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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의 사람 바울.(행16:1-18절)

대산지기 2007. 2. 8. 10:37
성령의 사람 바울
행16:1-18절, 177.446.410장*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이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서서하는 말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사도 바울은 애초에 아시아로 제2차 선교여행을 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간절한 그들의 소원인줄 알고 마게도냐로 선교지를 바꾸었습니다.

먼저 복음이 유럽으로 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고 있습니다. 영적 귀가 열려있는 사람들은 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복음이 미치지 아니한 곳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의 내용은 사도들의 전도와 선교활동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또 성령께서 어떻게 직접 그의 구속의 사역을 위해서,

사도들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이 본문을 통해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도처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서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해 달라는 영적인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멀리가서 도와주어야 하지만 가까운 이웃, 친척, 가족 중에서도 사실 영적으로, 도와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119 구조대원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해내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자세히 살피면서 깊은 진리들을 캐 보겠습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직전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같은 동역자인 바나바와 같이 선교 여행을 할 수 없으리 만큼 의견이 달라서 서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사 문제에 의견이 달랐습니다.

마가 요한을 함께 데리고 가는 문제에 대해서 바나바는 관용적인 제자 마가가 친척이었기에 함께 선교에 대동하기를 강력히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가를 데리고 가면 도리어 선교의 사역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말하자면 마가는 제1차 선교여행 때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이탈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공적사역에 그런 성격의 소유자는 안된다는 것이고, 바나바는 마가의 친척이면서 정적인 사람이기에 마가를 데리고 가자는 쪽이었습니다.

바울은 공과 사를 구별해서 복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을 우선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갈라 서게 된 것입니다.외형적으로 보면 사도들의 언쟁과 다툼이 그들의 인격의 미숙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아무 가감없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번 지적한 대로 성경은 절대로 인간의 위대성을 드러내거나 인간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은 이렇게 부족하고 허물 투성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을 제시해 줍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의 죄도, 모세의 죄도, 다윗의 죄도, 베드로의 죄도 그대로 기록해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하나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계시합니다. 구약에서 양의 피와 송아지의 피, 또는 소와 양을 번제물로 드려서 하나님 앞에 속죄함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자신을 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어떤 일을 두고,갈라지는 것을 지나치게 말하거나 낙담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하십니다. 어느 한 교파만 구원이 있고 다른 교파는 구원이 없는 것처럼 함부로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교파를 달리 해도 성경의 무오성과 초자연성을 믿고 삼위 하나님의 구속운동을 옳게 믿는다면 비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을 뿐 우리의 무슨 의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6장을 보면 바울의 선교 여행 중에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때 디모데라는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아마 그전에 디모데는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에게 헌신되어진 것 같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살펴 보는 대로 바울과 디모데는 스승과 제자이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였고, 신약교회 운동의 결정적인 두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생애가 끝나는 순간까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 대한 애틋한 정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후계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믿음의 아들이요,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바울의 마음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 놨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 했을 뿐 아니라 로마의,

옥중에서 겨울이 오기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바울과 디모데와의 관계는 독특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 디모데의 어머니는 복음을 믿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헬라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의 피속에는 히브리즘과 헬레니즘이 동시에 흐르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바울과 유사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울도 철저한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유대주의적인,훈련을 받았으면서도 헬라문화권에서 공기를 호흡하고 헬라 문화에 익숙했고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예비하시고 택한 종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기 때문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공통분모를 가진 두 사람을 선택해서 세계 선교를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간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1:14절 이하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智慧)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救援)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벽을 허물고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되어야 하며 누구든지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로 택한 것입니다. 복음의 세계화를 위하여 혼혈족인 디모데를 택한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나 중국에 이중 언어를 하는 조선족 또는 고려인들이 없었다면 어찌 러시아 선교가 가능하며 중국 선교가 가능하겠습니까? 모두가 다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는 듯 합니다. 특히 유럽과 미국 등에는 많은 한국 고아들이 입양되어 갔습니다.

참으로 민족적으로 아픈 상처요 입밖에 꺼내기 싫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커서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말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문화 속에 자랐으나 마음 한구석에는 한국인이라는 것과 한국적인 열정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면 하나님께서 21세기에 위대한 복음의 역군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마도 디모데는 혼혈족에 대한 질시와 고통도 받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헬라인도 아닌 중간에 있는 아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죄악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행한 것을 가지고 도리어 복되게 하시고 약한 것을 가지고 도리어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천한 것을 가지고 도리어 존귀하게 하시며 더러운 것을 가지고,도리어 깨끗하게 하시며, 추한 것을 가지고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문제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의 처지에 낙심할 것 없습니다. 오늘의 내가 처한 환경 때문에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이 없다느니 몸이 아프다느니 하는 것은 우리의 절박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통해서 새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신 주권과 섭리를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금방 좌절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또 한가지 살펴볼 것은 성령 곧 예수의 영이 바울 일행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고 유럽으로 선교 여행을 바꾼 사실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은 전도와 선교운동에 성령의 직접적인 개입입니다. 우리가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 우리의 재주나 꾀로 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뿐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는 5절에서 교회 성장의 독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 하니라"고 했습니다. 행6:7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더니 수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믿음이 굳어지니 교회가 부흥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굳어지니란 우리말 표현은 믿음이 강해진다는 뜻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믿음이 강해져야 부흥합니다. 항상 우리는 믿음이 약하다는 것을 탄식만 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도록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교회는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람도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습니다. 교회 부흥의 원리도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나아갈 때 문제 해결이 생기고 능력을 얻으며, 성령 충만함을 받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앙에 부흥이 와야 교회의 부흥도 있습니다.

끝으로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한 여자가 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서 바울의 설교를 듣게 했습니다. 이 성경은 마음을 여는 것도,하나님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기도도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하고, 설교도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 주셔야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자기를 비우고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 붙들리는 첫 단계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첩경이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는 지금도 선택된 자들의 구원을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도 전도와 선교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부름에 응답합시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누구나 성령의 부름에 응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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