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의 신앙(信仰)
창14:17-24절, 82.276.400장*
히브리서 5:11절에 보면 ꡒ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ꡓ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기자가 멜기세덱을 설명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는 것과 그 해석이 쉽지 않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참으로 특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기세덱에 관한 성경전체의 흐름은 가히 기가 막힌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위대한 사랑과 섭리를 깨달아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창세기 14장의 배경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본문은 시날왕의 동맹군과 소돔왕의 동맹군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왕이 이 전쟁에서 패전하게 되니 소돔땅에 살던 롯도 함께 포로로 붙들려 갔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안 아브람이 불과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노략물을 뺏고 롯을 다시 찾아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헤브론 산지지역을 개척하여 목축지로 만들었고 318의 종 곧 사병을 거느린 자수성가,
자립경제의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318명이란 적은 수로 연합군을 이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명성을 얻고 존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흐름을 보면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 때문이며, 아브라함은 그 자신의 의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지만 결국 구원은 자기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축복하신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성경의 관심과 핵심은 언제나 아브라함 자신의 위대성과 승리적 삶을 다루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배후에서 구원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보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핵심은 자연히 17~24절까지 멜기세덱의 축복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멜기세덱은 그 이름의 뜻이 의의 왕이란 말입니다. 멜기세덱은 성경에 나타난 첫 제사장이며, 숨겨져 있는 신비한 인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을 소개하는 성경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한 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대표적 기록자는 세 분입니다. 모세, 다윗, 바울입니다. 이 세 분의 기록 가운데 멜기세덱은 항상 핵심에 등장합니다. 우선 멜기세덱에 대한 기사는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창14:18~20절에서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너무 갑자기 돌출한 기사이므로 멜기세덱에 대한 해석은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어째서 막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는가 함입니다. 우리 본문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ꡓ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후 다윗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는 말씀을 하면서 다시 멜기세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110편 4절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ꡓ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ꡒ너ꡓ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는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이 있은 지 또다시 1000년이 지난 후에 사도바울이 히브리서 7장에서 멜기세덱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히브리서는 유대인 독자들에게 쓰여졌기에 역사적인 맥락을 자세히 썼습니다.
멜기세덱! 그가 바로 참되고 유일한 제사장인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히브리서 7:1~3절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절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까지 본문의 흐름을 생각해본 결과 정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시는 놀랍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핀 대로 2000년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사실을 미리 내다보고 멜기세덱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나타내십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으로 그리고 우리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그가 오신지 또다시 2003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한 자들을 위해서 섭리하시며 간섭하십니다. 우리는 역사를 크게 보고 길게 보고 넓게 볼 줄 아는 시각이 열려져야 합니다.
짧게 보면 낙심(落心)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예컨대 남북분단 5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길게 보면 5000년 역사 가운데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경제 한파로 말미암아 직장도 기업도 가정도 말할 수 없는 절망과 위축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멀리, 넓게, 길게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방에 앉아서는 우리가 사는 시가지를 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밝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요즘 흔히 유행하는 말로 “책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모나리자를 보면 예술이 보입니다ꡓ등등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위기의 극복이 보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달으면 환난을 이기는 지혜가 보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문제해결이 보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의 웅장함을 깨닫습니다.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지만 감각적으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감각적으로 당장 못 느껴도 지구는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우리의 육안으로 또는 구체적 삶 가운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감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사실 하나만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 곧 의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케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시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모두가 거짓하고 불의하고 백성을 노예화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그가 죽으심으로 의를 증거하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의를 확증했습니다.
그렇다면 불의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이 온통 불의로 다 덮여 궁극적으로 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경제 한파가 찾아온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들입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강단이 복 받는 비결만을 가르쳤지 받은 복을 어떻게 나누는가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앙을 내면화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으나 의롭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번 기회에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는 참 평화와 안식이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짐을 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ꡓ(요14:27절)고 했습니다. 예수는 살렘왕 곧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기 때문에 얻은 평화입니다. 이사야 53:5절에 있는 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는 평화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뒤죽박죽이 되고,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극한 스트레스와 불안과 초조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평화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먼저 평화를 회복하여야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분열과 아픔이 있는 곳에 평화와 치유와 회복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도 예수 없이는 안됩니다. 가정의 평화도 단순히 엘로스적인 사랑으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평화가 옵니다. 권리주장만 한다면 무슨 평화가 오겠습니까?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제사장이란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가 왕이시라면 그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그가 죽음을 요구할 때 우리는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그는 우리를 지은 자요 그는 우리의 구주요,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시라도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우리 죄를 위해서 그 자신이 제사장이실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제물이 되어 단번에 드린 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앞에 믿음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大祭司長) 되신 이 비밀(秘密)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은혜(恩惠)이며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이 큰 은혜를 누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거부함으로 이방인인 우리에게,
먼저 복음(福音)이 증거됨으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14:17-24절, 82.276.400장*
히브리서 5:11절에 보면 ꡒ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ꡓ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기자가 멜기세덱을 설명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다는 것과 그 해석이 쉽지 않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참으로 특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기세덱에 관한 성경전체의 흐름은 가히 기가 막힌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위대한 사랑과 섭리를 깨달아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창세기 14장의 배경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본문은 시날왕의 동맹군과 소돔왕의 동맹군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돔왕이 이 전쟁에서 패전하게 되니 소돔땅에 살던 롯도 함께 포로로 붙들려 갔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안 아브람이 불과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노략물을 뺏고 롯을 다시 찾아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은 헤브론 산지지역을 개척하여 목축지로 만들었고 318의 종 곧 사병을 거느린 자수성가,
자립경제의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318명이란 적은 수로 연합군을 이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명성을 얻고 존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흐름을 보면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 때문이며, 아브라함은 그 자신의 의로 구원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지만 결국 구원은 자기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축복하신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성경의 관심과 핵심은 언제나 아브라함 자신의 위대성과 승리적 삶을 다루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의 배후에서 구원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보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장차 오실 메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핵심은 자연히 17~24절까지 멜기세덱의 축복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됩니다.
