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분쟁에 대한 연구(硏究).
행15:36-41절, 256.257.258장.&
세상은 분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대부분의 분쟁은 단연코 이기적이고 사악합니다. 그러나 정당한 분쟁. 다른 의견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분쟁도 있습니다. 본문은 후자, 다시 말해 정당한 분쟁에 대한 훌륭한 연구자료가 됩니다.
1.진정한 분쟁에는 원인이 있습니다.(36-38절), 1)정당한 분쟁은 진정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일어납니다. 그 관심은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자기만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사실이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교한 교회들을 재방문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울이었고, 바나바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가기로 절정했습니다.(37절), 그들은 모두 주님의 선교에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2)정당한 분쟁은 진정한 의견차이, 주님의 선교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모으는 과정에서 의견의 차이기 나타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므로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 차이가 선교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차이는 방법에 있었습니다. 선교를 수행하는 최선의 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a.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첫째, 마가는 한때 실패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둘째, 바나바는 바울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바울의 영적 아버지요 영적 형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셰계복음화의 사명을 맡도록 은사를 주셨다고 증거했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성숙시켜 그를 사용하실 때 그에대한 모든 것을 증거하며 기뻐했습니다. 바나바는 스스로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한 결코 바울에게 반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셋째, 바나바는 이미 과거에 바울과 의견차이가 있었을 때 잘못을 범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방문하러 안디옥에 왔을 때 그는 즉시 합류했고 이방인들과 교제하며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온 유대인들 중 멸 사람이 베드로를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분쟁은 매우 심각해져 바나바까지도 영향을 받고 이방인들과 먹기를 중단했습니다. 이일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성경에는 이일이 두 번째 선교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비중을 두어 나타나 있습니다. 바나바가 정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전적으로 그의 입장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마가를 데려가는 일을 놓고 바울과 대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b.바울은 바나바와 의견이 달랐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그는 굳게 다져져야 하는 새로운 교회들에 있어 선교사역에서 이탈하였던 마가는 현편없는 본보기라 믿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일어났던 다툼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두 사람이 주님의 선교를 수행하는일에 더할 나위 없이 확고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일한 질문은 그 일을 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있어, 그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했겠습니까?
2.정당한 분쟁에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39절), 바울과 바나바의 경험에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결과들은 안타깝게도 매우 보편적인 것입니다. 1)"심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극한 고통을 느끼는 선까지 이르는 의견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툼은 보통 묘사되는 장면과는 반대로 두 사람이 모두 상처를 받았던 것같습니다. 극한 의견차이로 두 사람의 마음은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주님 앞에서 각자가 옳다고 완전하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2)서로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종종 잊려지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에게 진지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해 그런 관계를 가졌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바울이 도움이 필요했을 때, 바나바는 앞장서서 그를 도왔던 유일한 믿는 자였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영적인 형제요 아버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그의 날개 아래 품었고 다음처럼 행했습니다.
-다른 모든 믿는 자들로부터 바울을 변호하는 입장에 섰습니다.(행9:27절), -믿음과 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양육했습니다.(행11:25-26절), -하나님께서 바울의 노력을 축복하시고, 바울을 세계복음화의 최선두에 서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행13:9, 13:14-16절),
바울은 바나바에게 그토록 많은 빛을 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확실히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면, 그러한 다툼이 두 사람을 갈라 놓도록 허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바나바도 바울을 깊이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 다툼은 정당한 다툼이었으나 결과는 비극적이었습니다. 두 소중한 형제들, 그토록 주께 강력하게 헌신하고 서로를 사랑하던 두 사람은 그들의 사역에서 피차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실수를 범한 한 사람을 보여주시고 그를 용서해 주셔서 그를 계속적으로 전과 동일하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었습니다.
3.정당한 분쟁의 긍정적인 결과는 하나님께서 통제하신다는 것입니다.(39-41절),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분쟁을 통제하실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가 정당한 의견차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기적이거나 숨겨진, 부패한 동기들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1)선교사역에서 이탈했던 마가는 복귀하여 사역에 온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2)새로운 제자이자 훌륭한 사역자인 실라가 탄생했습니다. 3)이제 두 선교팀이 파송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마가는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로 갔습니다.(행15:41절),
행15:36-41절, 256.257.258장.&
세상은 분쟁으로 가득 차 있으며 대부분의 분쟁은 단연코 이기적이고 사악합니다. 그러나 정당한 분쟁. 다른 의견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분쟁도 있습니다. 본문은 후자, 다시 말해 정당한 분쟁에 대한 훌륭한 연구자료가 됩니다.
