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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6:8-15절),

대산지기 2007. 2. 8. 11:11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 6:8-15절, 183.184.190장&

사람의 성격은 외모에서 어느 정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동양에서 관상이 보편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성격은 그 사람의 운명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상을 통해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여 미래도 어느 정도 점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성격을 바꾸려면 영웅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성격은 좀처럼 바꿔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성격과 관련된 운명도 역시 바꿔지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미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에 관한 한 성격과 운명의 연관성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 자신의 성격까지도 개조하실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으로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성령이 나타나며, 동시에 자신은 죽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의 성격은 정령 충만을 통해 달라집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스데반의 모습이 천사와 같은 것은 그의 본래 성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성령 충만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것도 그가 하나님을 만나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에서 말씀을 증거 할 때에 공회 회원들이 그 얼굴을 보니 천사의 얼굴 같더라고 했습니다. 얼굴은 마음의 반사경이라 한 대로 마음의 상태가 얼굴에 들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으로 위대하게 산 사람들은 그 얼굴이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이니 현재의 내 얼굴이 천사의 얼굴인가? 마귀의 얼굴인가? 성령이 충만하면 천사의 얼굴이 될 것이고 악령이 충만하면 마귀의 얼굴이 될 것입니다.

1.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얼굴이었습니다. 인간의 논리는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 곧 로고스는 결코 제한성이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논리가 인간의 논리 위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교권주의자들은 그의 말씀에서 허점을 찾아내기 위해 온갖 질문을 던졌으나 그들의 의도는 항상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공회 앞에 끌려가게 될지라도 무슨 말을 할 것인가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변론할 말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마10:19). 이런 의미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인 것입니다.(히11:38). 스데반은 자신의 지혜를 통해 설교하거나 변론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말했으므로 그와 변론한 자들이 이길 수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관한 박사라 할 수 있는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성경에 관한 토론에서 참패를 당했다는 것은 성경이 인간의 지혜로 해석되거나, 가르쳐질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선 외부로부터 나타나는 스데반의 얼굴의 광채가 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거울이며 표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얼굴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좋은 마음 평화스러운 마음 기쁜 마음 만족한 마음을 가질 때 내 얼굴의 표정은 한없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 괴로운 마음 슬픈 마음을 가졌을 때의 내 얼굴의 표정은 어두움을 드러낼 것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으나 배우가 아닌 이상 대개 그러합니다. 사업에 성공할 때의 얼굴 사업에 실패할 때의 얼굴이 다릅니다. 입학시험에 합격하였을 때와 불합격했을 때의 얼굴이 다릅니다.

얼굴에 나타나는 모든 표정은 그 사람의 희로애락을 잘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 성격과 생각하는 것까지도 잘 표현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입니다. 성도의 얼굴은 곧 스데반의 얼굴이어야 합니다.

2.스데반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스데반은 사형 언도를 받은 순교의 직전에도 기쁨에 찬 미소를 띌 수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과 같이 미소짓는 스데반의 얼굴은 원수들의 강퍅한 마음에도 깊은 감동을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이 기쁜 미소는 도저히 세인들은 가질 수 없는 것이요 성령으로 충만한 참된 그리스도 교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기쁨의 미소입니다. 현대인은 무의미한 생활의 반복과 가치의식이 상실된 피동적인 생활에서 권태만을 느끼며 살아가므로 그 얼굴에서 미소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기쁨이 충만하여 희열에 넘치는 얼굴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노하면 한번 늙어진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생에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프랑스 여자들은 히히 웃지 않고 호호 웃는다고 합니다. 히히 웃으면 예쁜 얼굴에 주름살이 잡힐까 염려되어 호호 웃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얼굴은 미소가 아니요 은혜의 기쁨이 충만한 천사의 얼굴로 변화한 것입니다.

3.그의 얼굴에는 믿음과 권능이 가득했습니다. 8절 말씀에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기 때문에 그 얼굴이 언제나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풀리카르포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면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 한 것도 그 마음속에 은혜가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배부른 자는 밥밥 하지 않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족한 자는 요란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천사처럼 기쁩니다. 죽어가는 환자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은혜가 메마르면서 아무리 웃고 천사의 얼굴을 가지려고 하여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권능이 충만한 성도가 되어서 언제나 천사의 얼굴을 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합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험상궂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세인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또한 주님께로부터도 죄송한 일이 될 것입니다.

