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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언약(言約), (창9-11장)

대산지기 2008. 2. 28. 15:04
하나님의 언약(言約)
창9-11장, 199.200.399장.&

홍수는 가장 끔찍한 비극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 작은 가족, 여덟 사람과 짐승들을 실은 한 척의 배를 제외하고 땅위의 모든 생물(生物)들이 멸절(滅絶)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광경(光景)을 목격(目擊)하는데서 오는 충격(衝擊)이야말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경험(經驗)들 가운데 하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1.하나님께서 노아와의 언약을 맺었습니다.(9:1-17절) 언약이란 단어는 "자르는 것"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서약(誓約)의 행위(行爲)는 곧 제물(祭物)을 자르는 일로써 성립되어지기 때문입니다.(창15:9-이하).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약속을 세우시는데, 그 말들은 오늘날에도 유명합니다.

언약의 근거는 희생(犧牲)제물의 흘린 피에 두었으며(8:20-22) 이는 새로운 언약이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에 근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하나님은 홍수로 인류를 멸망(滅亡)시키지 않을 것. 2)인간은 동물의 고기를 먹어도 좋으나, 피는 먹지 말 것,(레17:10-이하 참조).

3)인간과 짐승들 사이에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것, 4)주요한 형벌(刑罰)의 원리(原理)로서의 인간(人間)의 정부(政府)(롬13:1-5참조)를 보여 줍니다. 언약(言約)에 대한 맹세로서 하나님은 무지개를 세우셨습니다. 이 말은 무지개가 그 때 처음 나타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언약(言約)을 세우실 때 특별(特別)한 의미를 부여하셨다는 뜻입니다. 무지개는 햇빛과 큰비로 말미암아 생기며 그 색채(色彩)는 "하나님의 각양(여러 색) 은혜"(벧전4:10절)를 생각나게 합니다. 무지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며,

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를 갈라놓은 깊은 구멍에 다리를 놓은 것을 상기시킵니다. 무지개는 에스겔 1:28절과 요한계시록 4:3절에 다시 나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언약(言約)이 노아 후에 오는 노아의 "씨"와 맺어진 것이며,

오늘날 우리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중한 형벌(刑罰)(9:5-6)을 받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보복(報復)해 주실 것을 약속(約束)하셨지만(4:15절), 이제는 살인자를 벌할 책임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2.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저주입니다.(9:18-29절) 죄가 있습니다.- 600살이 넘은 단련된 성도가 이 죄와 수치에 빠졌습니다. 그는 젊은 탕아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말로는 노아가 고의적으로 옷을 벗어 부끄러운 행동을 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무절제함과 불순전함은 언제나 함께 다닙니다.

홍수 이후로 지상에 생긴 새로운 대기(大氣)의 상태가 포도주를 발효시킨 것이며 노아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몰랐다고 그를 변호해 주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의 죄에 변명을 대는 일을 허락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의 세 번째 실패(失敗)입니다.

인간(人間)은 에덴에서 불순종(不順從)하여 추방(追放)당했고, 온 땅을 부패시켜 홍수가 임하게 했으며, 이제는 부끄러운 술 주정꾼이 되었습니다. 이는 6:5절과 8:21절의 성취가 아니겠습니까!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함(Ham)은 자기 아버지를 존중(尊重)하지 못하고 도리어 노아가 한 일을 "즐겁게 떠 벌였습니다."

저주가 있습니다. 노아는 함이 한 일을 알고 그 유명한 저주를 발하였습니다. 그가 함의 막내아들 가나안(10:6절)을 저주한 사실로 보아 이 죄에 아버지와 함께 이 소년이 관련되었음과,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 씌우심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과 그의 자손들은 그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어야 했습니다.

10:15-20절에는 이 민족의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노예가 되었음은 뻔한 일입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셈족은 유대인들이며, 그 종족이 10:21-32절에 열거되어 있고, 11:10-26절에서는 아브라함에게까지 그 혈통(血統)을 이어갑니다. 야벳의 후손(後孫)들은 이방인들입니다.(10:1-5절).

