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행12:1-25절. 200.383.401장.*
교회가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도 주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행12:11절에 베드로는 자신의 사형 직전에 하나님의 기적의 권능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야 알겠다는 감격과 확신의 고백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계시의 깊은 뜻을 깨닫고 우리의 구체적 신앙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선 사도행전 12장은 참 독특한 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운동(福音運動)은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敎會)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여기서부터는 안디옥 교회가 선교의 전진기지로 바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두 번 정도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위치와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중심이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교회든 한 때 부흥하지 않았던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선교의 목적으로 교회의 중심이동을 단행하셨다는 것이 성경에서 증명되고 교회사에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교회가 소아시아 지방으로 넘어가고, 이 교회의 중심이동은 유럽으로 가서 꽃을 피우고,
다시 신앙의 자유를 찾은 청교도들과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사람들이 이룩한 미국 교회에 와서 찬란한 꽃을 피워서 세계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 교회의 세속화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교회의 중심이동은 제3세계로 넘어오는 과정에 있고,
특히 우리 나라 교회는 제3세계를 지도하는 중심 교회로 우뚝 섰습니다. 그것은 20세기에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며 21세기에 주실 하나님의 위대한 요구입니다.
만약 한국 교회가 진리를 파수하는데 등한하고, 기도 말씀증거에 소홀하고 전도와 선교에 무관해 질 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촛대를 옮겨 교회의 중심이동을 단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는 이런 기회를 선히 사용해서 진리파수와 전도와 선교에 교회의 사활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이 시사하는 것은 앞으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안디옥이,선교의 중심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 앞으로 살펴볼 중요한 선교 여행들이 안디옥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사도들과 선교사들이 안디옥에서 선교 보고 대회를 가졌습니다. 안디옥은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뿐 아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한가지 경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타락하고, 죄를 용납하고, 진리를 떠나가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를 계속 용납할 때 하나님은 언제라도 촛대를 옮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의 또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17절 말씀"베드로가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는 기록으로 베드로의 역할도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역할은 끝나고 바울의 시대로 바뀌어졌습니다.
이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이제 더 이상 베드로의 역할을 기록하지 않고 이방을 위해 부름 받은 바울의 전도와 선교활동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른바 국내전도에 필요한 지도자라면 바울은 세계 선교를 위한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방문화 세계를 호흡할 줄 아는 당대의 지성인 이었고, 이중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철저히 유대적인 배경을,가지면서도 헬라, 로마의 학문과 문화에 정통했습니다. 그 바울을 하나님은 일찍이 점 찍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릇 대로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고 일하려는 사람은 만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역 곧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훈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이 본문의 깊은 내용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2장 처음부터 헤롯왕이 살벌한 박해를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본문은 세상의 정권을 등에 업고 유대인들의 지지와 표를 의식하여 교회의 핵심지도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악의 세력과 여기에 맞선 하나님의 권세(權勢)와 한판 승부(勝負)를 벌인 영적(靈的) 대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에 나타난 헤롯왕은 이른바 헤롯 아그립바 1세였습니다.
그는 요한을 목 베었던 헤롯 안디바의 조카였고,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때 유아를 학살했던 대 헤롯의 손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에서 30년 동안 지내면서 로마황제의 아들과 마음이 맞아 온갖 추한 범죄를 저지른 난봉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정치적 수단이 있어서 유대인의 관심(觀心)을 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새로운 기독교인들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악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그의 정권 연장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교회의 대표자들을 본보기로 처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정권이 교권을 억압하고 탄압했던 첫 케이스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를 이용해 먹고 지도자를 끔찍하게 살해해서 민중의 지지를 얻어 내려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행동은 주님은 절대로 용납치 않습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에 주님의 종을 대적하고 교회를 박해 했던 사람이 잘된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
헤롯은 모델 케이스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은 이 처형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헤롯은 민심을 파악하고 교회의 우두머리격인 대표자 베드로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권좌와 정치적 발판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하여 우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교회를 욕하고, 핍박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하기 위해 정치를 이용했습니다. 교권이 정권을 이용해도 안되지만, 또한 정권이 교권을 이용해도 안됩니다.
