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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 (창21-22장)

대산지기 2008. 2. 28. 15:12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
창21-22장, 197.363.509장.&

창21, 22장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찾아왔던 세 가지 시험에 대한 기록입니다. 참된 신앙은 언제나 시험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통해서만 우리가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시험은 성장과 승리의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 때에 원망할 것이 아니라 감격과 감사로 화답해 드려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1.가족에게서 온 시험입니다.(21:1-21절). 가정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가 가장 힘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그의 아버지와(11:27-32절), 조카 롯과(12-13장), 그의 아내로 말미암아(16장) 가족에게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여기서는 그의 두 아들, 즉 십대 후반이었을 이스마엘과(16:16절) 겨우 젖을 떼었을 세 살 가량의 이삭간의 갈등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 이삭의 출생은 기쁨과 웃음을 가져왔습니다.(21:6절). "이삭"이란 이름이 바로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후 오래지 않아 이스마엘이 계속 그의 동생을 핍박함으로 대립이 생겼습니다. 여기 몇 가지 귀중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1)육(肉)대 영(靈)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스마엘이 육의 자녀(16장)인 반면에, 이삭은 기적적으로 출생한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이삭이 그 가정에 나타난 것은 아브라함에게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습니다.(롬4:19-20절). 이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육과 영, 옛 본성과 새로운 성품은 언제나 대립되기 마련입니다.(갈5:16-24절).

구원은 옛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으며, 옛 본성이 향상되거나 길들여지지도 않습니다. 옛 본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사랑했고 그를 곁에 붙들어 두고 싶어했습니다.(21:11, 17:18참조).

그러나 하나님은 "내어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6장은 육신을 이기는 유일한 승리는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 곧 자신이 죽었다고 간주하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옛 본성과 영합하는 그리스도인들은(롬13:14절) 반드시 갈등과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2)옛 언약 대 새 언약입니다. 갈라디아서 4:21-31절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이스라엘과의 옛 언약과 교회와의 새 언약을 상징하는 비유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 사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하갈은 율법이라는 옛 언약의 상징으로서,

바울 시대의 지상적 예루살렘과 동일시되었으며, 사라는 은혜의 새 언약의 상징으로, 천상적 예루살렘과 동일시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으로서 태어났으며 노예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영으로 태어났으며 자유로운 여인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율법의 노예로 있는 유대인과 은혜의 자유 아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각각 상징합니다. 바울의 논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갈(옛 언약)을 내어쫓으라고 명령하신 데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이 이삭에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갈라디아서 3-4장에 기록된 바울의 논증은 이 모든 사실에 적중합니다. 3)인간의 방법 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해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갈은 16:10절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을 잊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한 심령을 갖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붙드셨으며 그가 하신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순종한다면 그는 언제나 길을 열어주실 것이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2.이웃에게서 온 시험입니다.(21:22-34절) 그리스도인들은 "외인들" 과의 관계를 주의해야 합니다.(골4:5, 살전 4:12, 딤전3:7절). 아브라함은 그의 이방인(異邦人)에게 있어서 놀라운 간증적(干證的)인 인물이었습니다. 우물을 둘러싼 갈등은 그의 이러한 인상을 파손시킬만한 것이었으나, 그는 좋은 방향으로 해결지었습니다.

그가 사무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를 분명히 확정지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고전14:40절에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이웃들은 적절한 선물을 교환하였고, 언약에 조인하기 위하여 적합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계약이 이루어진 곳을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우물은 아브라함에게 기도와 친교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웃간에 또는 사업상 직면하게 되는 시험을 그리스도인의 방법으로 치르는 것은 중요합니다.

롬12: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平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여호와로부터의 시험입니다.(22:1-24절) 사탄은 우리에게 있는 가장 나쁜 것을 나타내려고 시험(유혹)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나타내도록 돕기 위해 시험하십니다. 약1:12-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극렬한 시험은 사람들로부터 오지 않으며 주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제나 가장 큰 축복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런 방식으로 롯을 시험하치는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롯은 소돔과 세상이 그를 시험하는 낮은 수준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가장 가까이 동행하는 성도를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시험하십니다.

1)모형적 교훈입니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모형을 보여주는데, 그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독생자이십니다. 이삭과 그리스도는 둘 다 약속된 아들들이며, 둘 다 기적적으로 태어났고(물론 그리스도는 처녀의 몸에서 죄 없이 나셨습니다),

둘 다 아버지의 마음에 기쁨을 주었으며, 둘 다 정해진 때에 출생하였습니다. 또한 둘 다 그의 형제들에게 박해를 받았으며, 둘 다 죽음에 임하여 순종적이었습니다. 두 젊은이가 이삭과 동행하였으며, 그리스도는 두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삭은 나무를 지고 갔고 예수께서는 십자가(十字架)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에게 질문(質問)을 했고, 예수께서도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삭이 생명을 구하게 된 반면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한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이삭은 "죽은 것"과도 같았으며 히11:19절은 "비유로"(상징적으로) 이삭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1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돌아왔으나 이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의 모형입니다. 왜냐하면 이 후의 기록에서 이삭은 그의 신부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24:62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주시고 천국으로 돌아가셨다가 어느 날, 그의 신부인 교회를 맞이하러 오실 것입니다.

2)실천적인 교훈입니다. 진실한 신앙은 반드시 시험을 받게 마련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이삭의 생명을 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원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귀중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있는 우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싶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약속을 쟁취할 것을 신뢰하면서도 하나님은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한 것입니다.(히11:17-19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많아질 것을 약속하셨는데 이삭이 살아있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시지 않으면 이 약속은 성취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거짓말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으며 변치 않는 그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이 빛 가운데 말씀하신 것을 어두움 가운데서 의심하지 말라!"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지체없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면 적절한 때에 다음 단계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단 몇 분이라도 때늦게 오는 법이 없습니다. 꼭 필요한 때에 하나님은 수양을 공급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이곳을 "여호와 이레, 곧 주께서 틀림없이 하시리라"고 이름지었습니다. 3)예언적 교훈입니다. 이 사건은 모리아산에서 일어났으며(22:2절),

이 곳은 성전이 세워진 곳입니다.(대하 3:1절). 이삭은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하나님은 수양을 공급하셨습니다.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리스도라는 인격을 통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1:29절)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산에서 볼 것이다"라고 하였고,

그리스도는 성전에 모습을 나타내셨는데 그 다음 갈보리 산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4)교리적 교훈입니다. 야고보서 2:14-26절은 믿음과 행위 사이의 관계를 논합니다. 야고보는 그가 주장하는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사건을 실례로 제시합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순종으로 입증됩니다. 야고보서 2:21절의 정확한 번역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의로워진 것이 제단에 그의 아들을 바친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을 때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창15: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행위로나 희생을 바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생이 곧 구원받은 믿음을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롬4:1-5절에 "그런즉 육신으로 우라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빛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했습니다. 갈3:6-10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나 선행을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아버지를 믿고 신뢰함으로 믿음으로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아룀으로 응답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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