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치 못할 일이 없다
창17:1-8절, 102.492.493장&
사도신경의 첫 마디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합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신앙의 기본적인 골격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고백의 첫 번째에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우리의 믿음이 항상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답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때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낙심과 좌절이 많은 이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소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확신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자녀를 약속 받았으나 4반세기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 마음 가운데 한없는 낙심과 좌절 속에 빠져 있는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브라함에게 언약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 하였고 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즉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표로서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모든 종들에게까지 할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됐다는 표징이자 성별의 증거이며 육체의 성결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17장의 줄거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전체를 살피면서 큰 뜻 몇 가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1절에 나타난 말씀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내년은 100세를 바라보고 아내 사래는 90세가 됩니다.
25년 전에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는 순종의 걸음으로 떠났었고 그때만 해도 가슴이 부풀고 희망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한해 두 해 세월은 흐르고 이제 몸은 늙어 노쇄해 버렸고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황혼이 깃들어 언제 죽을런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내 사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믿고 남편을 따라 나섰던 지난 25년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13년 전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의 권고로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가정 불화가 생기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노년에 얻은 아들이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대를 이을 자는 이스마엘이 아니고 사래의 몸에서 난 자라야 된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25년을 기다렸건만 지금껏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임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사래나 이제 모든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을 보면 하갈의 사건이후 13년 동안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가정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가정불화가 있은 후 13년 동안 은 적어도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흔히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나 그는 신앙의 기복이 많았습니다.
한동안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영적인 잠을 자고 있었던 기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한 때 믿음이 좋아서 펄펄 나는 듯 하나 우리 가운데도 오랜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더디 믿고 자기 자신의 꾀와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해보려다가 가정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과 멀어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반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21:3절에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늘 우리 쪽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우리가 불순종하기 때문이요, 우리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T.V가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면 T.V의 고장이지 방송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원이 끊어졌거나 고장이 났으면 그것을 고쳐야만 합니다. 곧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연약과 부족과 죄를 바라보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낙심하고 좌절해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보다 더 큰 확신과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요 구속주인 동시에 전능하신 분임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 데서 생깁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에게 25년을 기다리게 한 것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훈련기간이었습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성경의 구조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요구합니다. 불가능을 믿도록 함으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무자한 사래를 부르시고 자녀를 약속했을 때부터 핵심은 불가능한 것을 믿음으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99세에 찾아오신 것은 아브라함이 영육간의 한계선상에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한계선상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이 누구 시며 믿음이 무엇임을 보여 주십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그것입니다. 구원의주, 창조의주, 전능(全能)하신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이 택한 자들을 구원(救援)하시는가를 기록하신 것이 성경(聖經)입니다.
그것이 신.구약 66권을 통해서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넘어지고 실패하고 인생은 모두가 하나님을 배신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찾아오시고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함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해서 모든 사건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지키신 것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지키신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신약에서 왜 예수님은 물위로 걸으시며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선포입니다.
어째서 예수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거지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했습니까? 어째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예수님 자신이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까? 모두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란 선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빌4:13절), 전능하신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현재는 경제 불황으로 잔뜩 움츠려 들고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져야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불 신앙은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게 합니다. 그러면 더욱 꼬이고 더욱 문제가 복잡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문제해결의 열쇠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문제를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심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한대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 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 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29-31절),
완전히 낙심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순결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창17:1절), 는 말씀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는 것은 의식적인 것만이 아니라 삶이 성결해야 함을 포함합니다.
세례 받고 직분 받고 겨우겨우 교인의 의무를 행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도록 힘써야합니다. 본문에서 완전 하라는 말은 범죄 후에 다시는 범죄 치 말며 믿음, 사랑, 순종에 있어서 완전 하라는 말입니다.
