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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확신함. (창15:1-17:27절),
대산지기
2008. 2. 28. 15:11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확신함.
창15:1-17:27절, 257.258.483장.&
본문은 신약에,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도달하는 영적인 진리를 풍성하게 캐어낼 보고(寶庫)입니다. 12:1-3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약속들을 요약하셨고, 13:14-18절에서 이 약속들을 확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언약의 약속들을 보다 충분히 밝히십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아들과 오게 될 약속된 씨 곧,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으며, 또한 가나안 땅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우신 놀라운 계획을 다룹니다.
1.언약의 내용입니다.(15장) 배경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막 왕들을 멸하고(14장), 소돔 왕의 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를 격려하실 차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14:18)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방패)가 되시며 예비(상급)가 되십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보호를 받거나 그가 제공하는 재물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1)탄원입니다. -아브라함은 상을 원하지 않고 상속자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제 85세였고 아들이 태어나기를 10년 간 기다려 왔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그의 모든 유산은 청지기 엘리에셀에게 돌아갈 것이었습니다.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이루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과 청지기를 바라보던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게 하심으로 그 탄원에 응답하셨습니다.(5절).
6절은 성경의 핵심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갈3:16, 롬4:3, 약2:26).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救援)을 받았습니까? 율법(律法)을 지켜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律法)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례(割禮)를 행함으로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할례를 받은 것은 99세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2)희생 제물입니다. -구원은 희생 제물에 근거를 두며, 언약은 피흘림을 요구합니다. 그 시대의 관습으로는 계약하는 쌍방이 제물로서 죽인 동물들의 쪼개진 지체 사이를 걸어감으로 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9절에 나오는 희생 제물 모두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의 조각들 사이를 걸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만이(17절) 조각들 사이를 걸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전적인 은혜이며 주께만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처럼(2:21) 아브라함은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졌고, 하나님을 도와 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3)보증입니다. -아브라함은 확신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 알고 싶어했습니다.(8절).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필요에 응하십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개요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 애굽에서의 고난, 4대 째에 구출될 것(출6:16-26절)과 약속된 땅을 소유하게 될 것 등입니다. "이 땅을... 주노니"(18절)란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2장 7절에서처럼 "내가 주리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란 곧 그의 실행이십니다. 이 장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최소한 일곱 가지의 단어 내지, 문구 즉, "여호와의 말씀" "두려워 말라"(1절) "상급, 후사와 유업"(3,7절) "믿으니, 의로, 여겼습니다"(6절)
이 장에서는 아들이 아니면 후사가 될 수 없고(롬8:16-17절) 믿음이 없이는 의로워질 수 없으며(롬4:3절) 약속이 없으면 확신할 수가 없고, 고난이 없이는 축복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별들을 보게 되기에 앞서 날이 어두워야만 했습니다.
4.정복입니다.(14:13-24절) 비록 장막에 거하긴 했지만 경건한 아브라함은 안전한 장소에 있습니다. 롯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관대한 처분을 내려 그를 구출하러 갑니다. 타락한 사람을 도울 능력이 있는 사람은 구별된 신자들뿐이며, 타락한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돌아갈 곳은 신실한 성도에게로 뿐입니다.
이 장에서 아브라함은 검으로 롯을 구하며 19:29절에서는 기도로 그를 구합니다.(18:23-33절).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를 위해 기도해 줄만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적을 정복했으며 이 일을 위해 193km를 갔습니다.
승리한 후에 아브라함은 소돔의 왕을 만남으로 보다 더 큰 유혹에 직면합니다.
대체적으로, 사탄은 우리가 영적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 즉각적으로 유혹해 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세례(침례) 받으신 후 광야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믿음의 위대한 사역을 이룬 후 두려움에 차서 도망쳤습니다.(왕상19장).
소돔 왕은 아브라함과 협정을 맺기를 원했고 소돔의 부(富)를 받아들이라고 타협을 청했으나, 아브라함은 거절하였습니다. 애굽의 부(富)는 실패의 원인이었음이 밝혀졌으며 소돔의 부(富)는 더 악한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영광을 빼앗아 갈 이 교묘한 유혹에 빠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한 것은 자신이 이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이지 믿음과 사랑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서 롯과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소돔의 상품을 즐기려했을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아브라함은 자기 간증을 잃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을 무시했으나 살렘 왕은 존중하였습니다.
