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본교수의 강해설교(2)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21절~23절)
출처- 크리스챤뉴스위크 Grant R. Osborne <오스본 교수는 세계적 권위의 신약학 교수로서 미.트리니티복음주의신하교에 오기 전까지 일리노이즈와 오하이오 교회에서 목회하였고 위니펙 신학교에서 강의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의 말버그(Marburg)와 잉글랜드에 있는 캠브리지(Cambridge)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저서는 『부활진술』, 『성경해석의 해석학적 지평』등이 있다. >
여러분들과 함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을 귀한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감사하는 바입니다.
부활절은 인류역사에서 모두가 다 소중히 여기는, 그러한 절기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아주 의미있듯이 부활절도 의미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기뻐합니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일어나신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절은 우리들에게 구원과 능력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또한 부활절의 의미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므로 주신 능력은 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문제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의 문제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칠때 어린 소년이 가졌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 날이었습니다. 어린 소년은 두려워서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그 때 그의 아버지는 교회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아빠가 필요없어. 너에게는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시단 말이야.” 어린 소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피부를 가진 예수님이 필요하단 말이예요.”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 뒤에 그 누군가가 서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한복음 20장에는 제자들의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에서 그 사실이 나타나고 있는데 부활절, 곧 주중에 첫째날 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굳게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놀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고, 무덤속에 삼일간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위를 너무나 무시당하고 멸시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들은 모두 진실입니다. 제자들은 문을 닫고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모여있었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그냥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이렇게 두려움은 권능보다도 더 힘있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모두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고 있는 모든 압박들은 다 다른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마음대로 피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화를 내셨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거절했었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받을 만한 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과 같이 우리모두는 예수님을 거절함으로 예수님의 진노를 받을 만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반응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찌어다. 평안은 너희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용서가 필요했고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해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찾아와서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의 두려움은 평화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러한 평화의 약속이 두려움을 다 물리치고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 후 곧 예수님께서는 권능, 즉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경본문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본문 2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선교사들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내가 너희들을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예수님의 보내심에 대한 주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보냄을 받은 자들을 가르쳐서 대사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구원의 표현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이루신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보내신 권능하심을 친히 말씀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단지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았을 뿐아니라 성경에서 네 번씩이나 예수님께서 보냄을 받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두번은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고 두번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권능을 말씀하셨고 또 성령님의 능력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선교를 위하여 오신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경본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역시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성자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삼위일체께서는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받은 은사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은사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현존하는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찬양을 드리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초청받아 말씀을 전하는 자처럼 그렇게 말을 잘하는 은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지도자가 꼭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들은 성령으로 충만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개인 개인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자 곧 대사에 해당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실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2절에 나타난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대표자로서의 우리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하거나 예수님의 대표자가 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3절에서 “나는 나의 약함 때문에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연약할때에 아버지께서 능력을 주시고 함께 해 주셔서 나를 강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권능이나 능력을 가지려고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을 충만케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선교적 명령을 주실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함께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능력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어떠한 힘을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태양에너지를 발견하려고, 원자력 에너지를 가지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화석으로 만든 연료까지도 에너지로 삼으려고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힘의 원천을 이세상은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능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는 권능의 힘입니다. 우리가 받은 그 능력은 하나님께로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곧 우리가 받은 이 능력은 영원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원자력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 성령의 힘은 결단코 그 능력이 소모되어서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세 번째 대지를 살펴봅시다. 여러분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진행되어져 가는 과정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개인적인 대사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실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절의 의미는 여러분들이 이러한 권능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그 권위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23절에 나타난 그 권위는 우리들에게 혼돈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바로 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너희들이 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이 용서함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죄는 그대로 있다는 말입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이 말씀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카톨릭교회의 사제들이 죄를 사해줄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해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예수의 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해석되어진 것입니다. 레이몬 브라운과 루돌프 스켄버그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의 학자들로서 함께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이 카톨릭교회의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죄를 용서해준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오늘 선교적 사명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증거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예수그리스도 부활의 증인들이 되신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능력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어떠한 것보다도 이러한 만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결정을 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깨달음으로 우리가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용서를 받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해서 정죄하심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해서 정죄하시는데에 우리들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능의 권세를 오늘 우리들에게 전해주셨습니다. 만약 오늘 당신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사무실에서 일하고, 매일 어떠한 장소에서든지 일한다면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 뒤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하시고, 당신은 예수님의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에 대해서 방어하거나 변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의 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결론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성령안에서 가진 우리의 능력은 우리와 늘 함께 하는 능력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부활의 주님을 증거할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선교적 사명을 바로 인식하고 이 사명을 가지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까?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하나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임재하심을 어떻게 다 찬양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우리들이 어떻게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임재하심을 느끼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성령의 능력을 믿고 확신하여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일할 때에든지, 언제든지 주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큰 특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와 늘 함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