오늘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능력과 힘과 용기와 확신을 갖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땅에서 여호와의 닛시의 승리의 깃발로 승리하는 복된 삶이 전개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17:1-8절, 102.492.493장&
사도신경의 첫 마디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합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신앙의 기본적인 골격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고백의 첫 번째에 나오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우리의 믿음이 항상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답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때에,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고 낙심과 좌절이 많은 이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소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확신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자녀를 약속 받았으나 4반세기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 마음 가운데 한없는 낙심과 좌절 속에 빠져 있는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브라함에게 언약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 하였고 사래는 사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즉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표로서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모든 종들에게까지 할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이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됐다는 표징이자 성별의 증거이며 육체의 성결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이름을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17장의 줄거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전체를 살피면서 큰 뜻 몇 가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1절에 나타난 말씀을 주목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내년은 100세를 바라보고 아내 사래는 90세가 됩니다.
25년 전에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는 순종의 걸음으로 떠났었고 그때만 해도 가슴이 부풀고 희망에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한해 두 해 세월은 흐르고 이제 몸은 늙어 노쇄해 버렸고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황혼이 깃들어 언제 죽을런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내 사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믿고 남편을 따라 나섰던 지난 25년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13년 전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의 권고로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가정 불화가 생기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노년에 얻은 아들이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대를 이을 자는 이스마엘이 아니고 사래의 몸에서 난 자라야 된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25년을 기다렸건만 지금껏 하나님께서는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임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사래나 이제 모든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을 보면 하갈의 사건이후 13년 동안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가정문제를 해결하려다가 가정불화가 있은 후 13년 동안 은 적어도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흔히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나 그는 신앙의 기복이 많았습니다.
한동안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영적인 잠을 자고 있었던 기간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한 때 믿음이 좋아서 펄펄 나는 듯 하나 우리 가운데도 오랜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더디 믿고 자기 자신의 꾀와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해보려다가 가정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하나님과 멀어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기간 동안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반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21:3절에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늘 우리 쪽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요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요,
우리가 불순종하기 때문이요, 우리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T.V가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면 T.V의 고장이지 방송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원이 끊어졌거나 고장이 났으면 그것을 고쳐야만 합니다. 곧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연약과 부족과 죄를 바라보고 회개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낙심하고 좌절해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보다 더 큰 확신과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요 구속주인 동시에 전능하신 분임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 데서 생깁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부부에게 25년을 기다리게 한 것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훈련기간이었습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성경의 구조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요구합니다. 불가능을 믿도록 함으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무자한 사래를 부르시고 자녀를 약속했을 때부터 핵심은 불가능한 것을 믿음으로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99세에 찾아오신 것은 아브라함이 영육간의 한계선상에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한계선상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이 누구 시며 믿음이 무엇임을 보여 주십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그것입니다. 구원의주, 창조의주, 전능(全能)하신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이 택한 자들을 구원(救援)하시는가를 기록하신 것이 성경(聖經)입니다.
그것이 신.구약 66권을 통해서 일관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넘어지고 실패하고 인생은 모두가 하나님을 배신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찾아오시고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함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해서 모든 사건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지키신 것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지키신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신약에서 왜 예수님은 물위로 걸으시며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선포입니다.
어째서 예수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거지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했습니까? 어째서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예수님 자신이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까? 모두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란 선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했습니다.(빌4:13절), 전능하신 주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현재는 경제 불황으로 잔뜩 움츠려 들고 모든 것에 자신감을 잃어 버리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세상을 이길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져야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불 신앙은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게 합니다. 그러면 더욱 꼬이고 더욱 문제가 복잡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문제해결의 열쇠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문제를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심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한대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 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질하여도 곤 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29-31절),
완전히 낙심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순결한 삶이 있어야 합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창17:1절), 는 말씀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는 것은 의식적인 것만이 아니라 삶이 성결해야 함을 포함합니다.
세례 받고 직분 받고 겨우겨우 교인의 의무를 행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도록 힘써야합니다. 본문에서 완전 하라는 말은 범죄 후에 다시는 범죄 치 말며 믿음, 사랑, 순종에 있어서 완전 하라는 말입니다.
오늘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능력과 힘과 용기와 확신을 갖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으면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땅에서 여호와의 닛시의 승리의 깃발로 승리하는 복된 삶이 전개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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