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창15:12-21절, 290.404.408장.&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사건은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은 이후 출애굽기서와 여호수아서를 가능하도록 해준 약속들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은 당시 문화적 배경이 되었던 "조약식"을 이해하면 많은 도움을 줍니다.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그 언약을 지키면 그 조건으로 무엇을 보상해 준다는 조건 언약이 아니라,
그 언약과 약속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주는 언약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 하나님 앞에 언약을 지켜야 하는 백성된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이 언약이 어떠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설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볼 때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함이 우리들을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은행에 저축하기도 하고 각종 보험과 노후대책을 설계합니다. 세상이 이러할 찐데 신앙을 가진 우리들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미래를 설계하여 극복해야 합니까?
이같은 길은 우리들의 유일한 길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삶의 패턴도 다르고 삶의 질도 달라야 합니다.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리들의 미래의 소망이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에게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을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분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생활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아브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했느냐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 역시 아닙니다.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에서 짐승의 일부를 쪼개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되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본문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금 성경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통하여 나타내어 보여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약이란 한마디로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되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따라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왕과 그의 백성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기 때문에 경배를 드려야 하고 그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확인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택한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관계를 맺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그 정성이 갸륵해서 우리들을 만나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셔서 우리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아담아 아담아"라고 부르시며 먼저 찾아와 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도 변함없이 아브람에게 찾아와 주셔서 언약과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죄와 그 죄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업의 실패와 쓰라린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 곁에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발견한 사도 바울께서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딤후4:16-17절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했습니다.
나이 많은 바울의 생애 말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떠나버린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강건케 하심으로 힘있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2.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약을 통해서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8절에 보면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께 약속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이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같은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므로 보증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식을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
삼년된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보게 놓습니다. 짐승을 쪼갠 것은 당시 계약식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짐승을 쪼개어 놓고 계약의 당사자가 그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
지나가면서 우리 둘 중에 어느 누구라도 너와 내가 맺은 이 언약을 파기할 때는 이 짐승이 잔인하게 찢기운 것처럼 될 것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같은 의식은 당시 고대근동지방에서 널리 사용된 계약체결식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쪼갠 짐승 사이로 계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아브람이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횃불만 지나갑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시면서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죄인이 의인의 희생에 의해서 살아가 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구원의 사건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마27:46절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께서는 이 사건을 갈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인가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들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만이 우리들의 살길입니다.
우리는 감사와 찬양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의 감격적인 현 위치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던 자들이었는데 우리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셨습니까?
3.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의 내용입니다.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과 동시에 대적에 대한 심판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공의의 심판도 함께 얘기 해야 합니다.
공의의 심판은 우리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더욱 농도짙게 깨닫고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사백 년 동안 객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자손이 섬기는 나라를 징치하고 그들을 사대만에 큰 재물을 얻어 이 땅(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 자손이 애굽에 체류하는 기간은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을 심판하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셋째,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평안히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약속은 출애굽기서와 여호수아 사사기서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 사실은 꼭 이루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래 전 옛날 지금으로부터 무려 3500년 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 말씀을 살펴보 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이같은 시건의 말씀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사건을 단순히 옛날 이야기하는 식으로 우리들에게 윤리와 어떤 도덕적 규범을 이야기해 주는 사건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앞을 향하여 숨가프게 어디론가 전진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일컬어진 약속의 자손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이 보편적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그 구원은 뱀의 후손과 대립되면서 그 뱀의 후손을 극복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은 주권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여기에 반기를 든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언약 밖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 새언약의 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힘으로, 우리들의 의지로 살아가면 안됩니다.우리들의 구원과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나로 말미암지 않았기 때문에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자기 자랑의 혼돈 속에 살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 두 손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진하여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젓한 것처럼 교만스런 태도보다는 두손을 들고 자신의 부족함을 아뢸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베플어 주실 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창15:12-21절, 290.404.408장.&
하나님께서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사건은 구약성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은 이후 출애굽기서와 여호수아서를 가능하도록 해준 약속들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아브람과 맺으신 언약은 당시 문화적 배경이 되었던 "조약식"을 이해하면 많은 도움을 줍니다.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그 언약을 지키면 그 조건으로 무엇을 보상해 준다는 조건 언약이 아니라,
그 언약과 약속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해주는 언약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 하나님 앞에 언약을 지켜야 하는 백성된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이 언약이 어떠한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알게 하는 설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볼 때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함이 우리들을 더욱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은행에 저축하기도 하고 각종 보험과 노후대책을 설계합니다. 세상이 이러할 찐데 신앙을 가진 우리들 역시 이러한 방법으로 미래를 설계하여 극복해야 합니까?