그리고 순교 당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는 별명이"우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서 외에는 단 두 곳 밖에는 언급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는 오순절 성령충만 받았을 당시의 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로서는 헤롯에게 참수형을 당해 장렬히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 흥미있는 사건 하나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기억하시겠지만 막10:35절 이하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37절에 있는 대로"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의 대답이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했을 때"할 수 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이 장면은 요한과 야고보가 주님이 정권을 잡으면 두 형제를 가장 측근에 등용해 달라는 인사 청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함을 말했고, 그 때 야고보와 요한은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할 수 있다"곧 예스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죽음은 그대로 되어서 제자들 가운데 첫번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야고보는 왜 순교하도록 버려두고 베드로는 순교(殉敎) 직전(直前)에 이적을 베풀어서 헤롯의 박해를 무산 시켰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믿기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서 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늘 믿어야 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순교하는 것도 주의 뜻 안에 있고 살아서 더 큰 일을 하는 것도 주의 뜻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를 구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이 위기를 당했을 때 주의 몸된 교회가 위기를 당했을 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재판은 속결될 전망입니다. 당시의 헤롯왕은 로마의 분봉왕이니 만큼 절대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처럼 3권 분립도 없고, 재판에서 3심 제도도 없고, 그저 말 한 마디로 사형을 집행하는 때였습니다. 베드로의 처형은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야고보처럼 참수형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살려서 주의 교회(敎會)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권적(强權的)으로 역사(役事)를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명(使命)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사명(使命)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어코라도 살리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구출(救出)하기 위해서 온 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행12:5절에 있는 대로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 기적의 역사를 바랄 때 온 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도 물론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적인 섭리로 되어진 것이지만 먼저 기도로 준비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개인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나 사업에 대한 것이나, 교회의 일이나를 막론하고 항상 합심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일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던 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로 준비함으로서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성도들의 기도 소리와 헤롯의 음흉한 계획 사이에 영적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갈멜산상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기 도를 세심하게 들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의 쇠사슬이 풀어졌고, 옥에서 이끌어 냈습니다.
겹겹이 쌓인 경비망을 뚫고 쇠사슬이 벗어지고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옥문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베드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고 환상을 보는 줄 알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11절에서"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도록 하신 것을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제야 알겠다! 그것이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세력이 있고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있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일, 지금 되어지는 일을 당장 몰랐다고 해도 이제야 알겠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면서 감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헤롯은 충이 먹어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헤롯은 칼로 주의 종을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보이지 않는 세균으로 죽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주의 종을 박해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나 기도의 사람, 사명이 있는 자는 살립니다. 핍박이 끝나고 교회는 말씀으로 부흥해 나갔습니다.
이 본문의 줄거리는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외부의 핍박이 있을 때 교회는 더욱 단결력이 생기고 믿음위에 군게섭니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입니다. 교회가 환란을 당하고 시험에 드는 경우는 작은 죄가 누룩처럼번져서 교회를 혼란하게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자복하고 말씀중심으로 바로 서야합니다. 바른 복음이 전파되어야하고 온 성도가 합심으로 기도할 때 교회는 든든해 가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도의 가정과 직장에 복을 내려줍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고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본 교회 중심으로 담임 목사님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송이꿀 보다 더 단 말씀으로 받아 아멘. 하고 화답할 때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산업을 책임져 주시고 영광은 하니님 아버지께서 받으십니다. 할렐루야!