히브리서 5-7장에 보면 멜기세덱(의로운 왕)이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살렘(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의(義)를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이 일은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유혹을 당할 바로 그 때 멜기세덱을 만난 것은 얼마나 큰 격려가 되겠습니까? 왕과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히4:16절).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제사장(祭司長)직을 맡을 수 있게 한 것이 십자가(十字架)이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만나서, 먹이고, 축복하였습니다. 놀라운 구세주가 아니십니까?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침으로 그를 높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십일조에 대한 첫번째 예증입니다.
이는 또한 모세의 율법에 제시된 십일조보다 훨씬 앞서 생긴 일입니다. 히브리서 7:4-10절은 이 십일조가 그리스도(모형으로서)에게 바쳐졌음을 시사하며, 오늘날 신자들이 주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아브라함의 본을 따르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부를 거절하였으나 자신의 부를 주님과 나누었으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풍성하게 축복하셨습니다. 이 전투와 위험했던 밤이 롯으로 하여금 정신이 들도록 했을까요? 슬프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19:1절에 보면 그는 즉시 소돔으로 돌아갔습니다.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행4:23절) 롯의 마음은 소돔에 있었으므로 그의 몸은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언약(言約)을 시험합니다.(16장) 하나님이 언약(言約)을 하셨으니 하나님이 성취(成就)하실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다만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히6:12절). 슬프게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肉身)이 약합니다.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행사(行事)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불 신앙을 나타냄으로써 성령으로 행하기를 멈추고 육신으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란 꾀를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 둘은 하나님이 계획을 성취하도록 도와드리려 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녀를 주기 위해 늙기까지 기다려야만 하셨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자신이 죽어 있어야 했습니다.(히11:11-12절). 창16:2절에 보면 사라는 자신의 아기를 못 낳는 형편에 대해 하나님을 탓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잘 대해주시지 않음을 넌지시 비칩니다.
그녀는 세상적인 방법을 취하여 애굽인 하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꾀는 실패합니다. 육체의 일(갈5:16-26절), 곧 질투, 원한, 증오, 교만, 다툼이 나타납니다. 사라는 주님께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5절).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그 책임을 돌립니다.(6절).
육신이 지배하도록 허락할 때 그 가정에는 무서운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하나님은 그 결합을 인정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사라의 여종"으로(8절) 부르십니다. 구약에서 주의 천사(여호와의 사자)가 언급된 것은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돌보시며 사라에게 복종하라고 지시하시고, 그녀의 아들이 들사람이 될 것이나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삭이 태어나자 이스마엘을 위하여 양보할 자리는 없었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21:9-이하).
이스마엘은 열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25:13-15), 그 자손들은 세기를 내려오며 유대인들의 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16:11절). 갈라디아서 4:21-31절은 사라는 새 언약의 상징이며 하갈은 옛 언약의 상징이라고 가르칩니다.
하갈은 노예였고, 옛 언약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행15:10절). 사라는 자유로운 여인이었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으로 낳았으며 그를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은 육신에 호소하지만 육을 다스리거나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이삭은 성령으로 태어났고 약속의 자녀(갈4:23절)로서 자유를 즐겼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으로 돌아가 스스로 육신의 노예가 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추방당한 반면 이삭은 법적인 상속인이었습니다. 율법이란 결코 영속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실제적인 교훈을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 갈 때는 반드시 문제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육신은 하나님을 돕기를 매우 좋아하나, 참된 믿음은 인내를 나타냅니다.(사28:16절). 믿음과 육신을, 율법과 은혜를, 약속과 자기 노력을 섞어서는 안됩니다.
3.언약의 상징입니다.(17장) 이 장에 나오는 사건과 이스마엘의 출생 사이에 13년의 침묵이 흐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신에 대해 죽음으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그들의 삶 가운데 펼쳐지도록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엘샤다이)", "모든 것에 넉넉하신 분"으로 계시하십니다.
이 장에 나오는 "내 언약"이란 말이 반복되는 것에 유의하셔야합니다. 언약(言約)의 성취는 하나님께 달려있지 인간에게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겠노라"는 문장이 반복되는 것에도 주목하자시기 바랍니다. 1)새 이름들입니다.
-"아브람"은 "높으신 아버지"란 뜻이고 "아브라함"이란 "대중(大衆)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사래"는 "다투기를 좋아하는"의 뜻인 반면에 "사라"는 "공주"를 뜻합니다. 그들의 새 이름들은 바야흐로 그들의 집에 입주하게 되는 새로운 축복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을 택하여 왕과 여왕이 되게 하십니다.
