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신임 총독 베스도 앞에서의 바울, (행25:1-12절),

대산지기 2007. 2. 8. 11:03
신임 총독 베스도 앞에서의 바울
행25:1-12절, 187.317.338장.&

이 세상에는 감옥에 넣어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용케도 법망을 피하고 거짓말을 계속함으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편 세상에는 무죄한 자가 옥살이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일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로마제국의 타락도 그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지배국인 유대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 지도층은 죄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어 달 때도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를 돈으로 매수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가 살아서 한 말이 귀에 거슬려 부활을 두려워서 철저한 야간 경계를 위해서 로마 군병들이 철통같이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실 때 돌문이 열리고 지진이 일어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한한 사건이 발생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 장면을 현장 목격한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세상에 퍼질까봐 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돈으로 시람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돈을 준 일 때문에 예수께서 참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한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진 꼴이 되었습니다.

24장 끝부분에 벨릭스 총독의 우유부단함과 바울에게 돈을 요구하면서 강온의 방법을 사용하여 무죄한 바울을 2년간이나 옥살이를 시켰습니다. 오늘의 본문 중에서 벨릭스 총독은 물러가고 베스도 총독이 부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말하자면 정권이 바꿔진 셈입니다.

후임자인 베스도 총독은 취임 3일 만에 예루살렘을 시찰하고 각계 인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있는 정계, 종교계, 재계할 것 없이 모든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을 탄핵하고 처벌할 것을 진정했습니다.

그들로 말할 것 같으면 대제사장,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산헤드린 공의회,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국회의원들은 전부가 바울의 처형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미 바울을 옥에 가둔지 2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저들이 바울에 대한 악감은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도를 증거하는 바울을 처형하지 않으면 저들의 기득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결사적으로 대 들었습니다. 그래서 신임 총독을 만난 첫번 자리에서,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이송(移送)하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건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청원(請援)의 배경에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는 도중에 사람을 풀어서 매복하였다가 암살하려는 공작이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사실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 사수를 위해서 유대 지도자들이 바울을 암살하려는 시도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생은 이처럼 철저하게 썩었고 부패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직위를 위해서 갖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도자들의 야누스적 얼굴들은 오늘 날도 변함 없습니다.

양심적으로 땀흘려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따돌리고 손해보고 불이익을 당하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기득권을 이용하여 권세와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쥐려는 인간의 속성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그런데 베스도가 우회적으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기를 거절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 중에 유력한 대표자들이 함께 가이사랴에 가서 송사할 일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정계와 종교계 지도자들이 베스도의 재판에서 바울을 향해서 무차별 온갖 허위와 거짓된 진술로 고소했으나 그들의 주장은 억지 주장이었음이 만 천하에 드러난 것이 되었습니다.

7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대한 사건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과 예수께서 무죄하게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3일만에 부활했다"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그 사건을 허위라고 해 본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당당하게 변호하기를 자기 자신은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아무런 혐의도 범법 사실도 없음을 힘있게 주장했습니다.

죄없는 자는 어디서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이런 사건 전개 자체가 바울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로 주어지고 있음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위기는 언제나 복음전도의 기회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의 심리는 다름없듯이 민중의 마음을 사야 정권이 계속 유지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스도 총독은 유대인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바울에게 은밀히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행25:9절)고 넌지시 떠 보았습니다.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는 유대 지도층들에게 표를 얻기 위한 수작이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가증스런 두 얼굴의 사나이입니까?

바울이 분명히 무죄임을 알고도 민중들의 마음을 사서, 다음에도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인간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과도 너무나 닮았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극렬분자들이 데모라도 벌리는 날이면 베스도 총독은 로마 황제의 눈에 거슬려 무능하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은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돈이 필요했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을 통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정치란 강이 없는 데도 다리를 건설해 주겠다고 공약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베스도의 마음을 읽고 있었기에 재판을 받을 바에는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받겠다고 응수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을 사랑했을 망정 해를 끼친 일이 전혀 없고 또 그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이므로 당연히 가이사에게 재판받고 무죄선언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그랬더니 베스도와 그 배석자들이 할 말을 잃고 가이사에게로 호송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오늘 본문의 줄거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이 본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계시가 무엇이며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 본문의 흐름을 보면 베스도가 민중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말을 뒤집으면서 결국 바울을 로마 황제에게까지 보내게 된 것을 주의 깊이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스도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음을 눈치채셔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흐름은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이 통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베스도도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을 유대 폭도들과 유대 지도자들의 암살 계획에서 벗어나게 하는 도구로 쓰여졌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피면서 매 장마다, 사건 사건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통제하시고 관리하시면서,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이끌고 가셨듯이 여기서도 똑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일찍이 바울은 행19:21절에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당대의 경제대국, 군사대국, 정치대국, 세계의 심장이요 관문인 로마에서 복음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려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해야 세계선교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주께서도 바울의 마음을 아셨을 뿐 아니라 바울이 로마로 가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기 때마다 바울을 붙드시고 격려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기 동족의 살해공작에 쫓겨 천부장의 보호를 받으면서 낙심해 있을 때 그날 밤 그 외로운 밤에 주님이 바울의 곁에 서서 "네가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리라"고 했습니다.(행23:11절).

그런데 이 본문의 12절에 황제의 대리자인 총독의 입에서 부터 "네가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의 흐름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자기 영광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시며 돌보시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이 실패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시지 않고 외면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애매하게 미결수로 2년간의 옥고를 치를 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2년간 바울을 유대의 폭도들로부터 보호한 격이 되었고,
총독이 교체될 때를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를 방문하게 된 것은 그 혼자 자기 마음대로 간 것이 아니고 죄인의 신분으로 가서 황제 앞에 심문을 받게 하고 위대한 복음의 폭탄을 던지게 하신 것입니다. 일은 우리가 하는 것 같지만 그 일을 되시게 하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일이 잘 안되는 것 같아 낙심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방향을 조정하시고, 결국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시며 승리케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아주 엎드려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험당할 때 피할 길도 주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부러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가는 길에 하나님의 변함없는 손길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연약해서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지 못할 때 있겠지요. 그러나 그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35:3절에 보면 야곱은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루에도 열백 번도 더 넘어지고 쓰러지고 연약해진 우리들이지만 벌떡 일어나서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을 믿으며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역사는 헛되이 흐르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장중에서 움직입니다. 낙심할 것 없습니다. 문제를 문제시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로! 로마로! 보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사건마다, 위기 때마다 움직였습니다.

그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고 오늘도 살아계셔 택함받은 자들의 구원을 이루시고 붙드시며 간섭하시며 위로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 안에서 믿음으로 내 자신의 죄를 이기고 고해 같은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