행12:1-25절. 200.383.401장.*
교회가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도 주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지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 행12:11절에 베드로는 자신의 사형 직전에 하나님의 기적의 권능이 개입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야 알겠다는 감격과 확신의 고백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계시의 깊은 뜻을 깨닫고 우리의 구체적 신앙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선 사도행전 12장은 참 독특한 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운동(福音運動)은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敎會)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여기서부터는 안디옥 교회가 선교의 전진기지로 바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두 번 정도의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위치와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중심이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교회든 한 때 부흥하지 않았던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선교의 목적으로 교회의 중심이동을 단행하셨다는 것이 성경에서 증명되고 교회사에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중심의 교회가 소아시아 지방으로 넘어가고, 이 교회의 중심이동은 유럽으로 가서 꽃을 피우고,
다시 신앙의 자유를 찾은 청교도들과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사람들이 이룩한 미국 교회에 와서 찬란한 꽃을 피워서 세계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미국 교회의 세속화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교회의 중심이동은 제3세계로 넘어오는 과정에 있고,
특히 우리 나라 교회는 제3세계를 지도하는 중심 교회로 우뚝 섰습니다. 그것은 20세기에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며 21세기에 주실 하나님의 위대한 요구입니다.
만약 한국 교회가 진리를 파수하는데 등한하고, 기도 말씀증거에 소홀하고 전도와 선교에 무관해 질 때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촛대를 옮겨 교회의 중심이동을 단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는 이런 기회를 선히 사용해서 진리파수와 전도와 선교에 교회의 사활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이 시사하는 것은 앞으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안디옥이,선교의 중심이 될 것을 말씀합니다. 앞으로 살펴볼 중요한 선교 여행들이 안디옥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사도들과 선교사들이 안디옥에서 선교 보고 대회를 가졌습니다. 안디옥은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뿐 아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한가지 경고 하는 것은 우리가 타락하고, 죄를 용납하고, 진리를 떠나가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를 계속 용납할 때 하나님은 언제라도 촛대를 옮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의 또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17절 말씀"베드로가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는 기록으로 베드로의 역할도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역할은 끝나고 바울의 시대로 바뀌어졌습니다.
이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이제 더 이상 베드로의 역할을 기록하지 않고 이방을 위해 부름 받은 바울의 전도와 선교활동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른바 국내전도에 필요한 지도자라면 바울은 세계 선교를 위한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방문화 세계를 호흡할 줄 아는 당대의 지성인 이었고, 이중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철저히 유대적인 배경을,가지면서도 헬라, 로마의 학문과 문화에 정통했습니다. 그 바울을 하나님은 일찍이 점 찍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릇 대로 사람을 쓰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고 일하려는 사람은 만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역 곧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훈련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이 본문의 깊은 내용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2장 처음부터 헤롯왕이 살벌한 박해를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본문은 세상의 정권을 등에 업고 유대인들의 지지와 표를 의식하여 교회의 핵심지도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악의 세력과 여기에 맞선 하나님의 권세(權勢)와 한판 승부(勝負)를 벌인 영적(靈的) 대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본문에 나타난 헤롯왕은 이른바 헤롯 아그립바 1세였습니다.
그는 요한을 목 베었던 헤롯 안디바의 조카였고, 예수님이 탄생하였을 때 유아를 학살했던 대 헤롯의 손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로마에서 30년 동안 지내면서 로마황제의 아들과 마음이 맞아 온갖 추한 범죄를 저지른 난봉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정치적 수단이 있어서 유대인의 관심(觀心)을 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새로운 기독교인들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악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그의 정권 연장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교회의 대표자들을 본보기로 처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정권이 교권을 억압하고 탄압했던 첫 케이스로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를 이용해 먹고 지도자를 끔찍하게 살해해서 민중의 지지를 얻어 내려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행동은 주님은 절대로 용납치 않습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에 주님의 종을 대적하고 교회를 박해 했던 사람이 잘된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
헤롯은 모델 케이스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은 이 처형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헤롯은 민심을 파악하고 교회의 우두머리격인 대표자 베드로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헤롯은 자기의 권좌와 정치적 발판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하여 우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교회를 욕하고, 핍박하고, 무자비하게 살해하기 위해 정치를 이용했습니다. 교권이 정권을 이용해도 안되지만, 또한 정권이 교권을 이용해도 안됩니다.
