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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간 창조와 가정 창조, (창2:15-25절)

대산지기 2008. 2. 28. 15:04
인간창조와 가정창조
창 2:15-25절, 28.287.424장.*

창세기 2장을 보면 창세기 1장을 다시 반복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같은 내용의 반복이 아니고 예컨대 1장은 총론적이고 개론적이라면 2장에서는 각론적이고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 1:1절은 하나님의 창조의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면 본문의 창 2:1절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를 마무리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를 부각시켜 줍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흑암과 혼돈 뿐인 우주에 생명과 질서와 조화를 수놓았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의 위대한 창조를 만족하시면서 안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엿새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식의 날을 인간도 지키도록 했습니다. 안식일 곧 주일을 성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며 찬양하며, 육신이 일을 쉬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축복의 제도입니다.

창 2:3절에 "하나님이 일곱째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은 복받는 날이며 그복은 세상의 일을 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 안식일은 토요일이 아니라 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일성수를 해야하는 이유는 교회의 정책이나 목사의 목회방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수주일 곧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였을 때, 그것은 인생을 얽매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육간에 강건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동물에게는 안식의 복을 준 일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 곧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인간에게 하나님은 안식의 복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축복가운데 제일 큰 축복은 성수주일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예배입니다. 주일은 낮잠이나 푹자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에는 밀렸던 빨래나 하자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등산이나 낚시나 여행이나 갔으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엿새동안 힘써 일하고 땀을 흘리며 주일에는 영원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신앙은 훈련되어야 합니다. 주일 성수가 절대로 짐이 되어서는 안되고 기쁨과 감사와 축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것은 인간의 창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우리 본문에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生靈) 곧 살아있는 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함께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원입니다. 인간 존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성경만이 명백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에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인간의 존재와 그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이는 인간은 아메바에서 점점 진화되어 원숭이가 되고 그것이 사람이 되었다는 어리석은 가설인 진화론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설들과 주장들은 한낱 웃음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이 놀라운 선포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결정적 대답입니다. 사실 첫사람 아담은 사람이란 뜻일 뿐 아니라 그 말은 또한 흙이란 뜻입니다.

사람은 흙이란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는 身土不二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과 흙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땅에서 난 식물이 우리 몸에 가장 좋다는 의미이겠습니다.

사실 요즈음에 황토방이니 황토침대니 하는 말들을 통해서도 철근 콘크리트나 벽돌집이나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체질과 가장 맞는 것은 흙이란 사실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인간이 귀한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생령을 부어 주셔서 영적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도서 3:11절에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가 영원한 하나님, 영원한 구주, 영원한 진리(眞理)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한하고 없어질 것에만 매달려 일생을 살아가려다 보니 아무리 살아도 부족하고 모자라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절망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영원한 진리를 사모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그렇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거스틴의 말대로 하나님 안에서만 참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그 자체가 배신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그 자체가 불행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인생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좀더 음미해 봅시다.

우리는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육체(肉體)를 가진 우리 인생의 한계성을 깨닫게 됩니다. 우선 우리의 육체는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욥은 욥기 33:6절에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영은 영원을 사모하고 영원을 기다리며 살지만 한편 우리의 육체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중성 때문에 우리의 불안의 근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15:48-49절에 이르기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에 우리도 참여하여 결국 궁극적으로 영육간에 아울러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인간은 흙에서 출발했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더욱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이 상관 관계가 명백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보다 겸손하게 되고 겸손할 때 은혜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마치 하나님이 다 된 것처럼 잔뜩 높아져서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미련한 짓입니다. 하나님은 높아지려는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도리어 높여 주십니다. 부족해도 겸손만 하면 하나님이 높이 들어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신 메시지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그리고 결혼과 가정을 만드신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회와 공동체와 국가의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가정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목표와 교회의 목표는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이듯이 가정의 목표도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교회에게 천국확장의 소명을 맡겼듯이 가정에도 천국건설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결혼과 가정의 중요한 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뜻이며 가정을 만들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친히 주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기혼자나 미혼자나 할 것 없이 결혼이나 가정을 단순히 행복추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은 아니지만 순서가 틀렸습니다. 만약 결혼과 가정이 단순히 행복만을 추구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결혼과 행복은 동의어는 아닙니다. 결혼식때 부르는 축하노래는 행복의 문이 열려라고 하지만 행복의 문은 자동이 아닙니다. 성경은 결혼과 가정을 행복추구 보다는 희생과 헌신으로 봅니다.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롬14:7절에 "우리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세계관이 자기 자신의 행복 추구만을 하기 때문에 이기주의자가 되어 아무것에서도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이란 것마저도 좋은 가구, 좋은 집, 좋은 차에 있는 것처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별별 일이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행복이란 것도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 우위를 갖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멀쩡한 국산 냉장고를 길거리에 버리고 외제를 사야하고 멀쩡한 목욕조를 뜯어서 밖에 버리고 외국제 목욕조를 만들고, 멀쩡한 타일들을 부셔서 외제 타일을 부치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目的)이 행복(幸福)추구에 있기 때문에 자기의 쾌락이 행복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바닥까지 타락했습니다. 모 방송국에서 TV 는 사랑을 싣고란 프로그램에는 어린시절에 옛 애인을 찾아주는 것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오늘의 가정과 결혼을 삼류만화로 취급하는 세속주의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이 가정(家庭)을 만들기 위해서 남자(男子)에게서 여자를 만드신 것은 서로 돕기 위해서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결혼과 그 가정에는 철저한 사랑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 곧 남자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오는 신부인 하와를 향해서 "이는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로다”(창2:23)라고 했습니다. 인간 역사에 있어서 아담의 사랑의 고백만큼 위대한 사랑의 고백은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초(基礎) 위에서 둘이 연합(聯合)해서 한 몸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서 희생(犧牲)과 봉사(奉事)로 이루어질 때 참된 행복(幸福)이 있어 가정 천국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에 가정천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祝願)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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