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행18:12-28절, 347.349.377장.*
오늘 읽은 본문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작별(作別)을 만류하고 슬퍼하는 성도(聖徒)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행18:21절)고 했습니다. 물론 그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내용은 우리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것이 성도의 신앙(信仰) 생활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신앙(信仰) 생활(生活)을 한다고는 하나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의 뜻과 나의 생각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들은 철저(徹底)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소원 성취의 신앙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외우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뜻에 대해서 관심도 없으려니와 하나님의 뜻이란 말을 하면서 자칫 운명론에 빠지거나 자기 합리화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무관심하면서 그저 자기의 의를 정당화할 때 써 먹는 방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렵고도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뜻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구약 66권에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막연하게 공상하거나 신비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뜻을 순종하는 것이란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에 무슨 이상한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슨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단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옳은 신앙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사람이, 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성령님의 역할은 우리에게 바른 말씀을 깨닫도록 감화, 감동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바른 진리 위에 서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자기 나름대로의 속단이나 편견이나 자기 과시를 할 것이 아니고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고요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그것이 신앙으로 결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간에 불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겉포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개 실패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고 교회의 덕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예를 몇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가령 질병으로 고생하더라도 이 질병을 통해서 나의 신앙이 자라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는다면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업의 실패나 대학에 실패한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나의 삶의 방향을 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더 크고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럴 때 사람들은 퍽 낙심하고 좌절하고 주님의 뜻을 우습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당장 못깨달아서 낙심한 경우도 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의 일차적인 목표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풍성한 은혜의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평화가, 감사가 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영적으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실패도,
낙심도, 좌절도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무엇이든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늘 인간적으로 행복하거나 만족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불신자보다 더 처절한 절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 뜻을 고요히 기다리는 인내의 삶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움이 있지만,
여기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성도들이 낙심하거나 실패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혹 인간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결국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시며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 본문의 둘째 부분은 아볼로에 관한 기사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유대인이 에베소에 왔는데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고 했습니다. 결국 헬라문화권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성경을 깊이 연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아볼로를 평하면서 성경은 많이 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볼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직접 들은 사람이 아니고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성경은 절대로 인간의 위대성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아볼로의 성경지식의 위대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의 학문과 성경지식이 정통이 아님을 잘 지적했습니다.
아볼로는 예수에 관해서는 잘 알았으나 예수 자신은 잘 몰랐습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와 예수의 교훈을 학문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으나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하나의 종교로서 알고, 예수에 관해서 성경에 관해서 몇가지 아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본문대로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몰랐습니다. 성경은 겉 껍데기로 알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신학도 잘 알고 학문도 있는 사람 가운데 예상외로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욱이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 중에도 예수에 관해서는 다소 알 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와의 인격적인 교제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수십년 믿는다고 해도 늘 넘어지고 약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옳게 믿으려면 성경의 맛을 제대로 알고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구속과 환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볼로가 성경의 본질을 모르면서 회당에서 담대히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어서 가르치는 것은 강해설교입니다. 우리는 강해설교에 맛을 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해설교는 설교 중에 가장 성경적으로 설교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도 강해설교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성경강해를 듣고 아가야로 가서 은혜(恩惠)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성경이란 곧 구약을 의미하는데,
그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한 설교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가르친 설교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여러분들은 설교자가 아니고 그저 설교를 듣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서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성경 강해를 듣고 성경해석과 이해가 180도 전환된 것을 설명드렸습니다. 성경은 글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단순히 역사나 시나 편지를 편집한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내시기 위하여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계시하신 역사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어떤 도덕적 교훈을 주는 책도 아니고 윤리적 기준을 주는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전체의 흐름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맥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볼로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처럼 구약성경 전체를 읽고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강단에 있고 강단의 개혁은 성경을 구속사적 시각에서 바르게 강해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의 설교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다루었고 다른 하나는 아볼로가 깨달았던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얼른 보아서는 두 종류의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옳게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처럼 이단과 거짓된 종교가 많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어려운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확실히 붙들리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 능히 죄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몸부림 쳐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기 위해서 전력 투구해야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싸워 승리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18:12-28절, 347.349.377장.*
