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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復活)의 필연적(必然的) 사실을 증거.(요11:25,26절),

대산지기 2008. 3. 19. 13:22
                             부활(復活)의 필연적(必然的) 사실을 증거.

                                            요11;25,26절,155.157.159장.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통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축복이 임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일들의 발생하는 원인과 귀결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인과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발생의 원인이나 필요성 없이 발생되는 불연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둘째, 발행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아도 그만인 개연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셋째, 발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원과 결과가 일치되는 필연성의 법칙이 그것입니다.


  부활신앙에도 이 세 가지 법칙들이 적용되어서 돌연변이적인 불연 적 부활 신앙, 또는 확실치 않은 개연적 부활 신앙들이 여러 종교적 신앙들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네가 이 필연적 부활의 사실을 믿느냐?” 부활 주일을 맞이하면서 왜 주님께서 필연적으로 부활하셔야 했는지, 필연적인 부활의 특수성과 그 의미 및 교훈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유사 종교의 부활 신앙들입니다. 고전15:17-19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1)불연(不然)적(的) 부활(復活) 신앙(信仰)들입니다. 타(他)종교(宗敎)들 내에도 내세와 부활에 대한 신앙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불교에도 극락 사상이 있고, 유교에도 내세관이 있으며, 이슬람교에도 낙원사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교주인 석가모니의 무덤이 인도의 살수 서안에, 유교 교주인 공자의 묘가 중국 산동 성 창평현에, 그리고 이슬람 교주 마호메트의 시신은 아라비아 메카 성에 안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오직 예수님의 무덤만이 빈 무덤이요 사망의 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사실을 증명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같이 주님의 부활(復活)은 우연적(偶然的) 요소(要所)에 의해서 발생(發生)한 불연(不然)적(的) 부활(復活)이 아닙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 성취된, 반드시 부활하셔야 했던 필연적인 부활의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2)개연적(蓋然的) 부활(復活)신앙(信仰)들 입니다. 발생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발생의 필요성을 요구하지는 않는 개연적 부활 사건들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죽음의 진단을 받았으나 되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聖經)에도 엘리사가 살려 내었던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32-35), 베드로가 살려낸 다비다라 하는 도르가(행9:36-40)가 있습니다. 바울도 유두고라 하는 청년을 되살려 냈고, 주님께서도 야이로의 딸과(막5:35-43),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2-15), 그리고 죽은 나사로(요1:39)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 부활했을지라도 그들은 또 다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으며 영생을 소유한 참 부활의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이같이 발생할 수도 있는 그러나 필연적이지 않은 개연적 부활과는 달리 주님의 부활(復活)은 필연적(必然的) 사건(事件)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 헛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뿐이면 그리스도의 필연적(必然的)인 부활 사건은 불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를 깨치신 주님의 부활은 영생을 얻고자 하는 신앙인들에게는 없어서 안 될 필연적인 사건(事件)입니다.


2.필연적 부활의 사실입니다. 고전15:20,21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라고 했습니다.


  1)예언된 말씀의 진실성을 입증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눅24:7). “살 것이다”란 말은 불연 적 또는 개연적인 가능성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반드시 “살아야 하리라”란 필연적인 예언의 성취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므로 식언치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예언된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고전15:3) 나셨습니다. 다른 종교의 교주들과 마찬가질 예수님의 시신이 웅장한 비석이,


  세워진 무덤이나 아름다운 사원 속에 안치되었다면 혹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사기꾼이요, 거짓말쟁이로 전락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연적인 주님의 부활은 잠자는 들의 첫 열매가 되는 부활이었습니다.


  하나의 가설(假設)이나 논리(論理)가 아닌 목격자(目擊者)들의 체험적(體驗的) 증거(證據)에 근거(根據)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로서 제자들이 직접 귀로 듣고 눈으로 확인한 필연적인 부활의 사건이었습니다.


  2)영원(永遠)한 부활(復活)이 있음을 입증(立證)합니다. 주님을 믿는 목적이 꼭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성공하여 행복하기만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종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 신앙으로 사는 성도는


  때로 수욕(受欲)과 핍박(逼迫)당하는 것과 순교하는 것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신앙 속에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현세주의 자였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에 대한 믿음도 소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 아홉은 영원한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었기에 이생의 치유와 회복에만 만족한 채 각기 제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復活)이요 생명(生命)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永遠)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고 말씀하셨습니다.


3.영원한 삶으로의 부활입니다. 고전15:22,23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했습니다.


  1)옛 것에 대해 죽음입니다. 굳게 닫혀 있던 무덤 문을 여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필연적 사실로서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의 이김을 주사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주님의 사역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슬픈 날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날이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死亡)의 권세가 이 땅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필연적 부활의 사건은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기쁜 날을 선사해 줍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무덤의,


  문을 열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을 장사지내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秘密)입니다. 간혹 현실이 어둡다고 신앙(信仰)을 저버리는 이들을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필연적인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 어둠의 현실은 물러가고 부활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절망적인 옛 것을 장사지내고 소망이 넘치는 필연적인 부활(復活)사건(事件)에 함께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2)새로운 삶이 전개됩니다. 주님은 부활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 주님의 삶을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의심하던 도마에게는 손과 발을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눅24:39절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모든 문들이 닫힌 상황에서 열한 사도가 모여 있을 때 주님이 그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요20:26절에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弟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門)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平康)이 있을 찌어다. 하시고.”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나셨는데 그것을 본 사람 중 태반은 아직도 살아있다고 증거 함으로 부활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전15: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했습니다.


 부활 이후 주목할 만한 것은 주님이 인간과 같이 시공간의 제제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적인 한계성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스러운 변화는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하며(빌3:21) 다시 죽지 않을 것입니다.


  눅20:36절에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인간 세상과 같지 않으며 영적 존재로서 놀라운 삶을 영위해 나갈 것입니다.


4.말씀을 정리합니다. 필연적인 사실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필코 성취됨을 증거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님의 부활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필연적인 부활의 사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설명해 줍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11: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주님의 부활에 동참할 수 있으나 믿지 못하는 자는 주님 부활 내 부활이라고 담대하게 증거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부활신앙을 소유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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