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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심. (창8:13-22절)

대산지기 2008. 2. 28. 15:17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심.
창 8:13-22절, 169.383.427장.*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세속화되어서 불신자들과 통혼을 하고 온갖 성적 도덕적 타락에 걷잡을 수 없이 내던져졌을 뿐 아니라 인간의 죄악은 극에 달했고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사람들을 지상에서 다 쓸어버리려고 홍수 심판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이에게는 멸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의 흐름은 하나님의 심판과 아울러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구원이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성경의 강조점이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주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하나님이 시공하시고, 하나님이 감독하신 완전한 하나님의 작품이란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방주에 승선하는 사람들과 모든 짐승들까지 친히 하나님께서는 리스트를 작성하여 하나님의 계획 하에서 되도록 하였고 홍수의 수위를 친히 조절하시고, 결국 홍수가 끝난 후에 방주에서 하선 명령까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의 핵심은 노아의 활동이나 비둘기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며, 하나님만이 홀로 우리의 구원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하여 줍니다.

예를 들면 노아의 방주에는 키가 없었습니다. 사실 온 천하가 물바다로 변해 버린 마당에 키가 없는 배를 탔다는 것은 실로 위험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배안에 있는 사람들로는 배의 방향도 속도도 조종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그 방주는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대로 맡길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치 요나가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이다ꡓ(요나2:9절)라고 말한 대로 이 본문의 메시지도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시편 37:5-7절에 보면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로 하였습니다.

시편의 이 말씀은 방주를 탄 노아의 식구들에게 적절할 뿐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 설교자 스펄젼은 말하기를 “홍수는 악을 경고(警告)하는 하나님의 설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 사건을 읽으면서 인간의 죄악은 반드시 심판받을 날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항상 참되기 때문에, 인간의 타락과 죄악은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감추어진 것이 결국은 백일 천하에 다 드러나고 맙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전 우리에게는 양심의 심판, 역사의 심판도 물론 있습니다. 전에 있었던 불의와 부정 부패는 다음 정권에 가서 백일 천하에 드러납니다. 결국 시간이 문제이지 모든 것이 백일 천하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제가 강제징용을 했고 얼마나 처참하게 사람을 죽였는가는 어제 정부 문서보관소의 한 문건에 의해서 밝혀졌습니다. 반세기전에 되어진 일제의 만행이 문서로서 확인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잠시 검찰의 눈은 피할 수 있다고 해도 양심의 괴로움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백일 천하에 드러나고, 결국은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고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범죄했을 때 시범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심판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그 사실을 깨닫고 바로 믿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종말의 심판이 언제일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영적으로 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제 물 심판은 없으나 마지막 심판은 불심판으로 종말이 올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경고한 대로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ꡓ해야 할 것입니다(벧후3:12절). 왜냐하면 ”그 날에는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로 보도다“(벧후3:l2-13)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임할 불심판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히려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구원의 소망으로 가슴이 뛰게 될 것입니다. 다시 창세기 8장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특히 20-22절의 메시지는 인간이 하나님앞에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는 노아와 그 여덟식구들이 당했던 홍수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인간의 자기 만족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면서 죄악을 물마시고 밥먹듯하던 시대에 하나님의 물심판을 당했고 유독 노아의 여덟식구만이 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홍수는 하늘과 땅과 바다 모든 곳에서 물이 쏟아지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으로써의 홍수였습니다. 실로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자기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물 속에 처참히 수장되었고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 외에는 땅에 있는 모든 생물체는 다 없어진 것입니다.

노아와 그 식구들은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 너무나 놀랐을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그토록 하나님의 진노를 샀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죄를 저토록 미워하시는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그런 가운데서도 어찌하여 자기들만 특별히 사랑해서 구원하였는가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물에 수장된 온 인류의 죄보다 하나도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온 지구상에 자신들만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한없는 절망과 불안 초조가 그들의 가슴을 억눌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부터 했습니다. 노아는 옛날 조상들에게서 전해 내려온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하나님앞에 제단 쌓은 일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일 곧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 가르쳐준 것입니다.

더구나 소, 양, 비둘기를 번제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예배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 의로워지거나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희생의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은 그 희생의 제물을 보시고 인간과 화목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류에게 예배의 방법을, 가르쳐주신 것은 바로 장차 오실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단번에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양이나 소를 잡을 필요없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면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창세기 8장에 이미 기독교 진리의 본질과 삶의 원리가 계시 되어있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도덕적 종교나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을 주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종교요, 은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단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어야 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대로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ꡓ(창8:20)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에서는 열린예배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이 즐기는 예배를 제창하는 운동도 있습니다.

기독교는 소원성취나 욕구충족이 본질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본질이란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21절에 보면 사람의 계획하는 바가 악하기 때문에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6장에서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에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결심한 것과는 서로 반대되는 듯 합니다. 그러나 8장 21절의 말씀은 노아의 번제가 있은 후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죄는 극에 달했다고 해도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 곧 예배가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사라지고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입었습니다.

이 시대는 노아시대보다 더욱 타락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님의 구원을 감사하면서 죄와 세상을 이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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