용을 겸손, 조심하였습니다. (3)아버지께 효도했습니다. (4)형제간에 화목했습니다. (5)원수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가졌습니다.

이 꿈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님을 잘 섬기고, 자기 책임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이 성취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꿈이 이루어진 다음에도 조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고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면 복은 계속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바로 가지면,

복은 계속되고 하는 일이 큰 것 같으나 얼마 지나면 꿈처럼 사라지지만, 신자의 하는 일은 꿈 같으나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요셉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꿈을 성취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부귀 영화를 누렸으나 애굽에 대한 애착심이 없었고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의 땅 가나안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느 때나 기한이 차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내실 것을 굳게 믿고 바라보았습니다.(창50:24절).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요셉은 아무리 애굽이, 풍요하고 권세가 좋기는 하였어도 결코 거기에 마음을 뺏기지는 않았습니다.

애굽은 나그 네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갈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비록 죽었으나 그 해골이라도 가나안에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400년 후 그의 생전에 소망했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날 이루어져 그의 해골은 이스라엘 앞에서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가나안에 대한 꿈은 우리 성도들의 꿈이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부귀 영화를 아무리 누려도 천년 만년 살수는 없습니다. 이곳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향에 갈 준비를 분주히 해야 합니다.(히11:16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참 본향을 가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막9: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언약 백성인 성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삶에 실행하면 복을 주십니다.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복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해 보았자 불 신앙이 여실하게 들어 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큰복은 마귀의 자녀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의심하지 말고 언약의 말씀들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충만케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고 누리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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