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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는 자들에게 문안 . (약1:1절),
대산지기
2008. 1. 31. 10:58
믿는 자들에게 문안.
약 1:1절, 85.102.415장,&
본문은 성경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은 주 예수님의 형제 중 한 사람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말해줍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날마다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의 생활모습을 보는 기회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또한 본문은 우리에게 역동적인 도전을 주기도 합니다.
1,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1절),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자기를 가리켜 단순히 야고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각처에 흩어져 있는 믿는 자들 사이에서 너무도 분명히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자신의 이름 외에는 다른 소개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주님의 동생 야고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해줍니다. 1)야고보는 자기 자신을 단순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큰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그에게 주어진 호칭에 있지 않고 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알려진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의 주님과 갖는 친밀한 관계성입니다.
이 사실은 "종"이라는 말이 이해될 때에 명백히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의미는 야고보가 의도적으로 주님과의 관계성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선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둘로스)이라는 헬라어는 단순히 종의 의미를 훨씬 넘어섭니다.
이 말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소유된 노예를 의미합니다. 이는 법적으로 주인에게 매여진 노예를 의미합니다. 야고보 당시의 노예시장을 살펴보면 야고보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종"이라고 일컬었을 때, 의미하는 바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1)노예는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2)노예는 오직 주인을 위해 존재하며, 그 외에 다른 존재 이유는 없습니다. (3)노예는 자기의 주인을 섬겼으며 그 섬기는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하였습니다. (4)노예의 의지는 자기의 주인에게 속한 것이었습니다. (5)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을 때 말하고자 하는 가장 고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온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존귀한 왕 같은 직분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사람들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하나님의 종"이라 불렸습니다. 그것은 가장 높은 영예의 호칭이었습니다.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께 종이 된다는 사실은 결코 비굴하거나 겁쟁이가 되는 것과 같은 부끄러운 복종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관계는 사람에게 왕 중의 왕, 만주의 주를 섬길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을 부여하는 명예로운 지위입니다.
2)야고보는 나사렛 출신의 목수 예수가 주 예수 그리스도셨다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을 주라 말했을 때 이는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말했을 때 이는 곧 메시야, 즉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약속하셨던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이 사실은 놀랍고도 감동적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여러 해 동안 예수님과 형제로서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시간 야고보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살았습니다. 야고보는 어렸을 때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마을 주변의 언덕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소년 예수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며 이웃 사람들과 동네 어른들을 대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로서 예수께서 어른 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였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또 아버지 요셉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예수님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는 모습도 보았을 것입니다.
2,전세계에 믿는 자들이 흩어져 있습니다.(1절), 첫째로, 야고보는 믿는 자들의 특별한 무리에게 즉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믿는 자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열두 지파는 이미 전세계에 흩어져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 사실이 우리에게 해답을 줍니다.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각 족속에게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하는지를 불문하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는 호칭을 포괄적 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으며, 단 한 사람의 유대인도 이 메시지에서 제외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자 대예루살렘교회의 목회자로서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마땅히 모든 유대인들이 주의 깊게 들어야만 하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야고보는 자기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야고보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그들에게 나아가 위로와 권면을 해주어야 한다는 강한 소명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들에게 편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의 편지가 교회에서 교회로 회당에서 회당으로 전세게에 걸쳐 전해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일은 분명 엄청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였든지, 아니면 성령께서 그에게 그 편지가 전세게의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에게 전해지리하는 확신을 주셨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모든 유재인들에게, 즉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나아가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수많은 디아스포라에게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전세게에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살펴보아야할 요점은 야고보가 자기 민족들을 향하여 가졌던 사랑과 복음전도의 마음입니다. 그가 주로 믿는 유대인들에게 편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디아스포라의 열두 지파들에게, 즉 전세계에 흩어진 수백만의 유대인들에게 문안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인사는 모든 세대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살아 있는 사랑과 복음전도의 모범이 됩니까? 만일 우리의 마음이 그와 같은 정도의 사랑과 복음전도의 열정으로 가득하다면, 즉 우리 마을과 도시와 나라의 잃어버려지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려는 긍휼로 가득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마28:19-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레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헌신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기도가 되어서 간증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약 1:1절, 85.102.415장,&
본문은 성경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본문은 주 예수님의 형제 중 한 사람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말해줍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날마다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의 생활모습을 보는 기회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또한 본문은 우리에게 역동적인 도전을 주기도 합니다.
