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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심.(행11:1-18절),

대산지기 2007. 2. 8. 10:34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심.
행11:1-18절, 253.263.308장*

회개는 새로운 생명을 낳습니다. 회개 없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회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민족, 어떤 계층,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지 간에 회개하면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 하셨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는 비결입니다. 회개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회개는 완전히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도록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회개를 전제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결같이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날마다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날마다 하나님을 떠나고,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날마다 미워하고, 날마다 교만하고, 날마다 말씀에서 떠나기 때문입니다.

회개없이 예수 믿는 것은 교만 중의 교만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회개를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천국(天國)은 도덕적(道德的)으로 깨끗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니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회개한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회개의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회개는 죄의 경중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작은 죄도 회개함으로 용서를 받지만,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죄악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용서(容恕)함을 받습니다.

회개한 사람에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있고 회개할 줄 아는 사람에게 마음의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개인을 들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회개하는 민족을 통해서 세계사를 움직입니다. 우리는 사실 하루에도 열백 번씩 더 넘어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결론은 바로 이방인도 회개하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이 성경의 골격입니다. 18절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결론과 이런 신앙고백이 나오기까지는 실로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초대교회에서 베드로 사도에게 계시하신 사건을 통하여 이방인도,회개하면 구원의 생명을 얻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아무 구별이 없음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면 이 본문의 전후 관계를 잘 살피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생각해 볼 것은 지난 단락에 설교한 대로 고넬료의 가정집회 때 베드로의 힘있는 복음적 설교가 있었고 설교가 다 끝나기도 전에 성령 충만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또한 물 세례를 받음으로서 입교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11장 처음에 보면 고넬료 가정의 집회 중에 일어난 사건을 들은 유대에 있는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이 이방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때마침 베드로와 그 일이 있은 후에 예루살렘에 상경했더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성토 했습니다. 우선 그들이 들고 나온 것은 베드로가 사도인 주제에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먹고 마셨는가를 가지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 본문에 대한 해설이 필요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먹지 말라는 것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랍비들의 유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힐난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전통(傳統)과 습관(習慣)에 의한 것이므로 가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유대인 우월주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이 정도가 지나쳐서 이방인을 멸시하고 천대하면서 자기들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유대인들의 크나 큰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유대인과 이방인(異邦人)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없게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들의 민족적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공격하고 힐난하고 비꼬며 책망했을 때, 베드로는 이상하리 만큼 침착했습니다. 그의 성격으로 보면 비난의 말을 들었을 때에 흥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비난에 아랑곳 없이 겸손하게 최초의 사건을 조리 있게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분명한 체험과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본래 성격이 거칠고 나서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즉흥적이고 다혈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쉽게 흥분하고 대어드는 그런 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체험한 것이 너무나 진실되고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처음에는 이방인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듣고 깨달은 후부터는 그의 세계관도 변하고 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태도도 변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연히 겸손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모를 때는 공연히 덤비고 자기를 자랑하며 흥분하고 교만하지만, 진리를 깨닫고 보면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자기의 부족을 알고 겸손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고넬료를 만나게 됐는지의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 자신도 이방인에 대해서 악감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것을 믿게 됐다는 설명을 잘 했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비몽사몽 간에 보게된 환상 내용이 그의 고넬료 방문을 목표하여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 환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중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했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말씀하기를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명령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집회를 갖고 설교했을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음을 설명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사건을 요점적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잠잠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방인 선교에 대한 놀라운 새로운 사실을 베드로를 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방인 선교에 사상적 일치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사역이었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복음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람들도 우리만 예수 잘 믿고 우리만 축복받고 우리만 은혜받고 잘 살면 되지 구태여 남의 나라까지 선교사를 보낼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며 선교하지 않는 신앙도 죽은 신자입니다. 국내전도나 해외선교나 그 가치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전도와 선교에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내 생명이 사는 길이며, 나의 신앙이 자라는 방법입니다. 또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세계화는 성령의 명령입니다.

복음을 이방 세계에 증거하는 것은 곧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길입니다. 복음을 이방세계에 증거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입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이며, 선교할 줄 아는 성도는 영육간에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만을 위해서 사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건강주시고 물질을 주신 것은 주님의 복음증거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 가진 물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 뿐이고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증거한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심지어는 부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아서 선교비에 보탠 것도 있고 어린 아이들이 신문을 팔아서 선교비로 보낸 것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일본이 경제대국 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나눌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나라 교회는 21세기에 선교대국이 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 중에 2위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교단의 중심교회로서 선교하는 모범적 교회이기를 소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뜻올 이루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의 본문 결론 부분으로 가보겠습니다. 17절에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선물이란 성령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했을 뿐이었는데 놀라온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도 예수의 복음을 믿고 기도하면서 순종할 때 성령의 선물을 받았던 것처럼 이방인도 똑같이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는 깨달음입니다.
성령의 선물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차별이 없듯이 미국사람도, 한국사람도,

필리핀사람도, 중국사람도, 일본사람도, 러시아사람도, 아프리카사람도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을 때 변해 버립니다. 앞으로 북대서양을 축으로 하는 기독교 운동은 퇴조하리라고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21세기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가 새로운 기독교, 운동의 축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때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의 지도국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옳게 믿는다면 하나님은 분명코 한국교회를 크게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오늘의 한국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도 결국은 이방인 선교를 위한 준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17절 중반에 보면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고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옳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울 수 없듯이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와 사랑과 주권을 아무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주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야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부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기어코라도 은혜주시고야 맙니다. 우리가 공연히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고 말 한다든지, 어느 민족은 되고 어느 민족은 안 된다든지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닫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의 고백도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진실한 고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당신의 원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겸손과 순종과 감사와 확신이 있을 뿐입니다. 이 본문에 있는 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믿게 된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본문의 결론 대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8절)라는 말씀도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민족이나 피부색깔이나, 직업(職業)이나, 교육(敎育)정도나, 재산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얻는 회개를 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영원(永遠)한 생명(生命)을 얻으려는 자는 바로 회개(悔改)하는 사람입니다. 회개는 어느 민족, 어느 계층, 어느 피부색깔, 어느 인생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영원히 멸망의 자식이요,

지은 죄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나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라고 회개하는 자에게 놀라운 은혜와 평강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신앙의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입니다. 회개하면 유쾌하게 되고, 회개하면 새로운 영을 주시고, 회개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 회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그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서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야하는 것이, 먼저 믿은 저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기적은 죽을 병에 걸렸다가 치유 받은 것이 기적이 아니고 자연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기적을 목격하고 싶으시면 입술을 벌여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쁨으로 복음(福音)을 증거하여, 하나님 나라가 넓혀지며 든든히 서 갈 수 있도록 하는데 귀한 도구로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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