4.그의 얼굴에는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행7:60절에 스데반이 순교할 때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이 죄를 저희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외치고 순교했다고 했습니다. 돌에 맞아 순교를 하면서까지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는 기사를 보면 그의 인격 전체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만 있으면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나이팅게일" 여사는 크레미아의 천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얼굴이 아름답고 화장을 잘하고 비싼 옷으로 감싸고 있어 그녀를 천사라 부른 것은 아닙니다. 간호원으로서 직업의식이라기보다 사랑의 마음으로 전쟁터의 부상병을 정성껏 간호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양식이 없이는 살 수 있지만 사랑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산이 부족한 교회는 유지해 나갈 수 있으나 사랑이 없는 교회는 유지를 못합니다. 신자가 적어도 예산이 적어도 온 교회가 사랑이 충만하면 그 교회는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년 예산이 많이 제정해서 선교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 은혜를 받고 나니 사랑심이 생겨서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내어놓으니 그것으로 선교를 하니 어느 때는, 삼천 명도 모여들고 어느 때는 오천 명도 모여들어서 회개의 운동이 있기도 하여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들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초대교회가 부흥이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도 스데반과 같이 사랑의 얼굴을 가지고 삽시다. 이는 곧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며 자신에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5.그의 얼굴에는 소망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중대하게 생각해야 할 스데반의 미소의 원인은 순교하기 직전에 하늘에 열린 창을 통하여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돌을 던지는 원수를 보기 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과 자기가 받을 생명의 면류관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그 놀라운 희망의 빛을 바라 본 스데반에게는 죽음에 직면한 최대의 고통도 아주 작은 일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소망에 대해서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라고 외쳤습니다.

현실을 보기 전에 위의 것을 바라보는 자 사악한 원수를 보기 전에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자의 눈에는 이렇게 천사의 미소가 담기는 것입니다. 갈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는 자는 욕을 먹어도 마음이 편하고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편하고 심지어 순교를 당한다 해도 마음이 편하여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되어 영광의 빛을 남기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하며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는 천사의 얼굴을 소유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미래의 소망이 없는 자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도 날마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그 심령 속에는 소망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인 것입니다.
스데반은 죽으면서도 소망이 가득했으니 그것은 미래 영원한 나라의 소유의 소망이었습니다.

이 미래의 소망은 세상의 모든 인들이 가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종교를 믿지는 아니하면서도 사후의 세상을 동경하는 것입니다. 하나 동경한다고 다 얻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처럼 소망이 가득한 자가 얻는 것입니다.

6.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얼굴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의 광채 때문에 사람들은 계속 그를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마에 수건을 둘렀습니다. 이는 모세가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음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그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도 하나님께 온전히 사로잡혔으므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증거 되며 큰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은혜가 권능이 충만하다는 말 다음에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라는 첨가말로서도 입증됩니다.

압축된 이 한 구절 속에는 성령을 통한 스데반의 사역 전체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또한 스데반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취어 졌는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 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가지고 서 있었습니다.

사람에 의해서 주어지는 권위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권위는 결코 한계가 없습니다.

7.얼굴이 천사와 같았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은 공회의원들이 볼 때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비록 원수들의 눈 일지라도 빛나는 얼굴 광채나는 얼굴 기쁨과 웃음의 얼굴 후광이 비치는 얼굴로 보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한 증거입니다.

사람의 속에 죄가 있으면 얼굴에 화기가 없습니다. 무서워집니다. 사람의 속에 마귀가 있으면 그 얼굴은 마귀의 얼굴과 같이 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됩니다. 스데반의 얼굴을 보면서도 공회의원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죄하여 죽이기로 악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잔인합니다. 참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인간들의 심리는 잔악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나타난 천사를 보면서도 회개치 않고 오히려 범죄 하려고 소란을 피웠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백성들처럼 인간들은 악의 극도에 이르면,

아무리 선한 것을 보고 듣고 해도 마음을 돌이킬 줄 모르고 악을 행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망하고 맙니다. 본문에서 스데반의 관상은 천사의 관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스데반의 외모가 세상 어떤 사람의 모습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변화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성령으로 변화되면 우선적으로 영적 변화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성품과 외모도 변화됩니다. 이는 모세의 경우나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죄로 찌들거나 세상사로 병든 세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닮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사와 같이 걱정이 없는 얼굴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스데반의 그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오히려 더 빛났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순교 직전에도 하나님이 저와 같이 한 증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여생을 주와 같이 하는 생을 보냅시다. 그러면 언제나 평화로운 얼굴을 하며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모함을 받고 공회에 잡힌 스데반의 모습에 대한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 같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의 현재 위치와 닥쳐올 일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고난 앞에 천사와 같은 얼굴로 서 있는 스데반의 모습은 구원과 영생의 확신에 찬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 모습니까? 여러분도 스데반처럼 천사의 얼굴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주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면 천사의 얼굴보다 빛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우리살고 있는 아파트촌이나, 빌라 촌에, 각각 동네마다 풍성하게 풍겨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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