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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 (행17:1-34절),

대산지기 2007. 2. 8. 11:08
데살로니가에서의 바울
행17:1-34절, 256.257.258장.&

바울과 더불어 그의 2차 선교여행을 계속하다 보면 세 가지 종류의 도시들에 갔었다는 것과, 복음에 대한 반응도 세 가지였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본문은 무엇이 사람을 신사적으로 만드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1.데살로니가-말씀을 반대합니다.(1-9절) 이 도시는 로마로 가는 주요 도로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바울은 그의 원칙대로 회당에서 시작하여 3주 동안 그들과 함께 토론하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펴 보였는데, 이것은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몇몇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회심한 헬라인 무리들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하듯이 사단은 불신자들을 사용하여 반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대하기 위하여 시장의 하류 계층의 사람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야손과 함께 머물렀는데, 군중들은 그의 집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로마서 16:21절에 언급된 야손과 동일 인물이라면, 그는 바울의 친척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친절과 공격을 받은 이유가 설명됩니다. 그들의 거짓 고소가 누가복음 23:2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소와 비슷하다는 점에 유의하여야합니다.

이로부터 얼마 후에 고린도에서 쓴 데살로니가후서를 읽어보면 겨우 3주 동안에 바울이 이 사람들에게 교리의 이모저모를 폭넓게 가르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나라(왕국)와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이 일어나는 것 등에 대해서 말했을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신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권고를 받아들이기는 너무 약하다고 여겨서는 결코 안됩니다. 바울의 사역은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불과 3주 동안에 바울이 세상을 뒤엎는다고 고발하였기 때문입니다.

2.베뢰아-말씀을 받습니다.(10-14절) 그 날 밤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14절) 그리스도를 위해 계속 전도하는 교회를 뒤에 남겨 두고 40마일(약 64km) 떨어진 베뢰아를 향하여 떠났습니다. 사실상, 바울은 이들이 그처럼 효율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해 칭찬하였습니다.(살전1:6-10절). 이것은 참된 신약적 형식입니다.

개심 자들을 얻어 이들을 가르치고 (살전2장), 이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남겨 두고 떠나오는 것입니다. 베뢰아는 주요간선 도로에 인접한 지역이 아니라 샛길에 접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고자 하셨던 곳입니다. 베뢰아에 사는 이들과 같은 유대인들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웠을까요?

하나님은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 격려와 다시 새롭게 되는 일이 필요한 것을 알고 계셨으며, 이들은 베뢰아에서 이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들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이들은 말씀을 받았습니다.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말씀에 대한 준비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상고하고 설교자가 하는 말들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매일 성경을 공부하였습니다. 12절에 나오는 "그러므로"에 유의하여야합니다. 11절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때에 이들은 말씀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바쁜 동안, 사단은 문제를 일으키기에 바빴습니다. 사단도 그의 선교사들을 베뢰아에 보냈습니다.

사단은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아덴을 향해 출발하였으며 이 형제들이 강건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실라와 디모데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들은 계획된 대로 아덴으로 오지 못하여, 후에 고린도에서 합세하였습니다.(18:5절).

바울이 이번에 떠나온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멧세지를 전하는 일에 전진해 가는 동안 실라와 디모데는 교회를 가르칠 수가 있었습니다.

3.아덴-말씀을 비웃습니다.(15-34절) 바울은 관광객으로 아덴에 와서 구령 자로 전환하였습니다. 이 유명한 도시는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바울이 본 것은 미신뿐이었습니다. 어떤 고대 작가는 아덴에서는 사람보다도 신(우상)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고 썼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으나, 거의 또는 전혀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헬라 교사들의 방식을 따라 사람들이 토론하거나 물건을 거래하기 위하여 모이는 광장(아고라)에서 멧세지를 전했습니다. 이 당시 아덴에는 두 가지 주된 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스토아학파(stoics)의 사상은 물질주의적이며 운명론에 가까웠습니다. 자만심과 개인의 독립성에 근거하여 세워진 체제로서, 자연이 곧 그들의 하나님이었으며 모든 자연은 위대한 절정을 향하여 움직여 간다고 믿었으므로, 범신론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피큐러스학파(Epicureans)는 쾌락을 목표로 삼으며, 이성이 아닌 경험에 그들의 철학이 기초하고 있었고, 이들은 거의 무신론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철학을 보게 되는데,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들과 직면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말장이라고 부르며 경멸하였습니다.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자 이들은 그가 새로운 두 신(神)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아"(Anastasia)인데 아마도 이것을 이름으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이들은 바울을 "아레오파구스"(Areopagus)라는 공식 법정으로 데려갔는데, 이 곳은 마르스 언덕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곳에서 바울은 위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보니 당신들은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라는 정중한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에 대한 말을 사용하여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하나님을 전하는 데에 이 기회를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네 가지 위대한 진리를 제시합니다. 1)그는 창조주이십니다.(24-25절) 헬라 사람들은 창조에 대하여 다른 이론들을 신봉하고 있었고, 일종의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성전에 사시는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며, 실제로는 인간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그는 통치자이십니다.(26-29절) 하나님은 나라들의 경계를 정하시고 나라들을 다스리시며,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게 만들고자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유지시키는 분이심을 보여 주기 위해 바울은 그들 자신의 작가(시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합니다.(28절). 이 말은 헬라의 그 싯귀가 영감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인의 말이 하나님의 진리와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다시 수완 있게 그들의 신당과 우상들이 어리석고 무지한 일인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그는 구세주이십니다.(30절) 바울이 위대한 헬라의 문화를 "알지 못하던 시대"라고 불러 백지화시키는 것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모든 지혜와 문화로써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고전1:18-).

하나님은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회개한다면 용서하실 것입니다. 4)그는 심판관이십니다.(31절) 하나님은 장차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하실 분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이 사실을 입증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한다면 장차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5)설교 결과가 나타났습니다.(32-34절), 바울이 사람들의 방해로 인해 설교를 다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비극적이면서도 멋진 것이었습니다. (1)어떤 이들은 조롱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부활을 비웃었습니다. (2)어떤 이들은 결정을 미루었습니다. 그들은 심사 숙고한 사람들이었고, 설교를 파악하려고 노력했으며 의로운 사람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또 그들이 지불해야 할,

큰 대가는 무엇인지에 대해 궁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확실한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행24:25절에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며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했습니다.

(3)바울은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는 그의 의무, 곧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마쳤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안하고는 들은 자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4)어떤 이들은 믿었습니다. 디오누시오는 아덴 대법정의 재판관이었습니다.

다마리라 불리는 여인이 아덴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다면 바울의 말을 들으려고 시장에 나와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측하건대 그녀는 아마도 부도덕한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높은 자나 낮은 자, 구원받지 못한 자 모두에게 다 전파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롬10: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롬10: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엡2: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갈6: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은 선한 일입니다. 금방 열매가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때가 이르면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루하루 일상생활이 기도가 되도록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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