1.진정한 분쟁에는 원인이 있습니다.(36-38절), 1)정당한 분쟁은 진정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일어납니다. 그 관심은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자기만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사실이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교한 교회들을 재방문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울이었고, 바나바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그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가기로 절정했습니다.(37절), 그들은 모두 주님의 선교에 진정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2)정당한 분쟁은 진정한 의견차이, 주님의 선교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모으는 과정에서 의견의 차이기 나타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므로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 차이가 선교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차이는 방법에 있었습니다. 선교를 수행하는 최선의 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a.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첫째, 마가는 한때 실패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둘째, 바나바는 바울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바울의 영적 아버지요 영적 형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셰계복음화의 사명을 맡도록 은사를 주셨다고 증거했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성숙시켜 그를 사용하실 때 그에대한 모든 것을 증거하며 기뻐했습니다. 바나바는 스스로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한 결코 바울에게 반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셋째, 바나바는 이미 과거에 바울과 의견차이가 있었을 때 잘못을 범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방문하러 안디옥에 왔을 때 그는 즉시 합류했고 이방인들과 교제하며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온 유대인들 중 멸 사람이 베드로를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분쟁은 매우 심각해져 바나바까지도 영향을 받고 이방인들과 먹기를 중단했습니다. 이일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성경에는 이일이 두 번째 선교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비중을 두어 나타나 있습니다. 바나바가 정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전적으로 그의 입장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면 그는 마가를 데려가는 일을 놓고 바울과 대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b.바울은 바나바와 의견이 달랐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그는 굳게 다져져야 하는 새로운 교회들에 있어 선교사역에서 이탈하였던 마가는 현편없는 본보기라 믿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일어났던 다툼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두 사람이 주님의 선교를 수행하는일에 더할 나위 없이 확고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일한 질문은 그 일을 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있어, 그 일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했겠습니까?
2.정당한 분쟁에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39절), 바울과 바나바의 경험에서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결과들은 안타깝게도 매우 보편적인 것입니다. 1)"심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극한 고통을 느끼는 선까지 이르는 의견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툼은 보통 묘사되는 장면과는 반대로 두 사람이 모두 상처를 받았던 것같습니다. 극한 의견차이로 두 사람의 마음은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주님 앞에서 각자가 옳다고 완전하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2)서로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종종 잊려지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존경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에게 진지했던 것처럼 서로에 대해 그런 관계를 가졌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바울이 도움이 필요했을 때, 바나바는 앞장서서 그를 도왔던 유일한 믿는 자였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영적인 형제요 아버지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그의 날개 아래 품었고 다음처럼 행했습니다.
-다른 모든 믿는 자들로부터 바울을 변호하는 입장에 섰습니다.(행9:27절), -믿음과 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양육했습니다.(행11:25-26절), -하나님께서 바울의 노력을 축복하시고, 바울을 세계복음화의 최선두에 서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행13:9, 13:14-16절),
바울은 바나바에게 그토록 많은 빛을 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확실히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면, 그러한 다툼이 두 사람을 갈라 놓도록 허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바나바도 바울을 깊이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 다툼은 정당한 다툼이었으나 결과는 비극적이었습니다. 두 소중한 형제들, 그토록 주께 강력하게 헌신하고 서로를 사랑하던 두 사람은 그들의 사역에서 피차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실수를 범한 한 사람을 보여주시고 그를 용서해 주셔서 그를 계속적으로 전과 동일하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었습니다.
3.정당한 분쟁의 긍정적인 결과는 하나님께서 통제하신다는 것입니다.(39-41절),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분쟁을 통제하실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가 정당한 의견차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기적이거나 숨겨진, 부패한 동기들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했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1)선교사역에서 이탈했던 마가는 복귀하여 사역에 온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2)새로운 제자이자 훌륭한 사역자인 실라가 탄생했습니다. 3)이제 두 선교팀이 파송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마가는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로 갔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바울의 고향인 길리기아로 갔습니다.(행15:41절),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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