이같은 길은 우리들의 유일한 길은 되지 못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무엇인가 달라야 합니다. 삶의 패턴도 다르고 삶의 질도 달라야 합니다.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리들의 미래의 소망이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에게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을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그 분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신 생활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입니다. 본문 말씀은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아브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했느냐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 역시 아닙니다.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에서 짐승의 일부를 쪼개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되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본문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지금 성경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통하여 나타내어 보여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약이란 한마디로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되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따라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왕과 그의 백성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기 때문에 경배를 드려야 하고 그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확인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택한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관계를 맺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그 정성이 갸륵해서 우리들을 만나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셔서 우리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아담아 아담아"라고 부르시며 먼저 찾아와 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도 변함없이 아브람에게 찾아와 주셔서 언약과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죄와 그 죄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업의 실패와 쓰라린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 곁에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발견한 사도 바울께서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딤후4:16-17절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했습니다.
나이 많은 바울의 생애 말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떠나버린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강건케 하심으로 힘있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2.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약을 통해서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8절에 보면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께 약속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이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같은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므로 보증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식을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
삼년된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보게 놓습니다. 짐승을 쪼갠 것은 당시 계약식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짐승을 쪼개어 놓고 계약의 당사자가 그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
지나가면서 우리 둘 중에 어느 누구라도 너와 내가 맺은 이 언약을 파기할 때는 이 짐승이 잔인하게 찢기운 것처럼 될 것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같은 의식은 당시 고대근동지방에서 널리 사용된 계약체결식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쪼갠 짐승 사이로 계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아브람이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횃불만 지나갑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시면서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은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죄인이 의인의 희생에 의해서 살아가 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구원의 사건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입니다. 마27:46절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께서는 이 사건을 갈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인가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들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만이 우리들의 살길입니다.
우리는 감사와 찬양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의 감격적인 현 위치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던 자들이었는데 우리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셨습니까?
3.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의 내용입니다. 아브람과 맺은 언약은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과 동시에 대적에 대한 심판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공의의 심판도 함께 얘기 해야 합니다.
공의의 심판은 우리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더욱 농도짙게 깨닫고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브람의 자손이 이방에서 사백 년 동안 객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자손이 섬기는 나라를 징치하고 그들을 사대만에 큰 재물을 얻어 이 땅(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 자손이 애굽에 체류하는 기간은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을 심판하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셋째,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평안히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약속은 출애굽기서와 여호수아 사사기서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 사실은 꼭 이루시고야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래 전 옛날 지금으로부터 무려 3500년 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 말씀을 살펴보 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이같은 시건의 말씀이 오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 사건을 단순히 옛날 이야기하는 식으로 우리들에게 윤리와 어떤 도덕적 규범을 이야기해 주는 사건에 불과하다는 겁니까?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사건이었습니다. 지금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앞을 향하여 숨가프게 어디론가 전진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일컬어진 약속의 자손을 이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이 보편적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그 구원은 뱀의 후손과 대립되면서 그 뱀의 후손을 극복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은 주권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여기에 반기를 든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언약 밖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 새언약의 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힘으로, 우리들의 의지로 살아가면 안됩니다.우리들의 구원과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나로 말미암지 않았기 때문에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얼마나 자기 자랑의 혼돈 속에 살고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께 두 손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진하여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젓한 것처럼 교만스런 태도보다는 두손을 들고 자신의 부족함을 아뢸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베플어 주실 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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