멜기세덱은 그 이름의 뜻이 의의 왕이란 말입니다. 멜기세덱은 성경에 나타난 첫 제사장이며, 숨겨져 있는 신비한 인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멜기세덱을 소개하는 성경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한 저자이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대표적 기록자는 세 분입니다. 모세, 다윗, 바울입니다. 이 세 분의 기록 가운데 멜기세덱은 항상 핵심에 등장합니다. 우선 멜기세덱에 대한 기사는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창14:18~20절에서 짧은 언급이 있습니다. 너무 갑자기 돌출한 기사이므로 멜기세덱에 대한 해석은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어째서 막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는가 함입니다. 우리 본문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ꡓ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후 다윗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는 말씀을 하면서 다시 멜기세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110편 4절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ꡓ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ꡒ너ꡓ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는 곧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이 있은 지 또다시 1000년이 지난 후에 사도바울이 히브리서 7장에서 멜기세덱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히브리서는 유대인 독자들에게 쓰여졌기에 역사적인 맥락을 자세히 썼습니다.
멜기세덱! 그가 바로 참되고 유일한 제사장인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선 히브리서 7:1~3절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절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까지 본문의 흐름을 생각해본 결과 정말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시는 놀랍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핀 대로 2000년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사실을 미리 내다보고 멜기세덱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나타내십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의의 왕이요 평화의 왕으로 그리고 우리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그가 오신지 또다시 2003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한 자들을 위해서 섭리하시며 간섭하십니다. 우리는 역사를 크게 보고 길게 보고 넓게 볼 줄 아는 시각이 열려져야 합니다.
짧게 보면 낙심(落心)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영광받으시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예컨대 남북분단 50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길게 보면 5000년 역사 가운데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알 수 없지만 무엇인가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경제 한파로 말미암아 직장도 기업도 가정도 말할 수 없는 절망과 위축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도저히 감당키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멀리, 넓게, 길게 보면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방에 앉아서는 우리가 사는 시가지를 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보면 밝히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요즘 흔히 유행하는 말로 “책을 보면 미래가 보입니다. 모나리자를 보면 예술이 보입니다ꡓ등등의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위기의 극복이 보이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달으면 환난을 이기는 지혜가 보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문제해결이 보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의 웅장함을 깨닫습니다.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자전과 공전을 하지만 감각적으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감각적으로 당장 못 느껴도 지구는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우리의 육안으로 또는 구체적 삶 가운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감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구체적인 신앙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사실 하나만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 곧 의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케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왕이시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왕들은 모두가 거짓하고 불의하고 백성을 노예화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실 뿐 아니라 그가 죽으심으로 의를 증거하고, 그가 부활하심으로 의를 확증했습니다.
그렇다면 불의한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이 온통 불의로 다 덮여 궁극적으로 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경제 한파가 찾아온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들입니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강단이 복 받는 비결만을 가르쳤지 받은 복을 어떻게 나누는가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앙을 내면화하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으나 의롭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부의 축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번 기회에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는 참 평화와 안식이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짐을 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ꡓ(요14:27절)고 했습니다. 예수는 살렘왕 곧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기 때문에 얻은 평화입니다. 이사야 53:5절에 있는 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는 평화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뒤죽박죽이 되고,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극한 스트레스와 불안과 초조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아야 평화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먼저 평화를 회복하여야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분열과 아픔이 있는 곳에 평화와 치유와 회복이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도 예수 없이는 안됩니다. 가정의 평화도 단순히 엘로스적인 사랑으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평화가 옵니다. 권리주장만 한다면 무슨 평화가 오겠습니까?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왕이시며 제사장이란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가 왕이시라면 그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그가 죽음을 요구할 때 우리는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그는 우리를 지은 자요 그는 우리의 구주요,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시라도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우리 죄를 위해서 그 자신이 제사장이실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제물이 되어 단번에 드린 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앞에 믿음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大祭司長) 되신 이 비밀(秘密)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은혜(恩惠)이며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이 큰 은혜를 누리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거부함으로 이방인인 우리에게,
먼저 복음(福音)이 증거됨으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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