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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적인 선택을 하라....(창13:1-13절),
대산지기
2008. 2. 28. 15:10
신앙적인 선택을 하라
창13:1-13절, 194.221.488장.&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는 바로 신앙위기가 가져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경제위기가 오기 수년전부터, 한국 교회에 신앙의 위기가 왔었습니다. 곳곳에서, 교회가 부흥이 안된다, 교인의 수가 줄어든다, 개척교회가 안된다는 신앙의 위기를 나타내는 말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위기시대에 누구하나 참다운 파숫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신앙의 위기는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의 경제위기도 결국 우리가 가진 신앙의 위기를 해결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도 바로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물주의와 인본주의를 극복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본문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위대성을 가르치려거나 롯의 잘못을 문제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시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정과 롯의 가정을 구별하시는 장면이 바로 오늘의 본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메시아를 주실 것과(창12:2절), 오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주신다고(창12:7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행위와 언약의 성취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감지하면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순간 순간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75세가 된 우상장수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의 모든 백성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직은 완전히 주지 않았기에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가나안에 기근이 있자, 아브라함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보다 나은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떠납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거짓으로 자기 부인을 누이 동생으로 말했습니다. 부의 축적과 안전한 삶을 추구한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의 삶은 유물주의에 빠져 사는 현대인의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물주의 삶은 가정에 문제를 가져오고, 신앙의 위기를 가져옵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왔으나 반면에 그의 가정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토록 합니다. 아내를 빼앗긴 가정의 위기와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자손을 상실케 될 신앙의 위기에 직면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셔서 그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언약의 가정인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키시며 간섭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특이한 점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부터 나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이전처럼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 대상인 아브라함과 언약대상이 아닌 조카 롯 사이에는 뚜렷한 시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쪽은 유물주의가 극복되었으나, 다른 한 쪽은 유물주의가 극복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적어도 유물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가족 일행은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창13:2절에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더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재물이 너무 많아서였습니다. 성경은 재물이 너무 많아서 아브라함과 롯의 가정이 동거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소유가 많기에 일어난 것은 투쟁(鬪爭)이었고, 분열(分列)이었습니다.
땅에 대한 관심은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깨닫게 하심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유물주의를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現實)은 I.M.F 위기 때 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문제(問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직면한 신앙위기는 바로 유물주의 사상을 바로 대처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라는 표어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정부도, 교회도 불법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무슨 수단과 무슨 방법(方法)을 쓰던지 내 욕심만 채우면 된다는,
이 유물주의 사상을 정부도 교회도 방치해 놓은 결과 오늘날과 같이 실업자 수만명의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 긍휼을 베푸셔서 전쟁으로 치시지 않고 경제로 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날의 이 위기는 물질만능주의가, 유물주의가 결국 돌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유물주의는 오직 신본주의 사상만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13:9절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아브라함의 말로서 신본주의 사상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유나 땅이,
자신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삶이 바로 진정한 축복의 삶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란 것을 계시합니다. 어찌보면 아브라함의 행위는 바보스럽고 우둔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바보같은 삶을 귀히 여깁니다.
십자가의 도는 확실히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바보같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듯이 하나님 중심의 삶은 때로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인본주의는 처음부터 하나님 따위는 필요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오늘의 세속주의, 유물주의 사상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배제시켜버린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의 종말은 롯이 당한 재앙(창14:12절)을 통해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신본주의 신앙만이 유물주의 사상을 극복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아직 한치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으나 이미 그 약속된 땅을 소유한 양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신사도적 양보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있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과 축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유물주의적 사상에 물든 채, 물질적인 욕심에 이끌려 눈앞에 펼쳐진 가나안의 기름진 옥토인 소돔 땅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유물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단순히 종교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돔의 향락주의적인 분위기를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도 이 향락주의를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양 받아들이고, 부정과 부패를 눈감아 줄 뿐만 아니라, 퇴폐문화가 날로 번창해가는 데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좌냐? 우냐? 한국 교회는 결단해야 합니다. 경제위기는 신앙위기를, 극복할 때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생은 아이들이 땅 뺏기 놀이를 하다가 저녁이 되면 모두 손털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결국 빈손들고 하나님앞에 서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신본주의 사상을 붙들고, 유물주의 사상을 배격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될 때, 신앙위기는 극복될 수 있으며, 또한 경제위기도 극복할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대학을 나왔으나 취업을 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 먼저 믿은 우리가 앞장서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13:1-13절, 194.221.488장.