2)새로운 징표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할례에 대한 첫 언급입니다. 구약의 어느 곳에서도 할례가 인간을 구원한다고 가르친 곳은 없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언약의 외적인 징표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내적인 할례를 받은 사람들을 상기시킵니다.(신10:16절).
이 의식(儀式)은 생후 제 8일에 실시되었습니다. 레12:3절에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말하기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유대인들은 육신의 의식을 의존했고 내적인 실제를 의존하지는 않았습니다.(행15:5절).
오늘날 신자들은 새 언약 안에 있으며 참된 할례를 행하는데(빌3:1-3절)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영적인 체험인 것입니다.(골2:9-15절). 죄의 몸(옛 본성)은 제거했으며 이제는 육체로 살지 않고 성령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웃음은 믿음의 즐거운 웃음이고, 사라(18:12절)의 웃음은 불신의 웃음이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물리치시고 이삭과 그의 씨로 더불어 언약(言約)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은혜(恩惠)로써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위한 특별(特別)한 축복(祝福)을 정해 두셨습니다.
3)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目的)을 받아들입니다.(17:19-21절) 우리는 아브라함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目的)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自身)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人生)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自身)을 드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4)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17:22-27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끝내자마자 아브라함은 일어나서 행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권속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결정은 공개적이었고 하나님의 지시사항은 전 가족을 다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믿는 자는 공개적인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의 지시사항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그들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와 하늘나라인 약속의 땅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일깨우고 하나님과 새로운 체험을 가지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공개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우리의 가족들에게 그분을 증거 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의 약속들과 언약들을 성취하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창17:1절), -자비를 베푸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창43:14절),
-하늘에 있는 축복을 포함해서 인생에 필요한 모든 축복들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창49:25절),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민24:4, 16절), -징계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룻1:20,욥5:17, 6:4절), -인간이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욥11:7절), -인간은 전능하신 분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욥22:23절),
-믿는 자들은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살아야 합니다.(시91:1절)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고후6:17-18절),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의 주권적 주님이십니다.(계1:8절), -마지막 때에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실 것입니다.(계11:1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이렇게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신실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함으로 응답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15:1-17:27절, 257.258.483장.&
본문은 신약에,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도달하는 영적인 진리를 풍성하게 캐어낼 보고(寶庫)입니다. 12:1-3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약속들을 요약하셨고, 13:14-18절에서 이 약속들을 확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언약의 약속들을 보다 충분히 밝히십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아들과 오게 될 약속된 씨 곧,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으며, 또한 가나안 땅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우신 놀라운 계획을 다룹니다.
1.언약의 내용입니다.(15장) 배경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막 왕들을 멸하고(14장), 소돔 왕의 큰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를 격려하실 차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14:18)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방패)가 되시며 예비(상급)가 되십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보호를 받거나 그가 제공하는 재물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1)탄원입니다. -아브라함은 상을 원하지 않고 상속자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제 85세였고 아들이 태어나기를 10년 간 기다려 왔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그의 모든 유산은 청지기 엘리에셀에게 돌아갈 것이었습니다. 12장 2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이루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과 청지기를 바라보던 자리에서 하늘을 우러러보게 하심으로 그 탄원에 응답하셨습니다.(5절).
6절은 성경의 핵심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갈3:16, 롬4:3, 약2:26).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救援)을 받았습니까? 율법(律法)을 지켜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律法)은 아직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례(割禮)를 행함으로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가 할례를 받은 것은 99세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2)희생 제물입니다. -구원은 희생 제물에 근거를 두며, 언약은 피흘림을 요구합니다. 그 시대의 관습으로는 계약하는 쌍방이 제물로서 죽인 동물들의 쪼개진 지체 사이를 걸어감으로 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9절에 나오는 희생 제물 모두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물의 조각들 사이를 걸은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만이(17절) 조각들 사이를 걸으셨습니다. 이 언약은 전적인 은혜이며 주께만 의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처럼(2:21) 아브라함은 죽음 같은 깊은 잠에 빠졌고, 하나님을 도와 할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3)보증입니다. -아브라함은 확신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 알고 싶어했습니다.(8절).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필요에 응하십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이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개요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애굽 체류, 애굽에서의 고난, 4대 째에 구출될 것(출6:16-26절)과 약속된 땅을 소유하게 될 것 등입니다. "이 땅을... 주노니"(18절)란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2장 7절에서처럼 "내가 주리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란 곧 그의 실행이십니다. 이 장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최소한 일곱 가지의 단어 내지, 문구 즉, "여호와의 말씀" "두려워 말라"(1절) "상급, 후사와 유업"(3,7절) "믿으니, 의로, 여겼습니다"(6절)
이 장에서는 아들이 아니면 후사가 될 수 없고(롬8:16-17절) 믿음이 없이는 의로워질 수 없으며(롬4:3절) 약속이 없으면 확신할 수가 없고, 고난이 없이는 축복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별들을 보게 되기에 앞서 날이 어두워야만 했습니다.
