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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된 예배와 거짓된 예배, (창4:1-26절)

대산지기 2008. 2. 28. 15:03
참된 예배와 거짓된 예배
창4:1-26절, 185.412.487장.&

본문 중심 교훈은 참된 예배와 거짓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참된 방법과 거짓된 방법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의 교훈은 지상 최초로 출생한 두 자손인 가인과 아벨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짧은 진술 내지는 설명을 통해 그들의 전체 생애를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예배 자입니다.(4:1-5), 4장 1절에는 하나님이 3장 15절에서 하신 약속과 3장 20절에 나오는 아담의 믿음이 둘 다 나옵니다. 하와는 새 생명을 세상에 가져왔고 그가 약속된 씨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한 남자 - 주님을 얻었다"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가인"은 "얻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벨은 "헛됨, 부질없음"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난 생명의 무익함을 암시하며 또는 가인이 그 씨가 아니었음에 대한 하와의 실망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일의 분할을 보게 됩니다.

가인은 땅에 헌신(獻身)했고, 아벨은 양떼에 헌신(獻身)했습니다. 하나님은 앞서 땅을 저주하셨는데(3:17절) 가인은 그 저주(紵紬)와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지정된 장소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둘 다 주께 제물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榮光)은 천사(天使)들이 길을 지키는 생명나무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3:24절). 히브리서 11:4절은 아벨이 믿음으로 제물을 가져왔음을 시사하고 롬10:17절은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그의 가족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 분명합니다.

그 중에는 3:21절에 나오는 피의 희생도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9:22절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피흘림이 있어야만 한다고 진술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저주받은 땅에서 피 흘림이 없는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그의 제물이 진정이었을 수도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대속의 희생을 의존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레9:24절) 아벨의 제물을 태우셨을 것이지만 가인의 제물은 제단 위에 놓여있습니다. 가인은 경건함과 신앙에 대한 형식을 갖추고는 있었지만 그 능력은 부정했습니다.

딤후3: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요일3:12절은 가인이 마귀의 자녀였음을 보여주는데 이 말은 육에 속한 거짓된 의(義)를 뜻하는 것으로 이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의(義)가 아닌 것입니다.

요일3:12절에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찌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는 의로움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自己義)를 내세우는 바리새인들을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불렀으며 아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문책했습니다.(눅11:37-51절).

유다서 11절은 "가인의 길"이 피 없는 종교의 길이며 의로워지려는 노력과 자기 의에 근거한 종교임을 말합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두 가지 종교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가 완성하신 일을 의존하는 아벨의 신앙과. 선한 행위, 그리고 인간을 기쁘게 하는 종교적 행사와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가인의 종교입니다. 하나는 천국으로, 다른 길은 지옥으로 인도해 갑니다.

2.살인자입니다.(4:6-8절) 약1:15절은 죄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점 커져서 죽음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 가인도 그랬습니다. 실망하고, 화가 나서, 질투하고, 마침내 살인합니다. 마음의 증오가 결국 자기 손으로 살인하도록 이끌어 갔습니다.(마5:21-26절).

하나님은 그의 믿음 없는 마음과 타락한 안색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들짐승처럼 웅크리고 가인을 멸망시키려고 기다림을 경고했습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슬프도다,

가인이 유혹의 들짐승을 키우고 문을 열어 주어 들어오게 하였도다. (7절을 "죄의 제물이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의로운 제물을 가져올 또 다른 기회를 주려 하심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가인은 경고를 명심하지 않고 그의 동생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는 냉혈(冷血)의 마음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가인은 마귀의 자녀였고(요일 3:12),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살인자였습니다.(요8:44절). 3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인간이, 4장에서는 인간에게 죄를 짓는 인간이 나옵니다.

3.방랑자입니다.(4:9-16절)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 이 두 질문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질문으로 그 의미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죄는 언제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가인처럼).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결국 드러납니다.

아벨의 피는 복수해 줄 것을 호소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평화와 용서를 외칩니다.(히12:24절). 하나님은 앞서 뱀과 땅을 저주하셨는데 이제는 가인을 저주하십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다른 말로 하면 가인이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효력을 주지 않으며, 땅에서 피하여 유리 하는 자가 되어야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도망자, 방랑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가인은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으며, 대신 자책과 실의를 나타냈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그는 천국에서 거부를 당하고 땅에게 거절을 당합니다.

