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인생의 파선을 두려워 말라. (행27:1-44절),

대산지기 2007. 2. 8. 11:05
인생의 파선을 두려워 말라.
행27:1-44절, 462.463.464장.&

오늘 읽은 성경의 내용은 죄수아닌 죄수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는 도중에 일어난 난파선의 내용입니다. 배가 출항하는 과정부터 폭풍우를 만나서 그 참담한 생사의 기로에서 어떻게 탑승객 276명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났는지를 너무나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난파선 이야기 하면 떠 오르는 것은 하멜 표류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1633년 효종 4년에 화란사람 하멜 일행이, 탄 배가 폭풍우에 떠밀려 제주도 부근에 난파하여 36명이 살아남았고 당시 조정에 붙들려 14년간 끌려 다니다가 탈출해서 기록한 내용입니다.

하멜표류기도 흥미있지만 부록에 나타난 당시 우리나라의 지리, 풍토, 사물, 경제, 군사, 법속, 교육, 종교, 무역 등에 대해서 자세히 썼고 이 책은 한국을 세계로 알리는 최초의 책이 되었습니다. 물론 하멜 일행 등은 대개 개혁교회의,

성도들로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매우 흥미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본문 성경의 내용은 그러한 세상에서 흔히 있는 난파선 일기와 같은 것이 아니고 매우 독특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바로 그 난파선 배에 동승하여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바울의 주치의로서 그때 일어난 사건을 자세하고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을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룬다면 한편의 드라마도 될 수 있고 영화가 될 수 있으리만큼 완벽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성경기록이며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본문은 전혀 엉뚱한 교훈을 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난파선 일기에 그치고 맙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기에 성경 해석 방법이 어떤가가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본문이 너무나 자세하게 사건의 내용 뿐 아니고 인물의 의견이나 감정까지도 다루었기 때문에 이 본문을 하나의 풍유적 해석으로 취급하는 방법입니다. 배는 무엇이고, 풍랑은 무엇을 의미하고 선주와 선장은 무엇을 의미하고 짐보따리는 무엇을 의미한다는 등의 해석입니다.

그리하여 그 의미가 주는 해석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서 은혜를 받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본문의 난파선 일기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시도입니다. 비유적일 뿐 아니라 실존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라든지 교회의 생활,

성도의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비유적으로 또는 실존적으로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시도입니다. 물론 위와 같은 해석들을 할 때 우리가 실제적으로 얻는 교훈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은혜로운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게도 됩니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것은 하멜표류기와 사도행전 27장의 난파선의 일기와 혼돈해 버릴 위험성이 높습니다. 성경은 세상의 책들과 같은 것이 아니고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요 말씀이란 사실입니다. 이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가장 옳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이 사건이 철저히 역사적 사건인 만큼 그 사건 역사의 배후에서 움직이시고 로마까지 바울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일입니다. 구속사적인 성경해석으로 봐야 성경을 옳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 그리고 거룩한 역사의 간섭이 파도처럼 움직이고 큰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감지해야 합니다.

결국 성경 역사의 흐름은 죄로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메시야를 주시기로 언약하시고 그것을 성취해 가시며 그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 중에서 구원 받을 이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웅장한 역사적 대 드라마요 파노라마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메시야를 주시기로 약속했을 때"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절)고 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난파선도 이 맥락에서 이해 되어져야 합니다. 이미 여러번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하여 계획하고 계셨읍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의 가슴 속에서도 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 앞에 가서 복음의 폭탄을 던질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 여행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동행했던 역사가이며 의사였던 누가의 마음 속에도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우선 사도행전19:21절에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고 했습니다. 로마는 세계 복음화의 전초기지가 될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바울이 낙심할 때마다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23:11절)"네가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행 25:12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난파선에서도 구원한 이유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행27:24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마지막장인 28:14절에 "로마로 가니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말씀을 좀더 원문에 가깝도록 하면 "그리하여 로마로 가니라"로 해야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대로 복음이 땅끝을 향하여 움직이는 모습을 봅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요나서에서 살펴보면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가던 요나는 큰 풍랑과 돌풍을 맞아 죽게 되었을 때 제비가 뽑혀지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하면서 요나를 삼키게 했고 3일 3야를 고기 뱃 속에 있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니느웨에서 선교사로 일했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파도와 바람을 다스리시고 그리고 결국은 복음이 땅끝까지 가도록 섭리하시며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마8:23-27절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으로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서 주여 구원하소서 라고 외쳤을 때 예수님은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이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27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천지와 만물을 다스리며 구원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와 봅시다. 사도 바울과 백부장은 항해시작부터 의견이 달랐습니다.

사실 백부장은 호송책임관이고 바울은 죄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항해 위험 경고는 먹혀 들지 않았습니다. 호송 책임자로서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개 풍유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백부장이 바울의 말 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임한 것이 배가 파선된 원인임을 부각시켜서 어떤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물론 바울은 이미 앞으로의 일을 내다보는 영감을 가진 것이 사실이고 백부장은 그것을 눈여겨 보지도 듣지도 아니한 것이 사실입니다. 유라굴로라는 동북풍이 미친듯이 불어와 배는 방향을 잃고 표류했고 그러다가 온갖 노력을 했으나 허사였고 배의 짐을 바다에 다 던져 버리고 배의 기구도 바다에 버렸습니다.

성경 그대로"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행27:20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인간이 자기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음을 나타나는 말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배만 파산될 뿐이지 인명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아니할 것이라는 주님의 계시를 알려 주었습니다.

탑승객 276명이 전혀 무사히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 바울 때문에 덤으로 살아 남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태풍으로 배가 파선 직전에 놓이고,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說敎)했습니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使者)가 어제 밤에 내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3-25절)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극한 상황 속에 있을 때 권능을 베푸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며 내니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아곱에게도, 다윗에게도, 모세에게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불안과 초조와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길은 칠흑같은 어두움이 깔려 있고 풍랑은 심해서 바로 죽음 직전에 와 있는 듯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영광과 목적을 위해서 우리를 붙드시며 섭리하며 간섭하고 계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불안한 것은 우리의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고 우리의 회개가 없는 때문이고 전폭적으로 주 앞에 맡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목적을 이루어 가는 데는 죽을 고비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경우에 따라서는 파선 직전까지 갈 수도 있고 아예 파선 되어 버리기까지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나라도 잃어 봤고 6.25전쟁으로 완전히 잿더미 위에 올라도 가 보았습니다. IMF도 맞이해 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은혜되게 하였습니다.

도리어 우리를 낮추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눈물을 주셔서 교회를 일으키게 하시고 결국은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맙시다. 안심하십시오. 환난이 온다고 해도 겁먹지 마십시오. 실패가 있어도 겁먹지 마십시오. 이 본문에 바울이 고백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겁날 것 없습니다.

주의 종들의 외침을 들으시고 안심하십시오. 역사는 선택받은 자 구원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배가 파선 당하는 고통을 당해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고 일어섭시다. 오늘의 한국상황은 난파선 같습니다.

오늘의 기업, 오늘의 학교 교육, 오늘의 가정들, 오늘의 교회들은 난파선 직전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겁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역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힘있게 믿음으로 전진할 때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게로 먹이시고 박석을 깨뜨려서 생수가 솟아나게하여 갈증을 해소시키켰습니다. 밤에는 불 가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셔서 목적지 가나안 땅에까지 인도하신 분이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주 안에서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