4.정복입니다.(14:13-24절) 비록 장막에 거하긴 했지만 경건한 아브라함은 안전한 장소에 있습니다. 롯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관대한 처분을 내려 그를 구출하러 갑니다. 타락한 사람을 도울 능력이 있는 사람은 구별된 신자들뿐이며, 타락한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돌아갈 곳은 신실한 성도에게로 뿐입니다.
이 장에서 아브라함은 검으로 롯을 구하며 19:29절에서는 기도로 그를 구합니다.(18:23-33절).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를 위해 기도해 줄만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적을 정복했으며 이 일을 위해 193km를 갔습니다.
승리한 후에 아브라함은 소돔의 왕을 만남으로 보다 더 큰 유혹에 직면합니다.
대체적으로, 사탄은 우리가 영적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 즉각적으로 유혹해 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세례(침례) 받으신 후 광야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믿음의 위대한 사역을 이룬 후 두려움에 차서 도망쳤습니다.(왕상19장).
소돔 왕은 아브라함과 협정을 맺기를 원했고 소돔의 부(富)를 받아들이라고 타협을 청했으나, 아브라함은 거절하였습니다. 애굽의 부(富)는 실패의 원인이었음이 밝혀졌으며 소돔의 부(富)는 더 악한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영광을 빼앗아 갈 이 교묘한 유혹에 빠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한 것은 자신이 이 일을, 모면하기 위해서이지 믿음과 사랑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서 롯과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소돔의 상품을 즐기려했을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아브라함은 자기 간증을 잃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을 무시했으나 살렘 왕은 존중하였습니다.
히브리서 5-7장에 보면 멜기세덱(의로운 왕)이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살렘(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의(義)를 통하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이 일은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유혹을 당할 바로 그 때 멜기세덱을 만난 것은 얼마나 큰 격려가 되겠습니까? 왕과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히4:16절).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제사장(祭司長)직을 맡을 수 있게 한 것이 십자가(十字架)이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만나서, 먹이고, 축복하였습니다. 놀라운 구세주가 아니십니까?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바침으로 그를 높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십일조에 대한 첫번째 예증입니다.
이는 또한 모세의 율법에 제시된 십일조보다 훨씬 앞서 생긴 일입니다. 히브리서 7:4-10절은 이 십일조가 그리스도(모형으로서)에게 바쳐졌음을 시사하며, 오늘날 신자들이 주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아브라함의 본을 따르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의 부를 거절하였으나 자신의 부를 주님과 나누었으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풍성하게 축복하셨습니다. 이 전투와 위험했던 밤이 롯으로 하여금 정신이 들도록 했을까요? 슬프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19:1절에 보면 그는 즉시 소돔으로 돌아갔습니다.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행4:23절) 롯의 마음은 소돔에 있었으므로 그의 몸은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언약(言約)을 시험합니다.(16장) 하나님이 언약(言約)을 하셨으니 하나님이 성취(成就)하실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다만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히6:12절). 슬프게도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肉身)이 약합니다.
15장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행사(行事)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불 신앙을 나타냄으로써 성령으로 행하기를 멈추고 육신으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란 꾀를 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들 둘은 하나님이 계획을 성취하도록 도와드리려 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녀를 주기 위해 늙기까지 기다려야만 하셨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자신이 죽어 있어야 했습니다.(히11:11-12절). 창16:2절에 보면 사라는 자신의 아기를 못 낳는 형편에 대해 하나님을 탓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잘 대해주시지 않음을 넌지시 비칩니다.
그녀는 세상적인 방법을 취하여 애굽인 하갈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꾀는 실패합니다. 육체의 일(갈5:16-26절), 곧 질투, 원한, 증오, 교만, 다툼이 나타납니다. 사라는 주님께 "책임을 전가"하려 합니다.(5절).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그 책임을 돌립니다.(6절).