그리고 순교 당한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는 별명이"우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서 외에는 단 두 곳 밖에는 언급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는 오순절 성령충만 받았을 당시의 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제자로서는 헤롯에게 참수형을 당해 장렬히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참 흥미있는 사건 하나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잘 기억하시겠지만 막10:35절 이하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37절에 있는 대로"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의 대답이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했을 때"할 수 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이 장면은 요한과 야고보가 주님이 정권을 잡으면 두 형제를 가장 측근에 등용해 달라는 인사 청탁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함을 말했고, 그 때 야고보와 요한은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할 수 있다"곧 예스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죽음은 그대로 되어서 제자들 가운데 첫번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야고보는 왜 순교하도록 버려두고 베드로는 순교(殉敎) 직전(直前)에 이적을 베풀어서 헤롯의 박해를 무산 시켰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확실히 믿기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서 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늘 믿어야 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순교하는 것도 주의 뜻 안에 있고 살아서 더 큰 일을 하는 것도 주의 뜻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를 구출하기 위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이 위기를 당했을 때 주의 몸된 교회가 위기를 당했을 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재판은 속결될 전망입니다. 당시의 헤롯왕은 로마의 분봉왕이니 만큼 절대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처럼 3권 분립도 없고, 재판에서 3심 제도도 없고, 그저 말 한 마디로 사형을 집행하는 때였습니다. 베드로의 처형은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면 야고보처럼 참수형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살려서 주의 교회(敎會)를 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권적(强權的)으로 역사(役事)를 일으켰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명(使命)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사명(使命)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어코라도 살리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구출(救出)하기 위해서 온 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도록 했습니다.
행12:5절에 있는 대로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 기적의 역사를 바랄 때 온 교회가 합심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도 물론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적인 섭리로 되어진 것이지만 먼저 기도로 준비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개인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나 사업에 대한 것이나, 교회의 일이나를 막론하고 항상 합심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일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던 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로 준비함으로서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성도들의 기도 소리와 헤롯의 음흉한 계획 사이에 영적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갈멜산상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기 도를 세심하게 들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의 쇠사슬이 풀어졌고, 옥에서 이끌어 냈습니다.
겹겹이 쌓인 경비망을 뚫고 쇠사슬이 벗어지고 천사의 손에 이끌리어 옥문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베드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고 환상을 보는 줄 알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11절에서"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도록 하신 것을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제야 알겠다! 그것이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세력이 있고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있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일, 지금 되어지는 일을 당장 몰랐다고 해도 이제야 알겠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면서 감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한 헤롯은 충이 먹어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헤롯은 칼로 주의 종을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보이지 않는 세균으로 죽였습니다. 교회를 박해하고 주의 종을 박해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하나 기도의 사람, 사명이 있는 자는 살립니다. 핍박이 끝나고 교회는 말씀으로 부흥해 나갔습니다.
이 본문의 줄거리는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외부의 핍박이 있을 때 교회는 더욱 단결력이 생기고 믿음위에 군게섭니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입니다. 교회가 환란을 당하고 시험에 드는 경우는 작은 죄가 누룩처럼번져서 교회를 혼란하게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자복하고 말씀중심으로 바로 서야합니다. 바른 복음이 전파되어야하고 온 성도가 합심으로 기도할 때 교회는 든든해 가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도의 가정과 직장에 복을 내려줍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하고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에 실패한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본 교회 중심으로 담임 목사님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송이꿀 보다 더 단 말씀으로 받아 아멘. 하고 화답할 때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산업을 책임져 주시고 영광은 하니님 아버지께서 받으십니다. 할렐루야!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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