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신유
행28:1-15절, 263.307.308장.&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서신을 이어주는 다리로서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보면서 바울이 로마까지 가는 길목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던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족을 어떻게서든지 구원해 보려는 그의 꿈은 좌절되고 도리어 고발되어 2년 간의 옥고를 치르고 때로는 돌팔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의 손길은 계속 바울을 붙드시고 계셨습니다. 로마로 호송하는 도중에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서,
14일간 태풍에 시달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은 거기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났고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전에 말하기를 사도행전은 곧 선교의 행전이며, 성령의 행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도행전은 또한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의 행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여행은 말 그대로 천신만고, 우여곡절, 외우내환, 환난 핍박의 연속이었으나 이제 28장에 와서는 멜리데섬에 도착하여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사실 유대인 지도자들인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유대에 주재한 로마 관헌들이 바울에 대한 태도와 멜리데섬의 토인들과 그들의 추장이 바울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전자는 바울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바울이 무죄임에도,
중죄인 취급해서 몇 해를 감옥에 가두어 두었는데 반해서 후자는 바울을 극진히 대접하고, 나중에는 신이라고까지 칭송했습니다. 이 섬의 토인들의 태도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어떤 겨울 아침 찬비가 아직 멈추지 않고 후줄근한 파선당한 외국 사람의 무리가 몰려 온다는 소식을 듣고 토인들은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허기와 추위에 지치고 공포에 질린 생소한 사람들을 육지로 끌어 올려 토인들은 자기 마을로 데려와서 모닥불을 피워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에게는 배척을 당하고,도리어 이방인들에게 영접되었습니다.
이 멜리데의 토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의 사자를 영접했습니다. 그토록 수많은 환난 핍박 후에 처음 받아 보는 위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 후에는 위로가 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때의 고통과 아픔이 우리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아주 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도 결국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인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사도행전 전편을 살펴보면 언제나 주님의 위로와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위로가 없으면 한 순간도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7:1절에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56:11절에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1:12절에는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여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주님의 위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할 때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찾아 오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으로 우리가 다시 새힘을 얻고,
일어나도록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당할찌라도 낙심말고 주의 위로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위로와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다시 이 본문을 잘 살펴보면 바울 일행이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섬사람들의 위로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바울 일행이 추장 보블리오의 친절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또 병고침 받은 사람들이 바울 일행을 후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디올에서 믿는 형제들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그들을 위하여 멀리 환영을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환난시험 당했을 때 두말할 필요없이 주님의 위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의 위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목사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교역자들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위로는 인간적인 위로 뿐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위로입니다. 그 뿐 아니라 목사도 성도들이 주는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물론 주님의 위로가 있지만 그래도 성도들이 목사의 수고를 알아주고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서 애쓰고 기도하고 있고,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것도 큰 위로가 됩니다. 성도들이 때로는 곁길로 가고, 넘어져 있을 때 목사의 가슴 속에 멍이 들고, 아파하고 있음을 이해만 해 주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끼리 서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앞장서서 물질 바치고, 시간 바치고, 봉사하는 자에게 수고했습니다. 애썼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족합니다 라고 말하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사건건, 뭐 별로야! 자기가 뭐길래! 주제 파악을 해야지! 뭐가 잘난척 하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느니,
교회 나온지 얼마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뱉어 버린다면 교회는 싸늘하게 식어 버립니다. 그리고 아무도 앞장서서 봉사할려고 안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부족합니다. 목사에게도 빈말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저를 두고 한 말씀으로 받습니다. 참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위로를 듣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 집사님! 수고가 많습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 한 마디의 위로가 교회의 생기를 돌게하고 새힘을 얻게 합니다. 100명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남을 무시하고 고집을 부리면 교회는 싸늘하게 식어집니다.
반면에 참 잘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합시다. 됩니다. 해봅시다. 갑시다 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피차 위로가 있는 교회는 긍정적으로 일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교회가 되고 새힘을 얻습니다. 대개 신앙(信仰)에 낙심하게 되는 경우는 위로(慰勞)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로가 있으면 삶이 변화(變化)가 됩니다. 물론 언제나 주님의 위로가 첫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로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위로가 필요(必要)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부모도 자녀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자녀도 부모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자녀에게도 공부하느라고 수고가 많았구나, 최선을 다해라,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더 잘 합니다. 그러나 너는 어째서 그 모양이냐? 남들은 다 잘 하는데 넌 왜 그러느냐?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자녀들이 머리가 혼란해지고 힘드는데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집니다.