1,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1절), 그는 누구입니까? 그는 자기를 가리켜 단순히 야고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각처에 흩어져 있는 믿는 자들 사이에서 너무도 분명히 잘 알려져 있었으므로 자신의 이름 외에는 다른 소개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주님의 동생 야고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해줍니다. 1)야고보는 자기 자신을 단순히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큰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그에게 주어진 호칭에 있지 않고 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알려진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의 주님과 갖는 친밀한 관계성입니다.
이 사실은 "종"이라는 말이 이해될 때에 명백히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의미는 야고보가 의도적으로 주님과의 관계성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선택하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둘로스)이라는 헬라어는 단순히 종의 의미를 훨씬 넘어섭니다.
이 말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소유된 노예를 의미합니다. 이는 법적으로 주인에게 매여진 노예를 의미합니다. 야고보 당시의 노예시장을 살펴보면 야고보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 종"이라고 일컬었을 때, 의미하는 바를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1)노예는 주인의 소유였습니다.
(2)노예는 오직 주인을 위해 존재하며, 그 외에 다른 존재 이유는 없습니다. (3)노예는 자기의 주인을 섬겼으며 그 섬기는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하였습니다. (4)노예의 의지는 자기의 주인에게 속한 것이었습니다. (5)야고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을 때 말하고자 하는 가장 고귀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온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존귀한 왕 같은 직분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사람들인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하나님의 종"이라 불렸습니다. 그것은 가장 높은 영예의 호칭이었습니다.
믿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께 종이 된다는 사실은 결코 비굴하거나 겁쟁이가 되는 것과 같은 부끄러운 복종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관계는 사람에게 왕 중의 왕, 만주의 주를 섬길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을 부여하는 명예로운 지위입니다.
2)야고보는 나사렛 출신의 목수 예수가 주 예수 그리스도셨다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을 주라 말했을 때 이는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야고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말했을 때 이는 곧 메시야, 즉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약속하셨던 구원자를 의미합니다.
이 사실은 놀랍고도 감동적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여러 해 동안 예수님과 형제로서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시간 야고보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살았습니다. 야고보는 어렸을 때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마을 주변의 언덕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소년 예수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며 이웃 사람들과 동네 어른들을 대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로서 예수께서 어른 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였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는 또 아버지 요셉이 세상을 떠났을 때 예수님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는 모습도 보았을 것입니다.
2,전세계에 믿는 자들이 흩어져 있습니다.(1절), 첫째로, 야고보는 믿는 자들의 특별한 무리에게 즉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믿는 자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열두 지파는 이미 전세계에 흩어져 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 사실이 우리에게 해답을 줍니다.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각 족속에게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하는지를 불문하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는 호칭을 포괄적 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을 언급하고 있으며, 단 한 사람의 유대인도 이 메시지에서 제외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자 대예루살렘교회의 목회자로서 그가 말하고자 한 바는 마땅히 모든 유대인들이 주의 깊게 들어야만 하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야고보는 자기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은 야고보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 안에서 그들에게 나아가 위로와 권면을 해주어야 한다는 강한 소명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들에게 편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의 편지가 교회에서 교회로 회당에서 회당으로 전세게에 걸쳐 전해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일은 분명 엄청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하도록 계속 관심을 기울였든지, 아니면 성령께서 그에게 그 편지가 전세게의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에게 전해지리하는 확신을 주셨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모든 유재인들에게, 즉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나아가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수많은 디아스포라에게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전세게에 흩어진 모든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살펴보아야할 요점은 야고보가 자기 민족들을 향하여 가졌던 사랑과 복음전도의 마음입니다. 그가 주로 믿는 유대인들에게 편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디아스포라의 열두 지파들에게, 즉 전세계에 흩어진 수백만의 유대인들에게 문안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인사는 모든 세대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우리에게 살아 있는 사랑과 복음전도의 모범이 됩니까? 만일 우리의 마음이 그와 같은 정도의 사랑과 복음전도의 열정으로 가득하다면, 즉 우리 마을과 도시와 나라의 잃어버려지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려는 긍휼로 가득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마28:19-20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레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헌신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기도가 되어서 간증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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