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
창9:1-7절. 169.208.415장.&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인류는 노아의 여덟식구로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범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첫 아들인 가인은 그 동생을 쳐죽이는 살인을 저질렀고 홍수전까지 인류는 도덕적 성적 타락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 없는 방탕한 생활로 죄악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홍수로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결심하고 물심판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들을 방주를 통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는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제 홍수는 그치고 물이 서서히 줄어서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실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이며 라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기간동안에 많은 인류가 번성했었으나 하나님의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수장되고 요즘 말로 하면 다시 판을 짜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전후를 살피면서 묵상을 해보면,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는 홍수 심판때 구원을 받았습니다만 이 세상은 황량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문화는 모조리 망해 버렸습니다. 인간이 일구어 놓은 온갖, 산업이며 도시며 생산들은 그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덤비던 인생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홍수 심판이후에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살펴보면 홍수 심판이 얼마나 컸으며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홍수심판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들은 받은 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즐기기보다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던가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온 천지에 사람이라고는 노아의 여덟식구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인 홍수를 머리에 떠올리면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절망이 앞섰습니다. 40일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홍수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을 것입니다.
암흑속에서의 뇌성 벽력, 천둥번개 등은 공포나 두려움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 천하가 물바다로 변한 후에도 150일 약 5개월 동안 키가 없는 방주에서 지낸 것을 생각하면, 노아와 그 식구들이 받은 엄청난 충격은 가히 짐작하고 남을 것입니다.
방주에서 홍수가 끝나고 육지에 내려 하나님 앞에 첫번 제단을 쌓기는 했으나 날이 어두워도 가슴이 덜컥하고, 바람이 불어도 무서웠고, 천둥번개만 쳐도 자지러지게 놀랐을 것이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마음에 병이 든다는 말처럼 모든 것이 모조리 없어지고 망한 지구위에 다시 출발하는 시점에서 불안과 공포와 절망이 노아와 여덟식구의 앞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이 본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노아의 식구들에게 위로와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몇가지 확실한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과 같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은혜와 위로의 말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9:1절에 있는 대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새 출발하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노아의 식구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홍수 심판때에 살아남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땅을 딛고 걸을 수 있는 것도 복이려니와 다시 새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복이요,
다시 파란 하늘과 이글거리는 태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노아의 식구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완전히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다시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밑천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복을 달라고 간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은 복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을 주신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흔히 복이란 말을 쓸 때는 토지가 많고, 돈이 많고, 자녀가 많고, 명예를 얻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평생 복을 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이미 받은 바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를 깨닫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땅위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시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벌써 복받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없는 것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지금 걸어다니는 것 그 자체가 복입니다. 또 먹을 수 있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경제 불황으로 기업과 경영이 위축되고 사회적 문제가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지구상에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저소득 국가에서는 굶어죽어가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불평할 것이며 무엇을 원망할 수 있습니까? 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는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보다는 다소 불편해 진 것은 사실이나 불평(不評)해서는 안 됩니다. 숨쉬는 것도 복이요 듣는것도 복이며 보는 것도 복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육신의 먹을 것을 자세히 말씀했습니다.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 그리고 산 동물과 채소를 먹거리로 주었습니다.
이 본문을 보노라면 마치 어머니가 자녀에게 음식은 무엇 무엇을 먹으라고 일러주는 것 같은 자상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과 부족을 잘 아시고 육신의 먹을 음식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의 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와 욕구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으로 신령한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만나도 메추라기도 주셔서 저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구체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다정 다감하신 분이요 우리 인생의 깊은 곳을 참으로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는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일상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노아의 식구들에게 하나님은 생명존중과 사랑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모든 고기를 먹되 피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이며 특히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피의 대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남의 생명이 귀한 줄 알아야 되는데 그 이유는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형상(形象)대로 창조(創造)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할 자유는 주어졌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살도 죄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직접 살인도 많지만 간접 살인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환경오염, 해양오염을 시키는 것은 모두 간접 살인에 해당합니다.