바울이 천신만고 끝에 주님의 위로와 이방인 토인들의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 위로가 있을 때 모두가 힘을 얻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본문28:14절에 보면 "로마로 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역은 실제로 "그리하여 로마로 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란 표현을 누가는 정말 신바람 나고 하나님의 구속의 과정이 어떠했음을 단적으로 말합니다. 마치 올림픽에서 마라톤의 우승자가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리하여 일등으로 골인했습니다란 해설과 비슷합니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
로마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줄 아는 바울이 천신만고 끝에 멜리데섬에 도착하여 토인들의 영접을 받고 드디어 로마에 있는 성도(聖徒)들이 환영(歡迎)을 나온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로 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自己)의 영광과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바울을 붙들고 계셨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일을 되게 하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서 모닥불 옆에 있다가 그 자신이 나뭇단을 가져다가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데 독사 한 마리가 바울의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 광경을 본 토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죽는구나! 바다에서는 살았지만 공의는 결코 헛되지 않아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인들은 바울이 곧 죽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독사를 털어 불에 넣은 바울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아니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는 사도적 사건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살인 괴수로 알았던 토인들의 마음이 변해서 갑자기 신이라고 바울을 공경했습니다. 토인들의 생각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를 여러번 여러번 사경에서 건진 것은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늘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말할 수 없는 어려운 가운데서 건져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생각으로 기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모두가 주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해도 쓸모없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 후에 바울은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의 질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이것도 바울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치유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도 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바울을 로마로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바울의 로마행을 방해하기 위한 모든 세력이 총집결해서 바울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붙들고 계시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모든 악의 세력 모든 방해 세력이 우리를 가로 막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자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분명히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승리는 곧 택함받은 자들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나타나고 환난에서도 감격과 감사로 화답하게됩니다.
믿는 자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환난가운데 부르짖어 응답받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28:1-15절, 263.307.308장.&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서신을 이어주는 다리로서 초대교회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보면서 바울이 로마까지 가는 길목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던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동족을 어떻게서든지 구원해 보려는 그의 꿈은 좌절되고 도리어 고발되어 2년 간의 옥고를 치르고 때로는 돌팔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의 손길은 계속 바울을 붙드시고 계셨습니다. 로마로 호송하는 도중에 유라굴라 광풍을 만나서,
14일간 태풍에 시달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은 거기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났고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주셨고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전에 말하기를 사도행전은 곧 선교의 행전이며, 성령의 행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도행전은 또한 성삼위 하나님의 능력의 행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여행은 말 그대로 천신만고, 우여곡절, 외우내환, 환난 핍박의 연속이었으나 이제 28장에 와서는 멜리데섬에 도착하여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사실 유대인 지도자들인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유대에 주재한 로마 관헌들이 바울에 대한 태도와 멜리데섬의 토인들과 그들의 추장이 바울에 대한 태도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전자는 바울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바울이 무죄임에도,
중죄인 취급해서 몇 해를 감옥에 가두어 두었는데 반해서 후자는 바울을 극진히 대접하고, 나중에는 신이라고까지 칭송했습니다. 이 섬의 토인들의 태도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어떤 겨울 아침 찬비가 아직 멈추지 않고 후줄근한 파선당한 외국 사람의 무리가 몰려 온다는 소식을 듣고 토인들은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허기와 추위에 지치고 공포에 질린 생소한 사람들을 육지로 끌어 올려 토인들은 자기 마을로 데려와서 모닥불을 피워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복음이 유대인에게는 배척을 당하고,도리어 이방인들에게 영접되었습니다.