그는 저주를 받아 안식(安息)을 잃었는데 이는 믿음으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가인의 공포(空胞)와 절망(絶望)에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은혜(恩惠)로 하나님은 가인을 보호(保護)하시겠다고 약속(約束)하시고 약속을 증명할 표를 주셨는데,

문자로 된 표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가인에게 확신을 가지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을 풀어 놓으셨나요? 한 가지 이유가 있으니 가인은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죄(罪)의 비극적(悲劇的)인 결과(結果)에 대한 "걸어다니는 설교(說敎)"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간과 대단히 유사한 모습입니다. 휴식이 없고, 절망하고 그리고 좌절합니다. 가인은 그의 남은 생애를 방랑하며 보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문명의 기원"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적(靈的)인 선물을 대신하여 인간이 만든 대용품입니다.

4.자기 가족이 생활할 성을 건축하였습니다.(4:17-26절) "놋"이란 "흩어지는 것" "방랑하는 것"의 뜻입니다. 가인이 선택한 바로 그 땅이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방랑하고 있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면전을 떠나갔습니다.(3:24절).

그에게는 피의 종교가 필요치 않았습니다. 가인은 그의 누이들 중의 하나와 결혼한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 쯤에는 아담의 자손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5:3절은 130년이 지났음을 시사합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이복누이와 결혼했는데 가인이 그의 친누이와 결혼하지 못했을 이유는 없습니다.

특히 그 때는 죄가 인간의 몸에서 그 댓가를 치루기 전의 시대였습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인 "에녹"은 "창시"라는 뜻으로 새로운 출발을 나타내고 있으나, 하나님 없는 출발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평가할 때에 가인의 자손들은 탄복할 만한 사람들입니다. 야발("방랑자")은 농업 기술을 발견했고(20절),

유발은 "문화" - 음악을 창시했으며, 두발가인은 금속 산업을 처음으로 개발했습니다. 외양으로 볼 때, 가인의 "도시"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거절하셨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25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또 다른 씨 - "셋"을 주시는데 이는 약속된 아벨의 씨 대신 주어진 씨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족속을 개조시키려 하지 않고 저들을 거부하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홍수 때에 저들을 폐기처분하실 것입니다. 가인의 족속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리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을 때, 셋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와 다시 예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26절).

오늘날의 문명은 본질상 가인 적입니다. 오늘날의 문명도 농경, 산업, 예술, 큰 도시,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종교 등을 지니고 있으며 이 또한 가인의 옛 문명과 같이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라멕 같이 살인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있으며, 결혼의 신성한 약조를 무너뜨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멕이했던 것처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거절하고 인간 자신의 자원을 의지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제도"에 속하지 않으며(요일 2:15-17), 관여하지도 않아야 마땅합니다. -라멕이 묘사하고 있는 사회의 실상입니다.(23-24절)

라멕과 그의 경건치 않은 조상들은 다음과 같은 사회를 발전시켰습니다. (1)자기들의 강한 무기를 자랑하는 사회. (2)살상과 전쟁의 무기를 자랑하는 사회. (3)보복을 행하는 사회, (4)자기 도취에 빠져 있는 사회, (5)하나님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사회. (6)타락하고. 참다운 정의와 도덕성이 상실된 사회입니다.

아멕이 얼마나 오만 방자했는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신이 손에 지닌 무기의 힘에 의지하여 순간적인 열정과 흥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인 가인에게 내리신 저주를 기억해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가인을 해하는 자에게 일곱배로 복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 라멕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는 자신은 일흔일곱 배로 앙갚음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라멕은 자기가 자랑과 오만과 방자함과 자아 도취에 대한 생각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보다 강하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선포했습니다.

-원수 갚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레19:18절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했습니다. -살인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20:13절에 "살인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자랑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시10:3절에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도취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잠28:26절에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타락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롬3: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사55:7절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과 신뢰는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할 위대한 교훈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않고는 하나님의 약속을 결코 개인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하나님과 가졌던 것과 같은 온전한 삶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 즉 죄와 죽음과 지옥을 물리치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해야합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죄와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고나 질병, 아픔으로부터 조차도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깨달은 위대한 교훈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주위와 땅 위에 있는 모든 죄와 악과 타락과 사고와 질병과 아픔과 죽음을 보고만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인과 셋의 출생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는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을 베푸실 수 있다는 즉 하나님께서만이 세상에 구원자를 보내실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요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도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요5:25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자는 회개하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듣고 스스로 영접하는 자만이 가능합니다.

죄악이 관영 하는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선포하여 자연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성도의 증거 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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