&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는 바로 신앙위기가 가져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경제위기가 오기 수년전부터, 한국 교회에 신앙의 위기가 왔었습니다. 곳곳에서, 교회가 부흥이 안된다, 교인의 수가 줄어든다, 개척교회가 안된다는 신앙의 위기를 나타내는 말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위기시대에 누구하나 참다운 파숫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신앙의 위기는 오늘날과 같은 경제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의 경제위기도 결국 우리가 가진 신앙의 위기를 해결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도 바로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물주의와 인본주의를 극복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본문은 아브라함의 신앙의 위대성을 가르치려거나 롯의 잘못을 문제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성취시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정과 롯의 가정을 구별하시는 장면이 바로 오늘의 본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브라함의 씨로부터 메시아를 주실 것과(창12:2절), 오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주신다고(창12:7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행위와 언약의 성취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감지하면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순간 순간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75세가 된 우상장수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의 모든 백성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직은 완전히 주지 않았기에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가나안에 기근이 있자, 아브라함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보다 나은 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떠납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거짓으로 자기 부인을 누이 동생으로 말했습니다. 부의 축적과 안전한 삶을 추구한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의 삶은 유물주의에 빠져 사는 현대인의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물주의 삶은 가정에 문제를 가져오고, 신앙의 위기를 가져옵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왔으나 반면에 그의 가정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토록 합니다. 아내를 빼앗긴 가정의 위기와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자손을 상실케 될 신앙의 위기에 직면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셔서 그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언약의 가정인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키시며 간섭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특이한 점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부터 나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서 이전처럼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 대상인 아브라함과 언약대상이 아닌 조카 롯 사이에는 뚜렷한 시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쪽은 유물주의가 극복되었으나, 다른 한 쪽은 유물주의가 극복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적어도 유물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가족 일행은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창13:2절에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더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재물이 너무 많아서였습니다. 성경은 재물이 너무 많아서 아브라함과 롯의 가정이 동거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소유가 많기에 일어난 것은 투쟁(鬪爭)이었고, 분열(分列)이었습니다.
땅에 대한 관심은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깨닫게 하심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유물주의를 극복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한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現實)은 I.M.F 위기 때 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데 문제(問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직면한 신앙위기는 바로 유물주의 사상을 바로 대처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라는 표어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정부도, 교회도 불법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무슨 수단과 무슨 방법(方法)을 쓰던지 내 욕심만 채우면 된다는,
이 유물주의 사상을 정부도 교회도 방치해 놓은 결과 오늘날과 같이 실업자 수만명의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기도하는 사람이 많아 긍휼을 베푸셔서 전쟁으로 치시지 않고 경제로 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날의 이 위기는 물질만능주의가, 유물주의가 결국 돌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유물주의는 오직 신본주의 사상만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13:9절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아브라함의 말로서 신본주의 사상이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유나 땅이,
자신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삶이 바로 진정한 축복의 삶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란 것을 계시합니다. 어찌보면 아브라함의 행위는 바보스럽고 우둔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바보같은 삶을 귀히 여깁니다.
십자가의 도는 확실히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바보같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듯이 하나님 중심의 삶은 때로는 어리석어 보입니다. 인본주의는 처음부터 하나님 따위는 필요 없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오늘의 세속주의, 유물주의 사상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배제시켜버린 인본주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의 종말은 롯이 당한 재앙(창14:12절)을 통해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신본주의 신앙만이 유물주의 사상을 극복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아직 한치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으나 이미 그 약속된 땅을 소유한 양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신사도적 양보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있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과 축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유물주의적 사상에 물든 채, 물질적인 욕심에 이끌려 눈앞에 펼쳐진 가나안의 기름진 옥토인 소돔 땅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유물주의를 철저하게 배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단순히 종교적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돔의 향락주의적인 분위기를 용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도 이 향락주의를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양 받아들이고, 부정과 부패를 눈감아 줄 뿐만 아니라, 퇴폐문화가 날로 번창해가는 데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좌냐? 우냐? 한국 교회는 결단해야 합니다. 경제위기는 신앙위기를, 극복할 때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생은 아이들이 땅 뺏기 놀이를 하다가 저녁이 되면 모두 손털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결국 빈손들고 하나님앞에 서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신본주의 사상을 붙들고, 유물주의 사상을 배격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될 때, 신앙위기는 극복될 수 있으며, 또한 경제위기도 극복할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대학을 나왔으나 취업을 하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이때 먼저 믿은 우리가 앞장서서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여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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