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하나님의 3대 축복(祝福), (창12:1-9절),

대산지기 2008. 2. 28. 15:10
하나님의 3대 축복(祝福)
창 12:1-9절, 221.399.492장.&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계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택하여 주시고 거져주시는 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며 살도록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엡 1:4∼6).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죄악된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범죄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인은 아벨을 살해했고, 갈수록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소망없이 되어갔습니다.

하나님은 홍수로 인생들을 멸하고 노아의 가족만 구속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도 타락한 모습을 보였고 그후에 인류는 자신들의 안전과 단합을 위해서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 대신 인간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바벨탑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케 해서 그들의 뜻을 차단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받은 자이나 그들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소망없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하시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보자인 메시아를 보내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메시아가 오기 위해서 한 사람을 택해야 했고 그 가정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구속주요 심판 주이심을 계시하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란 한 사람을 택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읽은 창세기 12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과 순종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살필 때 하나님의 행위를 강조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믿음 자체만을 강조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그런 믿음을 갖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어떤 사람의 믿음의 모본을 기초로 해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기초로 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웅장하고 위대하신 계시를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믿고 순종했는가를 본문에서 잘 살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는 우리의 구체적인 걸음걸이에 잘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상을 만드는 집의 늙은 노인을 택하여 위대한 구원의 운동을 일으키시는가를 눈 여겨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50장까지는 분명히 족장들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잘 살펴보면 족장들의 위대한 신앙의 족적을 높이 증거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족장들의 역사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하시며 섭리하시는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결국 이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도 한 사람을 구속운동의 뿌리로 삼으신 것입니다.

사실 창세기 12장에 대한 해석은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3:25, 갈 3:8,16, 롬 4:13, 히 11:8). 그러나 창세기 12장에 대한 좋은 해석은 여호수아 24:2∼3절에서 아주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모든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을 두루 행하게 하고 그 씨를 번성케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한 사람을 택하였는데 그가 곧 아브라함입니다.

우상의 집에서 불러내신 분도 하나님이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약속의 씨로서 이삭을 기적적으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8, 16절과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를 아주 명백히 해설하고 있습니다. 우선 갈라디아서 3:8절에 보면 이렇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우상의 가정에서 자란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이스라엘의 조상 곧 선민의 아비로 삼으신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포석이었음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해져서 이방인을 개처럼 취급하고 자기들을 언제나 아브라함의 자녀로서 특권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깊은 뜻과 계시를 깨닫지 못한 무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웅장하고 위대한 구속의 운동이 이방인을 위한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도구로 쓰여졌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의 특이한 지적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한 모든 것이 복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인간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창세기에서 복음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 12:1∼2)고 했습니다. 1-2절에서 3대 축복을 밝혔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그 자체가 복음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의 출신 성분은 우상 만드는 집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우상의 종교를 믿고 섬기며 생활하던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을 때는 75세였습니다. 새로 일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자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토록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운동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기적을 나타내 보이며 하나님이 자기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위대한 구속사역을 이루시는 것이 곧 복음이란 뜻입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바울 사도는 구약성경을 아주 섬세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했다는 해석은 정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창12:7절에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는 말씀에서,복수가 아니고 단수로 쓰인 것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도 아브라함 때문이 아니고 그리스도 때문인 것을 만 천하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웅장한 구속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를 너무나도 명백히 그리고 자세히 그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아침 창세기 12장을 묵상하면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우리의 죄악과 연약성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홀로 모든 구원의 계획을 하시고 진행했습니다. 중보자 그리스도를 오게 하기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역사속에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이며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면 하나님의 이 귀한 은혜에 축복을 누리면서 이 악한 시대에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구체적인 대안을 아브라함의 삶에서 발견합니다.

첫째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히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아직 구체적인 증거와 응답이 없어도 그것을 받은 것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시와 복음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성경의 계시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믿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救援)과 은혜(恩惠)를 믿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더러,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죄악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히11: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라고 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가족을 부양하고 오랫동안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 노인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무거운 명령이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기도 어렵거니와 더욱이 어디로 가야할는지 방향도 확실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인고로 즉각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순종은 귀한 것입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습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감당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성도의 생활 가운데 첫째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순종하는 것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논리적 분석이나 이해 타산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논리와, 우리의 머리와 맞지 않는 것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기적을 체험하려면 첫째도 마지막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 밖에는 달리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순종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순종하는 사람이 기적을 체험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능력을 받습니다. 셋째는 말씀을 따라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 본문에서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창12:4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초는 나의 느낌이나 나의 의견이 아닙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며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신앙수준은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감정이 중심이 되어서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편119:105절의 말씀처럼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걷는 것이 곧 신앙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넷째는 믿고 순종하는 삶은 예배를 통해서 구체화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 일 곧 예배를 우선 순위로 두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는 삶의 중심이요 삶의 최우선입니다. 예배 우선이 곧 성도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죄와 세상을 이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3대 축복을 우리도 누리고 살려면 첫째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말썸을 따라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는 믿고 순종하는 삶은 예배를 통해서 구체화 되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도 여러분! 정답은 나왔습니다. 여러분도 이와같은 믿음의 삶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을 누리며 영광돌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