창세기 15:13-21절과 10:15-20절을 연관시켜 읽어보면.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어떻게 여러 종족의 구분이 이루어졌는지를 보이려는 것이 아니고 사도행전 17:26절이 가르치듯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한 혈통"으로 지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축복입니다. 노아는 유대인(셈)들을 축복하고 가나안 인들을 종으로 줍니다.하나님은 이방인들(야벳)에게 널리 퍼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영적으로 말하면) 저들은 유대인의 장막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를 설명합니다.

3.하나님께 대항하는 니므롯의 동맹입니다.(11:1-9절) -독재자가 있습니다.(10:6-14절) 니므롯은 구스의 아들이며 함의 손자로서, 그의 이름의 뜻은 "반역"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굉장한 폭군이요, 최초의 독재자였습니다. "사냥꾼"이란 말은 동물을 사냥한다기보다는 인간을 사냥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바벨론 제국의 창시자이며 바벨탑의 건설을 주도했던 계획의 창안자였습니다. 역사는 니므롯과 그의 아내가 "어머니와 아이"로 둘러싸인 새로운 종교를 창설했음을 알려 줍니다. 성경에서의 "바벨론"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종교적 혼란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바벨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항하며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큰 바벨론"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반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땅에 충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9:1, 9:7, 9:9절). 그런데 인간은 바벨론 지역인 시날 평지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10:8-10).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의적인 반역이었습니다. 그들은 "동방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는 저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등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연합하여 도시와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님께 반대하여 연합을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이요, 자신들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바벨론을 중심한 인간(그리고 사탄)의 그리스도께 대한 최종적 반항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세계 교회와 세계 조직을 통해 연합되어 적 그리스도에게, 곧 최후의 세상 독재자에게 이끌려 가지만, 저들의 계획은 좌절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란 개념으로 급진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입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반역을 계획함을 알고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회의를 열어(1:26, 3:22절) 일군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그들이 함께 일할 수 없도록 만들 것을 결정하십니다.

이것은 심판인 동시에 사실상 자비의 행위이었습니다. 만일 그 계획을 계속 진행시켰다면 보다 무서운 심판이 따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벨"이란 이름은 히브리어의 "바랄"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섞다 또는 혼란시킨다"는 뜻입니다.

아람어로는 바벨이 "혼란"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은 인류의 여러 언어의 기원을 설명합니다. 오순절은 바벨 사건을 역전(逆轉)시킨 것이라고 흔히들 지적합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진정한 영적 연합이 있었으며, 다른 말을 사용했으나 이해했고, 그 일로 인하여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4.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11:10-32절) 10:21-32절에는 셈의 가계(家系)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이 계보를 뽑은 것은 아브라함이 그 계획에 어떻게 적중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에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게 까지 계보를 끌어갑니다.(11:26절).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신적 선택에 대한 증거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함과 야벳을 우회하여 셈을 택하시고, 셈의 다섯 아들들 중에서는 아르박삿(11:10절)을 택하셨으며, 데라와 세 아들들 중에서는(11:26절)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히브리 민족의 시작이 됩니다. 창세기 1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고 이미 말씀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창11:31절의 본문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데라가 그의 가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가고 있었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데라가 아브라함의 아비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앞에 내세운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경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찾아가라고 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동생 나홀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기와 같이 길을 떠나자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요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사 그로 회개케 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두 가지 약속들을 주셨기 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하늘나라), -약속의 씨(후손), 즉 위대한 자손으로서 한 민족의 씨이자 특별한 한 민족의 씨 되시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두 위대한 약속들은 아브라함의 심령 안에 위대한 확신과 안전,

하나님께 대한 위대한 확신을 안전을 굳게 심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란을 향해 약 960킬로미터를 여행하다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에 데라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본문 내용인 창세기12장을 통해서 데라가 죽은 후 아브리함이 아직 하란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위대한 신앙과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르고 약속의 땅을 찾아 나서는 그의 위대한 순종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행했던 바로 그대로 위대한 삶의 여정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근본적인 것들, 즉 아브라함이 추구했던 것과 동일한 두 가지를 추구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1)우리는 약속의 씨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여야 합니다.

사45:22절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2)우리는 약속의 땅인 하늘 나라를 구하여야 합니다.

히11:8-10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약속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고, 약속의 땅인 하늘나라를 구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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