자기 편하자고 자기 유익만 위해서 남이 죽건 말건. 상관없다는 생각들이 사실은 간접살인의 사고방식이란 말입니다. 본문의 기본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면서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때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다시는 홍수로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언약 곧 약속을 하시고 그 증거로서 무지개를 두었습니다. 우리는 새 출발하는 인류 곧 노아의 식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따듯한 배려를 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식구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보증(保證)을 하시고 언약을 하시면서 다시는 물로는 심판(審判)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언약(言約)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하게 새 출발하는 노아의,식구들에게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 뛰려고 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위로, 간섭, 사랑 약속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머니보다, 더 따스한 그리고 섬세한 관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심판 중에서라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 신실하신 분입니다.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9:1-7절. 169.208.415장.&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인류는 노아의 여덟식구로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범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첫 아들인 가인은 그 동생을 쳐죽이는 살인을 저질렀고 홍수전까지 인류는 도덕적 성적 타락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 없는 방탕한 생활로 죄악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홍수로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결심하고 물심판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들을 방주를 통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는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제 홍수는 그치고 물이 서서히 줄어서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는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실 노아는 아담의 10대손이며 라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기간동안에 많은 인류가 번성했었으나 하나님의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수장되고 요즘 말로 하면 다시 판을 짜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본문의 전후를 살피면서 묵상을 해보면,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는 홍수 심판때 구원을 받았습니다만 이 세상은 황량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문화는 모조리 망해 버렸습니다. 인간이 일구어 놓은 온갖, 산업이며 도시며 생산들은 그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덤비던 인생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홍수 심판이후에 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살펴보면 홍수 심판이 얼마나 컸으며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홍수심판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노아와 그의 일곱식구들은 받은 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즐기기보다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컸던가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온 천지에 사람이라고는 노아의 여덟식구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인 홍수를 머리에 떠올리면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절망이 앞섰습니다. 40일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홍수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을 것입니다.
암흑속에서의 뇌성 벽력, 천둥번개 등은 공포나 두려움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 천하가 물바다로 변한 후에도 150일 약 5개월 동안 키가 없는 방주에서 지낸 것을 생각하면, 노아와 그 식구들이 받은 엄청난 충격은 가히 짐작하고 남을 것입니다.
방주에서 홍수가 끝나고 육지에 내려 하나님 앞에 첫번 제단을 쌓기는 했으나 날이 어두워도 가슴이 덜컥하고, 바람이 불어도 무서웠고, 천둥번개만 쳐도 자지러지게 놀랐을 것이었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마음에 병이 든다는 말처럼 모든 것이 모조리 없어지고 망한 지구위에 다시 출발하는 시점에서 불안과 공포와 절망이 노아와 여덟식구의 앞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이 본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노아의 식구들에게 위로와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몇가지 확실한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과 같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은혜와 위로의 말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9:1절에 있는 대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새 출발하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노아의 식구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홍수 심판때에 살아남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땅을 딛고 걸을 수 있는 것도 복이려니와 다시 새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복이요,
다시 파란 하늘과 이글거리는 태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노아의 식구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완전히 바닥에서 다시 출발하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다시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밑천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복을 달라고 간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은 복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을 주신 하나님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흔히 복이란 말을 쓸 때는 토지가 많고, 돈이 많고, 자녀가 많고, 명예를 얻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평생 복을 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이미 받은 바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를 깨닫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예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땅위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인생들 가운데 우리와 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시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벌써 복받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없는 것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지금 걸어다니는 것 그 자체가 복입니다. 또 먹을 수 있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경제 불황으로 기업과 경영이 위축되고 사회적 문제가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지구상에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저소득 국가에서는 굶어죽어가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불평할 것이며 무엇을 원망할 수 있습니까? 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는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보다는 다소 불편해 진 것은 사실이나 불평(不評)해서는 안 됩니다. 숨쉬는 것도 복이요 듣는것도 복이며 보는 것도 복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육신의 먹을 것을 자세히 말씀했습니다.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 그리고 산 동물과 채소를 먹거리로 주었습니다.
이 본문을 보노라면 마치 어머니가 자녀에게 음식은 무엇 무엇을 먹으라고 일러주는 것 같은 자상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과 부족을 잘 아시고 육신의 먹을 음식을 지정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의 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와 욕구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으로 신령한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만나도 메추라기도 주셔서 저들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구체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다정 다감하신 분이요 우리 인생의 깊은 곳을 참으로 이해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는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일상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노아의 식구들에게 하나님은 생명존중과 사랑의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모든 고기를 먹되 피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이며 특히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피의 대가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남의 생명이 귀한 줄 알아야 되는데 그 이유는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형상(形象)대로 창조(創造)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할 자유는 주어졌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살도 죄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직접 살인도 많지만 간접 살인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환경오염, 해양오염을 시키는 것은 모두 간접 살인에 해당합니다.
자기 편하자고 자기 유익만 위해서 남이 죽건 말건. 상관없다는 생각들이 사실은 간접살인의 사고방식이란 말입니다. 본문의 기본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히 여기면서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때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노아의 식구들에게 다시는 홍수로 심판을 하지 않겠다고 언약 곧 약속을 하시고 그 증거로서 무지개를 두었습니다. 우리는 새 출발하는 인류 곧 노아의 식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따듯한 배려를 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식구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보증(保證)을 하시고 언약을 하시면서 다시는 물로는 심판(審判)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언약(言約)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하게 새 출발하는 노아의,식구들에게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시 뛰려고 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 위로, 간섭, 사랑 약속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머니보다, 더 따스한 그리고 섬세한 관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심판 중에서라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 신실하신 분입니다.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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