오늘 읽은 본문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작별(作別)을 만류하고 슬퍼하는 성도(聖徒)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행18:21절)고 했습니다. 물론 그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내용은 우리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것이 성도의 신앙(信仰) 생활일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신앙(信仰) 생활(生活)을 한다고는 하나 언제라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도 하지 않고 나의 뜻과 나의 생각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들은 철저(徹底)히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소원 성취의 신앙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외우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신앙의 본질에 속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뜻에 대해서 관심도 없으려니와 하나님의 뜻이란 말을 하면서 자칫 운명론에 빠지거나 자기 합리화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무관심하면서 그저 자기의 의를 정당화할 때 써 먹는 방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렵고도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를 좀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뜻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구약 66권에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막연하게 공상하거나 신비롭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뜻을 순종하는 것이란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꿈에 무슨 이상한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무슨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속단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옳은 신앙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사람이, 언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 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성령님의 역할은 우리에게 바른 말씀을 깨닫도록 감화, 감동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바른 진리 위에 서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자기 나름대로의 속단이나 편견이나 자기 과시를 할 것이 아니고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고요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그것이 신앙으로 결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간에 불신앙에서 출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뜻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겉포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개 실패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고 교회의 덕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예를 몇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가령 질병으로 고생하더라도 이 질병을 통해서 나의 신앙이 자라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는다면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업의 실패나 대학에 실패한 경우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고 나의 삶의 방향을 돌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 들인다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더 크고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럴 때 사람들은 퍽 낙심하고 좌절하고 주님의 뜻을 우습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당장 못깨달아서 낙심한 경우도 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의 일차적인 목표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풍성한 은혜의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평화가, 감사가 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영적으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실패도,
낙심도, 좌절도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무엇이든지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늘 인간적으로 행복하거나 만족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불신자보다 더 처절한 절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 뜻을 고요히 기다리는 인내의 삶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움이 있지만,
여기에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성도들이 낙심하거나 실패하도록 방치하지 않습니다. 혹 인간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결국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시며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 본문의 둘째 부분은 아볼로에 관한 기사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유대인이 에베소에 왔는데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고 했습니다. 결국 헬라문화권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성경을 깊이 연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아볼로를 평하면서 성경은 많이 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볼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직접 들은 사람이 아니고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성경은 절대로 인간의 위대성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아볼로의 성경지식의 위대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의 학문과 성경지식이 정통이 아님을 잘 지적했습니다.
아볼로는 예수에 관해서는 잘 알았으나 예수 자신은 잘 몰랐습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와 예수의 교훈을 학문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으나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하나의 종교로서 알고, 예수에 관해서 성경에 관해서 몇가지 아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본문대로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몰랐습니다. 성경은 겉 껍데기로 알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에는 신학도 잘 알고 학문도 있는 사람 가운데 예상외로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욱이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 중에도 예수에 관해서는 다소 알 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와의 인격적인 교제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수십년 믿는다고 해도 늘 넘어지고 약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옳게 믿으려면 성경의 맛을 제대로 알고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구속과 환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아볼로가 성경의 본질을 모르면서 회당에서 담대히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어서 가르치는 것은 강해설교입니다. 우리는 강해설교에 맛을 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해설교는 설교 중에 가장 성경적으로 설교할 수 있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도 강해설교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성경강해를 듣고 아가야로 가서 은혜(恩惠)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좀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성경이란 곧 구약을 의미하는데,
그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이해한 설교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가르친 설교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여러분들은 설교자가 아니고 그저 설교를 듣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서 아볼로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성경 강해를 듣고 성경해석과 이해가 180도 전환된 것을 설명드렸습니다. 성경은 글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은 단순히 역사나 시나 편지를 편집한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외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내시기 위하여 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계시하신 역사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어떤 도덕적 교훈을 주는 책도 아니고 윤리적 기준을 주는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전체의 흐름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맥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볼로가 뒤늦게 깨닫게 된 것처럼 구약성경 전체를 읽고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명쾌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강단에 있고 강단의 개혁은 성경을 구속사적 시각에서 바르게 강해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의 설교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다루었고 다른 하나는 아볼로가 깨달았던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얼른 보아서는 두 종류의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하나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옳게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는 길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처럼 이단과 거짓된 종교가 많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어려운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확실히 붙들리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 능히 죄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몸부림 쳐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깨닫기 위해서 전력 투구해야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싸워 승리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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