육신이 지배하도록 허락할 때 그 가정에는 무서운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하나님은 그 결합을 인정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사라의 여종"으로(8절) 부르십니다. 구약에서 주의 천사(여호와의 사자)가 언급된 것은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돌보시며 사라에게 복종하라고 지시하시고, 그녀의 아들이 들사람이 될 것이나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삭이 태어나자 이스마엘을 위하여 양보할 자리는 없었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21:9-이하).
이스마엘은 열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25:13-15), 그 자손들은 세기를 내려오며 유대인들의 적이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16:11절). 갈라디아서 4:21-31절은 사라는 새 언약의 상징이며 하갈은 옛 언약의 상징이라고 가르칩니다.
하갈은 노예였고, 옛 언약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행15:10절). 사라는 자유로운 여인이었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으로 낳았으며 그를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은 육신에 호소하지만 육을 다스리거나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이삭은 성령으로 태어났고 약속의 자녀(갈4:23절)로서 자유를 즐겼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으로 돌아가 스스로 육신의 노예가 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추방당한 반면 이삭은 법적인 상속인이었습니다. 율법이란 결코 영속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실제적인 교훈을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서 갈 때는 반드시 문제거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육신은 하나님을 돕기를 매우 좋아하나, 참된 믿음은 인내를 나타냅니다.(사28:16절). 믿음과 육신을, 율법과 은혜를, 약속과 자기 노력을 섞어서는 안됩니다.
3.언약의 상징입니다.(17장) 이 장에 나오는 사건과 이스마엘의 출생 사이에 13년의 침묵이 흐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신에 대해 죽음으로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그들의 삶 가운데 펼쳐지도록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엘샤다이)", "모든 것에 넉넉하신 분"으로 계시하십니다.
이 장에 나오는 "내 언약"이란 말이 반복되는 것에 유의하셔야합니다. 언약(言約)의 성취는 하나님께 달려있지 인간에게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하겠노라"는 문장이 반복되는 것에도 주목하자시기 바랍니다. 1)새 이름들입니다.
-"아브람"은 "높으신 아버지"란 뜻이고 "아브라함"이란 "대중(大衆)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사래"는 "다투기를 좋아하는"의 뜻인 반면에 "사라"는 "공주"를 뜻합니다. 그들의 새 이름들은 바야흐로 그들의 집에 입주하게 되는 새로운 축복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을 택하여 왕과 여왕이 되게 하십니다.
2)새로운 징표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할례에 대한 첫 언급입니다. 구약의 어느 곳에서도 할례가 인간을 구원한다고 가르친 곳은 없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진 언약의 외적인 징표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내적인 할례를 받은 사람들을 상기시킵니다.(신10:16절).
이 의식(儀式)은 생후 제 8일에 실시되었습니다. 레12:3절에 "제 팔일에는 그 아이의 양피를 벨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말하기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유대인들은 육신의 의식을 의존했고 내적인 실제를 의존하지는 않았습니다.(행15:5절).
오늘날 신자들은 새 언약 안에 있으며 참된 할례를 행하는데(빌3:1-3절)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영적인 체험인 것입니다.(골2:9-15절). 죄의 몸(옛 본성)은 제거했으며 이제는 육체로 살지 않고 성령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웃음은 믿음의 즐거운 웃음이고, 사라(18:12절)의 웃음은 불신의 웃음이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물리치시고 이삭과 그의 씨로 더불어 언약(言約)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은혜(恩惠)로써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위한 특별(特別)한 축복(祝福)을 정해 두셨습니다.
3)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目的)을 받아들입니다.(17:19-21절) 우리는 아브라함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目的)을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自身)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人生)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우리 자신(自身)을 드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깨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4)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17:22-27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끝내자마자 아브라함은 일어나서 행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권속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결정은 공개적이었고 하나님의 지시사항은 전 가족을 다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믿는 자는 공개적인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의 지시사항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그들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와 하늘나라인 약속의 땅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일깨우고 하나님과 새로운 체험을 가지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공개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우리의 가족들에게 그분을 증거 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의 약속들과 언약들을 성취하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창17:1절), -자비를 베푸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창43:14절),
-하늘에 있는 축복을 포함해서 인생에 필요한 모든 축복들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창49:25절), -자신을 사람들에게 계시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민24:4, 16절), -징계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룻1:20,욥5:17, 6:4절), -인간이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욥11:7절), -인간은 전능하신 분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욥22:23절),
-믿는 자들은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살아야 합니다.(시91:1절)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고후6:17-18절),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의 주권적 주님이십니다.(계1:8절), -마지막 때에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하실 것입니다.(계11:1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이렇게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신실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함으로 응답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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