이 멜리데의 토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의 사자를 영접했습니다. 그토록 수많은 환난 핍박 후에 처음 받아 보는 위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 후에는 위로가 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때의 고통과 아픔이 우리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아주 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도 결국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인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사도행전 전편을 살펴보면 언제나 주님의 위로와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위로가 없으면 한 순간도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7:1절에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56:11절에도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1:12절에는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여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주님의 위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좌절할 때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찾아 오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위로의 말씀으로 우리가 다시 새힘을 얻고,
일어나도록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을 당할찌라도 낙심말고 주의 위로를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위로와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다시 이 본문을 잘 살펴보면 바울 일행이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섬사람들의 위로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바울 일행이 추장 보블리오의 친절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또 병고침 받은 사람들이 바울 일행을 후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디올에서 믿는 형제들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그들을 위하여 멀리 환영을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환난시험 당했을 때 두말할 필요없이 주님의 위로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의 위로도 큰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목사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교역자들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위로는 인간적인 위로 뿐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위로입니다. 그 뿐 아니라 목사도 성도들이 주는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물론 주님의 위로가 있지만 그래도 성도들이 목사의 수고를 알아주고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서 애쓰고 기도하고 있고,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것도 큰 위로가 됩니다. 성도들이 때로는 곁길로 가고, 넘어져 있을 때 목사의 가슴 속에 멍이 들고, 아파하고 있음을 이해만 해 주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끼리 서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앞장서서 물질 바치고, 시간 바치고, 봉사하는 자에게 수고했습니다. 애썼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족합니다 라고 말하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사건건, 뭐 별로야! 자기가 뭐길래! 주제 파악을 해야지! 뭐가 잘난척 하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느니,
교회 나온지 얼마되었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뱉어 버린다면 교회는 싸늘하게 식어 버립니다. 그리고 아무도 앞장서서 봉사할려고 안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부족합니다. 목사에게도 빈말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저를 두고 한 말씀으로 받습니다. 참 은혜로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위로를 듣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 집사님! 수고가 많습니다.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 한 마디의 위로가 교회의 생기를 돌게하고 새힘을 얻게 합니다. 100명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남을 무시하고 고집을 부리면 교회는 싸늘하게 식어집니다.
반면에 참 잘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합시다. 됩니다. 해봅시다. 갑시다 라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피차 위로가 있는 교회는 긍정적으로 일하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교회가 되고 새힘을 얻습니다. 대개 신앙(信仰)에 낙심하게 되는 경우는 위로(慰勞)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로가 있으면 삶이 변화(變化)가 됩니다. 물론 언제나 주님의 위로가 첫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로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위로가 필요(必要)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부모도 자녀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자녀도 부모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자녀에게도 공부하느라고 수고가 많았구나, 최선을 다해라, 사랑한다고 말해주면 더 잘 합니다. 그러나 너는 어째서 그 모양이냐? 남들은 다 잘 하는데 넌 왜 그러느냐?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자녀들이 머리가 혼란해지고 힘드는데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집니다.
바울이 천신만고 끝에 주님의 위로와 이방인 토인들의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 위로가 있을 때 모두가 힘을 얻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본문28:14절에 보면 "로마로 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역은 실제로 "그리하여 로마로 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란 표현을 누가는 정말 신바람 나고 하나님의 구속의 과정이 어떠했음을 단적으로 말합니다. 마치 올림픽에서 마라톤의 우승자가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 그리하여 일등으로 골인했습니다란 해설과 비슷합니다.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
로마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줄 아는 바울이 천신만고 끝에 멜리데섬에 도착하여 토인들의 영접을 받고 드디어 로마에 있는 성도(聖徒)들이 환영(歡迎)을 나온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로 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自己)의 영광과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바울을 붙들고 계셨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일을 되게 하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서 모닥불 옆에 있다가 그 자신이 나뭇단을 가져다가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데 독사 한 마리가 바울의 손가락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 광경을 본 토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죽는구나! 바다에서는 살았지만 공의는 결코 헛되지 않아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인들은 바울이 곧 죽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독사를 털어 불에 넣은 바울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아니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는 사도적 사건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살인 괴수로 알았던 토인들의 마음이 변해서 갑자기 신이라고 바울을 공경했습니다. 토인들의 생각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를 여러번 여러번 사경에서 건진 것은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늘 알아야 할 것은 우리를 말할 수 없는 어려운 가운데서 건져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생각으로 기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모두가 주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해도 쓸모없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사건이 일어난 후에 바울은 추장 보블리오의 아버지의 질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 이것도 바울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치유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도 그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특별한 은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바울을 로마로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바울의 로마행을 방해하기 위한 모든 세력이 총집결해서 바울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붙들고 계시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모든 악의 세력 모든 방해 세력이 우리를 가로 막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자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분명히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승리는 곧 택함받은 자들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나타나고 환난에서도 감격과 감사로 화답하게됩니다.
믿는 자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입니다. 환난가운데 부르짖어 응답받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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